로마 교황/201대~현직 교황

그레고리오 16세

Mintaka5 2024. 7. 9.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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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Bartolomeo Alberto Cappellari 바르톨로메오 알베르토 카펠라리

Gregorius PP. XVI, 1765~1846, 재위1831~1846

그레고리오16세, 출처-위키피디아

출생

1765년 베네치아 공화국 벨루노(Belluno)에서 아버지 조반니 바티스타 카펠라리(Giovanni Battista Cappellari, 1719~1807)와 어머니 율리아 케사(Giulia Cesa, ?~1793)사이에서 5자녀중 막내로 태어남.

태어나자마자 의전사제(Canonico)이자 큰삼촌인 돈 안토니오 카펠라리(Don Antonio Cappellari, 1711~1792)로부터 세례를 받음. 카펠라리(Cappellari)가문역시 지역귀족가문이였는데, 1670년에 지역 귀족회의에 들어갈만큼 지역에서는 나름 이름있는 가문이였다. 

 

수도원

누나 카테리나(Caterina, 1763~1820)가 수녀원에 들어가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보고 이후 1783년 수도원으로 들어가서 기초분야들을 공부하기 시작하는데, 수료 후 이 수도원에서 철학, 과학등을 가르치게 된다.

1799년 이탈리아 얀센주의자들을 반대하는 서적 '교황청과 교회의 승리'라는 제목으로 출판하고난 이후부터 성직자들과 접촉이 시작되면서 이듬해 카톨릭 아카데미 회원이 되면서 신학,철학문제를 다루는 여러 회고록을 기고. 1805년엔 산 그레고리오 알 첼리오(San Gregorio al Celio) 수도원장으로 임명됨.

 

나폴레옹

바르톨로메오가 한창 일하고있을 때인 1809년 나폴레옹1세(Napoléon I,1769~1821, 재위1804~1814, 1815)가 당시에 취하던 정책인 대륙봉쇄령을 교황이 지지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1808년 로마와 교황청을 점령하고 당시 교황 비오7세(Pius PP. VII, 1740~1823, 재위1800~1823)가 파문을 선언하자마자 나폴레옹군에 의해 체포되어 제노바에 구금되는 사건이 발생. 수감이 계속되는1812년 퐁텐블로(Fontainbleau)로 강제 이송후에 불평등조약을 강요받는데 이것이 '퐁텐블로 정교조약'이다. 

노쇠한(72세) 교황은 이 불평등조약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고, 어찌저찌 풀려나 1814년 로마에 입성하면서 나폴레옹이 저질렀던 만행들을 복구하기 시작하고, 교황령은 나폴레옹전쟁 후폭풍을 정리하기 위한 목적의 빈 회의에 대표로 에르콜레 콘살비 추기경(Ercole Consalvi, 1757~1824)을 보내서 교황령을 복구시키게 된다. 이후 바르톨로메오는 종교재판소 고문, 주교 심사관으로 임명되면서 책임이 막중해진다.

 

추기경

1825년 비오7세의 후임교황 레오12세(Leo PP. XII, 1760~1829, 재위1823~1829)에 의해 바르톨로메오는 추기경으로 승품되고 네덜란드 지방의 개신교와 카톨릭의 이익에 관한 협약을 조정하는 특수하고 중요한 임무를 맡게 되는데, 직접 발로 뛰어 왔다갔다하면서 조정을 한 결과 정교협정을 맺게 된다(1827년). 

그러나 이 노력도 잠시 1830년 7월 프랑스에서 샤를10세(Charles X, 1757~1836, 재위1824~1830)을 퇴위시키는 7월혁명이 발생하고 바로 이어 네덜란드 남부지역에서 독립혁명이 1831년까지 일어나면서 결국 독립해 벨기에로서 새로운 국가가 탄생하게 됨. 

 

교황

1830년 12월초, 비오8세가 서거하는데, 2달가량이나 지속되는 콘클라베기간동안 여러 투표를 거치나, 예기치않게 바르톨로메오가 교황으로 선출된다. 그래서 그레고리오16세(Gregorius PP. XVI, 1765~1846, 재위1831~1846) 로서 즉위하게 됨. 이때 이탈리아 연합이 볼로냐에서 선포되면서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 보이자 교황은 오스트리아에 군대를 요청하게 됨. 

이 진압의 명분으로 주장했던 계혁계획들이 연기되게 되는데, 이후 경제적 차원에서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면서 성과를 창출하게 된다. 철도 건설 계획이 1840년에 나오게되지만 빈약한 로마의 재정과 철이나 석탄등 철도에 들어가는 기본적인 자원도 안나는 곳이라, 교황 그레고리오16세는 이 건설은 후임교황대에 되서 해결해야할 것이라고 말하는데, 이후 교황 비오9세(Pius PP. IX, 1792~1878, 재위1846~1878)에 와서 이루어진다.

 

선종

1846년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되면서 반점이 생기는등 적신호가 켜지는데, 심각한 질병이라고 인식하지 않았던 교황은 대수롭지 않게 넘기지만, 그해 중반쯤 되었을때 갑자기 힘이 빠지고 일어나지 못하는 등 죽음을 직감하게 되면서, 앓다가 6월1일에 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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