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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크 9

프랑수아 드 트루아

François de Troy (1645~1730) 출생프랑스 바로크 화가, 1645년(루이14세, 재위2년) 프랑스 툴루즈 출생.아버지 앙투안 니콜라 드 트루아(1608~1684), 툴루즈 시청소속 화가. 남동생 장 드 트루아(1638~1691)역시 화가. 그리고 로코코시대의 유명 역사화가 장 프랑수아 드 트루아(Jean François de Troy, 1679~1752)역시 화가. 여기도 예술가 집안. 니콜라 루아르 (Nicolas Loir, 1624~1679) 밑에서 공부했고(1650년대 중반), 이후 1662년 당시 유명한 초상화 화가인 클로드 르페브르(Claude Lefèvre, 1632~1675)밑에서 공부하게됨. 이 두명의 스승밑에서 가르침을 받은 것이 후에 역사화가로서, 초상화가로서의 어마..

프란츠 할스

Frans Hals (1580~1666)네덜란드의 초상화·풍속화의 대가  출생. 또 안트베르펜1580년 Anvers(안트베르펜)출생. 이도시가 어디인가.. 루벤스가 인생절반을 살아온곳이고 앞선게시물의 주인공이자 루벤스의 제자 안토니 판 다이크가 태어난 곳이다. 이도시.. 예사롭지 않은 도시다네덜란드의 초상화창시자이며 완성까지 시킨 아주 중요한 작가임. 굳이 따지자면 네덜란드 초상화계에서 다이크가 모차르트라면 할스는 바흐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위치다. 집단초상이라는 구성에 있어서는 필적할 상대가 없을만큼 독보적인 세계를 이어나감.보기만해도 어지러운 저 그림 속에 인물 하나하나 성격이 다 다른것에, 생동감까지 있어보이는 모습까지 상세하게 묘사가 되어있다.. 어마어마한 기법이다비교적 어두운 배경의 그림들이 ..

조르주 드 라 투르

Georges de La Tour (1593~1652)프랑스 바로크&고전주의 화가, 1593년 로렌공국 낭시근처 마을 Vic-sur-Seille에서 출생촛불화가로도 알려져있는 화가. 카라바조의 명암대조법 영향을 받아서 그 영향을 극대화시키기위해 촛불을 사용하여 명암을 더 극대화시키면서 시선을 집중시키는 기법을 사용.위 그림처럼 임신한 여인이 오른손엔 해골을 어루만지며 초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삶의 허무함과 죽음이 느껴질만큼 분위기가 무겁게 느껴지는데, 초를 바라보면서 여인이 어떤생각을 하는지도 예측이 가지 않는다..  방안의 촛불이 원을 그리며 은은하게 주변을 밝히는 모습이 앞서 설명한 내용과 대비가 되면서 고요함과 정적인 분위기가 느껴질 정도다. 그의 삶은 롤러코스터급은 아니지만 기울기가 상당히 가파..

디에고 벨라스케스

Diego Velázquez(1599~1660)스페인 바로크 화가,  펠리페 4세 (프랑스어 Philippe IV, 스페인어 Felipe IV) 궁정을 주도하던 화가.초상화 화가로도 유명함. 파체코(1564~1644)의 제자이기도 함.. 출생1599년(펠리페3세, Felipe III, 재위원년) 세비야 출생, 1611년(펠리페3세, 재위 12년) 파체코의 문하생으로 들어가면서부터 미술교육이 시작되는데 수년간 교육을 받고 또한 파체코의 마음에 들었을까?.. 1618년에 파체코의 딸 후아나(1602~1660)와 결혼하기에 이른다역시 인복이 있었던가? 1622년(펠리페4세, Felipe IV, 재위원년)까지 세비야에있다가 그해 왕의 사제(돈 후안 드 폰세카, Don juan de Fonseca, 1585~16..

시몽 부에

Simon Vouet (1590~1649)프랑스 바로크시대 화가, 루이14세왕정화가 샤를 르 브룅(1619~1690)의 스승. 2대가 화가아버지 로랑 부에(1538~?), 형 오벙 부에(1595~1641)역시 화가. 가족이 다 화가시몽은 어릴적 아버지 로랑 부에로부터 미술 교육을 받아서, 이후 초상화에 전념하게 된다.바로크 영향이 가장 강하게 미치게 된 이탈리아에서 장기체류하며 이전에 바로크를 연 화가로 다뤘던 카라바조(1571~1610) 명암에 영향을 많이 받게된다. 여러 화가들과 인맥을 맺게되는데 심지어, 미래의 교황 우르바노8세(1568~1644)가 되는 마페오 바르베리니 추기경밑에서도 일하며 수많은 인맥을 거느리게 된다. 중간에 프랑스로도 한번 복귀하는데, 마침 복귀했던 때인1617년, 당시 어머..

