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명 : 카밀로 보르게세 Camillo Borghese
Paulus PP. V, 1552~1621, 재위1605~1621
출생
1552년 교황령 로마(Rome)에서 아버지 마르칸토니오 보르게세(Marcantonio Borghese, 1504~1574)와 어머니 플라미니아 델리 아스탈리(Flaminia degli Astalli, 1530~1575)사이에서 태어남.
교육
페루자 대학교, 볼로냐 대학교에서 신학, 교회법, 법학, 철학등을 공부했다.
경력의 시작
대학교를 졸업하고 1596년, 교황 클레멘스8세(Clemens PP. VIII, 1536~1605, 재위1592~1605)에 의해 추기경 대리인으로 임명되면서 경력이 시작되는데, 1597년 주교 서품을 받고 교구(제시, 이탈리아 마르케)로 가서 주교로서 임무를 다한다(1599년까지). 이때가 보르게세가 생각하는 가장 여유로운 시간이였다고 전해지는데, 당파싸움과 파벌싸움으로부터 벗어나 법학자로서 법률서적을 읽는것에 시간을 많이 투자했다고 함.
1605 콘클라베
1605년 교황 레오11세(Leo PP. XI, 1535~1605, 재위1605년)가 재위한지 26일만에 선종하면서, 콘클라베에서 체사레 바로니오(Caesar Baronius, 1538~1607)와 로베르토 벨라르미노(Robert Bellarmine, 1542~1621)같은 거물급 추기경과 경쟁을 해서 후보들을 누르고 233대 교황 바오로5세(Paulus PP. V, 1552~1621, 재위1605~1621)로 선출된다.
(학벌X)족벌주의...족벌주의
족벌주의(친족중용주의, 교황이 자기의 사생아를 조카라 부르면서 대주교, 추기경등의 요직에 앉혀놓는 것)가 판치던 시대중에 바오로5세 재위기간에 족벌주의가 가장 극심했던 시기였다. 재위에 오르자마자 조카 씨피오네(Scipione Caffarelli-Borghere, 1577~1633)을 추기경 겸 교황청 국무장관으로 임명하면서 재위기간내내 씨피오네 말고도 다른 요직들을 친인척들에게 맡긴다.
트리엔트 공의회에 의거해 모든 주교가 자신의 교구에 거주해야한다고 주장함과 동시에 로마에 머물고 있는 주교들을 각 교구로 다 돌려보내버림으로서 족벌주의가 한층 더 강화가되는 시점이 된다.
이후 족벌주의는 1600년대말에나 가서야 교황 인노첸시오12세(Innocentius PP. XII, 1615~1700, 재위1691~1700)이 친인척에게 토지, 관직등을 주는 행위를 금지하고, 추기경을 임명하더라도 친인척은 1명만 임명가능하다라는 칙령을 1693년 발표하면서 사실상 근절되기에 이른다.
일본
1540년대에 필리핀 마닐라에 본거지를 둔 프란치스코회 수도사들이 일본으로 건너와서 선교 활동을 하다가 1597년 도요토미 히데요시(Toyotomi Hideyoshi, 1537~1598)의 교회 탄압으로 인해 체포되어 나가사키에서 순교하는 '26인 순교사건'이라고 불리는 일본 교회 최초의 박해가 일어난다. 1598년 히데요시가 사망하고 에도막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Tokugawa Ieyasu, 1543~1616, 쇼군 재위1603~1605)는 히데요시와는 생각이 달랐는데, 당시 필리핀은 스페인의 식민지로서 팽창은 경계했지만 무역체계는 일본이 편입했으면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하세쿠라 쓰네나가라는 센다이 다이묘 무사는 게이초 유럽파견 사절단(프란치스코 선교사들포함)을 통상교섭을 목적으로 유럽으로 감으로서 1615년초에 스페인 펠리페3세(Felipe III, 1578~1621, 재위1598~1621)를 알현한 후, 중반에 로마로 가서 일본 대표단 최초로 바오로5세를 알현하게 된다. 통상교역을 체결함과 동시에, 교황에게 일본에 선교사들을 보내줄것을 정식으로 요청하게 되면서 바오로5세는 동의를 하긴 하지만 일본은 이때부터 문을 더 굳게 닫는 쇄국정책을 시행하게 된다.
선종
1621년 1월 뇌졸중으로 선종. 1620년 말부터 이미 뇌졸중이 오게되면서 3개월간 업무도 보지못하고 누워있다가 선종하게 된 것. 이후 후임교황은 그레고리오15세(Gregorius PP. XV, 1554~1623, 재위1621~1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