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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크시대 화가들/프랑스 la France 7

이아생트 리고

Hyacinthe Rigaud(1659~1743) 출생프랑스 남부 페르피냥 출생저번에  글올린 화가 프랑수아 드 트루아(Francois de Troy, 1645~1730)과 더불어 프랑스 바로크시대 초상화가중 가장 명성이 높은 화가. 트루아와는 다르게 당시 부르봉왕조에 절대충성하며 명성을 크게 얻게되며, 4대에 걸쳐 초상화화가를 배출하게 됨.현재의 위키피디아 루이14세 게시물에 올라와있는 루이14세의 초상화역시 리고가 그린 초상화로 아래의 그림은 '성스러운 의상을 입은 루이14의 자화상, 1701'의 주인공. 충!성! 부르봉트루아의 초상화(귀족적, 화려함)와는 다르게 군주,귀족의 위엄, 우아함, 질서에 좀 더 포인트를 맞춘 스타일의 기법을 써서 그런지(귀족들이 화려함보다는 위엄함을 좀 더 선호했던 것 같..

프랑수아 드 트루아

François de Troy (1645~1730) 출생프랑스 바로크 화가, 1645년(루이14세, 재위2년) 프랑스 툴루즈 출생.아버지 앙투안 니콜라 드 트루아(1608~1684), 툴루즈 시청소속 화가. 남동생 장 드 트루아(1638~1691)역시 화가. 그리고 로코코시대의 유명 역사화가 장 프랑수아 드 트루아(Jean François de Troy, 1679~1752)역시 화가. 여기도 예술가 집안. 니콜라 루아르 (Nicolas Loir, 1624~1679) 밑에서 공부했고(1650년대 중반), 이후 1662년 당시 유명한 초상화 화가인 클로드 르페브르(Claude Lefèvre, 1632~1675)밑에서 공부하게됨. 이 두명의 스승밑에서 가르침을 받은 것이 후에 역사화가로서, 초상화가로서의 어마..

조르주 드 라 투르

Georges de La Tour (1593~1652)프랑스 바로크&고전주의 화가, 1593년 로렌공국 낭시근처 마을 Vic-sur-Seille에서 출생촛불화가로도 알려져있는 화가. 카라바조의 명암대조법 영향을 받아서 그 영향을 극대화시키기위해 촛불을 사용하여 명암을 더 극대화시키면서 시선을 집중시키는 기법을 사용.위 그림처럼 임신한 여인이 오른손엔 해골을 어루만지며 초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삶의 허무함과 죽음이 느껴질만큼 분위기가 무겁게 느껴지는데, 초를 바라보면서 여인이 어떤생각을 하는지도 예측이 가지 않는다..  방안의 촛불이 원을 그리며 은은하게 주변을 밝히는 모습이 앞서 설명한 내용과 대비가 되면서 고요함과 정적인 분위기가 느껴질 정도다. 그의 삶은 롤러코스터급은 아니지만 기울기가 상당히 가파..

시몽 부에

Simon Vouet (1590~1649)프랑스 바로크시대 화가, 루이14세왕정화가 샤를 르 브룅(1619~1690)의 스승. 2대가 화가아버지 로랑 부에(1538~?), 형 오벙 부에(1595~1641)역시 화가. 가족이 다 화가시몽은 어릴적 아버지 로랑 부에로부터 미술 교육을 받아서, 이후 초상화에 전념하게 된다.바로크 영향이 가장 강하게 미치게 된 이탈리아에서 장기체류하며 이전에 바로크를 연 화가로 다뤘던 카라바조(1571~1610) 명암에 영향을 많이 받게된다. 여러 화가들과 인맥을 맺게되는데 심지어, 미래의 교황 우르바노8세(1568~1644)가 되는 마페오 바르베리니 추기경밑에서도 일하며 수많은 인맥을 거느리게 된다. 중간에 프랑스로도 한번 복귀하는데, 마침 복귀했던 때인1617년, 당시 어머..

장 바티스트 시메옹 샤르댕

Jean Baptiste Siméon Chardin (1699~1779)프랑스 바로크 시대 화가. 출생1699년(루이14세, 재위56년)에 현재의 파리6구에 Quartier Saint-Germain-des-Prés(프랑스어 quartier의 뜻은 동네, 구역이라는 뜻)에서 태어나고, 죽을때까지 이곳을 벗어나지 않은 지역 고인물이다. 지도교수님그의 지도스승은 당시 국왕 루이15세(1710~1774)의 섭정대신이자 삼촌인 필리프 도를레앙(Philippe d'Orléans, 1674~1723)의 섭정기(la régence, 1715~1723)시기, 1718년부터  왕립 아카데미 교수로 재직하던 피에르 자크 꺄즈(Pierre-Jacques Cazes, 1676~1754)이다. 피에르에 대한 지도기록은 거의 없어..

앙리 테스텔렝(1616~1695)

Henri Testelin(1616~1695) 앙리4세(Henri IV, 1553~1610)왕실 화가 할아버지와 루이13세(Louis XIII, 1601~1643)의 궁정화가 아버지와 앙리의 친형, 친동생까지 3대가 화가인 집안에서 태어난 앙리 테스텔랭. 화가로서의 정통성 끝판 . 1636년(루이13세, 재위26년)부터 화가로서의 작업이 시작되는데, 그의 이름이 남게되는 하나의 명작 1648년 2월1일, 정의의침대에 앉아있는 루이14세의 초상화를 그리게 됨으로써, 루이14세(어린 루이14세를 대신해 모후 안 도트리슈 Anne d'Autriche(1601~1666)의 섭정이됨)의 눈에 들게되어, 정부 요직의 중요 인물, 귀족들의 초상화, 공식 석상에 관련한 그림등을 그리는 궁정화가로 오르게 됨. 근데 하필..

루이14세 가족

프랑스 바로크 시대의 초상화 전문 화가, Nicolas de Largillierre (1656~1746) 가 그렸음. 루이14,15세의 궁정화가 출신. 그림 중간에 앉아있는 남자가 루이 14세(1638~1715), 그가 앉아있는 의자 뒤에 팔 걸치고 서있는 남성이 루이14세의 아들이자, 태자인 루이 드 프랑스 '그랑도팽'(1661~1711), 오른쪽 빨간의상을 입은 남성은 그랑도팽의 아들인 루이 드 프랑스 '쁘띠도팽'(1682~1712), 그리고 왼쪽편 유모앞에 있는 아기가 쁘띠도팽의 아들인 루이15세(1710~1774). 루이14세가 1715년에 죽기전에 태자 그랑도팽이 1711년 천연두로 사망하고, 그뒤의 도팽자리를 아들 쁘띠도팽에게 물려지게 되나 1712년 역시 사망. 그리하여 루이14세의 증손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