장 바티스트 시메옹 샤르댕

Jean Baptiste Siméon Chardin (1699~1779)프랑스 바로크 시대 화가. 출생1699년(루이14세, 재위56년)에 현재의 파리6구에 Quartier Saint-Germain-des-Prés(프랑스어 quartier의 뜻은 동네, 구역이라는 뜻)에서 태어나고, 죽을때까지 이곳을 벗어나지 않은 지역 고인물이다. 지도교수님그의 지도스승은 당시 국왕 루이15세(1710~1774)의 섭정대신이자 삼촌인 필리프 도를레앙(Philippe d'Orléans, 1674~1723)의 섭정기(la régence, 1715~1723)시기, 1718년부터  왕립 아카데미 교수로 재직하던 피에르 자크 꺄즈(Pierre-Jacques Cazes, 1676~1754)이다. 피에르에 대한 지도기록은 거의 없어..

앙리 테스텔렝(1616~1695)

Henri Testelin(1616~1695) 앙리4세(Henri IV, 1553~1610)왕실 화가 할아버지와 루이13세(Louis XIII, 1601~1643)의 궁정화가 아버지와 앙리의 친형, 친동생까지 3대가 화가인 집안에서 태어난 앙리 테스텔랭. 화가로서의 정통성 끝판 . 1636년(루이13세, 재위26년)부터 화가로서의 작업이 시작되는데, 그의 이름이 남게되는 하나의 명작 1648년 2월1일, 정의의침대에 앉아있는 루이14세의 초상화를 그리게 됨으로써, 루이14세(어린 루이14세를 대신해 모후 안 도트리슈 Anne d'Autriche(1601~1666)의 섭정이됨)의 눈에 들게되어, 정부 요직의 중요 인물, 귀족들의 초상화, 공식 석상에 관련한 그림등을 그리는 궁정화가로 오르게 됨. 근데 하필..

바로크

바로크는 일그러진 진주, 이상함, 괴상함 이런 뜻을 지니는데 개인적으로 괴상함에 좀 더 끌린다...! 필자의 생각은 바로크시대는 150여년간의 르네상스의 조화로운 미세한 진폭이 1600년대 이후 서서히 커지며, 기존의 질서를 깨지 않는 범위 내에서 파격적이고 화려한 양식으로 전환되게 되는 시기인 것 같다 일종의 과도기인 이시기에 소위 인물들이 많이 나왔다. 대표적으로 필자가 관심이 많은 음악, 미술쪽의 인물을 한명씩 적어보고자 한다. 개인적으로 인물에대한 생각차이가 있을 수도 있으니, 모자라더라도 이해바랍니다 음악쪽에서는, 이탈리아의 카치니(1551~1618)가 여러선율이 복잡하게 엉켜져있던 과거의 전통적인 음악양식과는 완전히 다른 하나의 선율을 화음이 반주하게 함으로써, 선율을 단순화 시켰다고 할 수 ..

루이14세 가족

프랑스 바로크 시대의 초상화 전문 화가, Nicolas de Largillierre (1656~1746) 가 그렸음. 루이14,15세의 궁정화가 출신. 그림 중간에 앉아있는 남자가 루이 14세(1638~1715), 그가 앉아있는 의자 뒤에 팔 걸치고 서있는 남성이 루이14세의 아들이자, 태자인 루이 드 프랑스 '그랑도팽'(1661~1711), 오른쪽 빨간의상을 입은 남성은 그랑도팽의 아들인 루이 드 프랑스 '쁘띠도팽'(1682~1712), 그리고 왼쪽편 유모앞에 있는 아기가 쁘띠도팽의 아들인 루이15세(1710~1774). 루이14세가 1715년에 죽기전에 태자 그랑도팽이 1711년 천연두로 사망하고, 그뒤의 도팽자리를 아들 쁘띠도팽에게 물려지게 되나 1712년 역시 사망. 그리하여 루이14세의 증손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