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교황/201대~현직 교황

레오10세

Mintaka5 2024. 6. 30.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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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조반니 디 로렌초 데 메디치 Giovanni di Lorenzo de' Medici

Leo PP. X, 1478~1521, 재위1513~1521

레오10세, 출처-위키피디아

출생

1478년 피렌체에서 아버지 로렌초 데 메디치 'Il magnifico'(Lorenzo de' Medici, 1449~1492, 재임1469~1492)와 어머니 클라리체 오르시니(Clarice Orsini, 1450~1488)사이에서 태어남.

편의상 조반니라고 부르겠음.

 

할말이 없네..

어릴때부터 아버지 로렌초가 교회의 지도자로 삼기위해서 일찍이 신학공부를 시켰다고 함. 12살인 1489년에 추기경이 됨(?)..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면 조반니(레오10세 교황되기전)가 추기경이 되기 한해전인 1488년, 당시 교황 인노첸시오8세(Innocentius PP. VIII, 1432~1492, 재위1484~1492)에게 사생아가 있었는데(프란체스케토 키보, 1450~1519) 아들을 로렌초 데 메디치 'Il magnifico'(Lorenzo de' Medici, 1449~1492, 재임1469~1492)의 딸 마달레나 데 메디치(Maddalena de' Medici, 1473~1528)와 결혼시키면서 그 보답차원에서 조반니를 추기경에 서임시킨것.....

물론 이 서임에 다른 추기경들의 반발을 사게되면서 추기경을 상징하는 휘장을 장착하는 것을 삼가할 정도였으니,. 1492년 인노첸시오8세가 선종하기전까지 쥐죽은듯이 조용히 지냈다. 

 

1492년 콘클라베 이후

인노첸시오8세가 1492년 선종하고, 교황선출선거 콘클라베가 열리게 되는데, 이때 조반니 추기경도 참여하게 됨. 뭐 어찌저찌 알렉산데르6세(Alexander PP. VI, 1431~1503, 재위1492~1503)가 선출되는데, 이 해에는 아버지 로렌초 데 메디치도 서거한 해로서 콘클라베 이후 피렌체로 돌아오는데, 아버지 사후 통치자인 형 피에로 데 메디치(Piero de' Medici, 1472~1503, 재임1492~1494)가 아버지의 통치능력에 많이못미치고 포악한 성격으로 사고만 치다가, 1494년 프랑스의 샤를8세(Charles VIII, 1470~1498, 재위1483~1498)의 침공으로 전투가 벌어지는데 얼마 버티지도 않고 굴욕적으로 항복하면서 격분한 피렌체 시민들에 의해 조반니를 포함한 메디치가문 사람들 모두 추방당하게 됨.

 

거 까짓거 나가보자

이후 조용히 살면서 도덕적인 모습을 보이며 그 면모를 유지하는데 오랜시간을 보내는데, 1511년 당시 교황 율리오2세(Iulius PP. II, 1443~1513, 재위1503~1513)가 병을 얻으면서 선종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판단하여, 교황선출에 출마하겠다고 결심을 하게 되면서부터 인생이 바뀌게 된다. 이후 1512년 피렌체에서 메디치가가 다시 권력을 되찾게되면서 안정을 찾게 됨.

 

1513년 콘클라베

1513년 율리오2세(Iulius PP. II, 1443~1513, 재위1503~1513)가 말라리아로 인해 선종한 후 열린 콘클라베에서 아직35세밖에 되지않은 조반니가 교황에 뽑히게 되는데, 콘클라베 이전에 피렌체에 머무르고있던 도중에 치질이 강하게 와서 건강이 안좋은 상태라 투표권을 가진 동료 추기경들이 조반니가 교황에 올라도 오래못가겠구나 라고 생각해서 투표를 했다고 함. 

 

교황

1513년 즉위한 후, 여지껏 관례로 교황이 즉위할 때 추기경을 x명 선출하는등 임명권을 초기에 쓰는 편이였는데, 레오10세는 수도원의 수녀들까지에게도 특권을 부여하면서 확대시킴. 교황으로서의 재위 8년간(1513~1521)많은 사건들이 벌어지고 사건들을 일으키는데, 

프랑스의 프랑수아1세(Francois I, 1494~1547, 재위1515~1547)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주는 대가로 프랑수아를 밀라노 공작으로서 인정을 해주고, 이후 1516년 프랑스 총리대신 앙투안 뒤프라(Antoine duprat, 1463~1535)를 통해서 볼로냐 조약을 체결하면서[이 조약으로, 1438년 당시 프랑스 국왕 샤를7세(Charles VII, 1403~1461, 재위1422~1461)의 실용주의적 제재를 폐지, 프랑스 성직자 임명권을 프랑수아1세에게 주는등의 권한을 넘기게 됨]오랫동안 이어진 프랑스와 교황의 대립을 마무리짓게 됨.

 

마르틴 루터

레오10세 이전부터 교황들이 면죄부를 판매하는등 부패가 만연하면서 카톨릭에대한 불만이 쌓인게 결국엔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라는 종교개혁가를 세상에 나오게끔 하였는데, 생각보다 종교개혁의 불이 크게 번지면서, 레오10세는 루터를 이단으로 규정을 하고 군대를 보내 해산케하지만 루터는 쉽게 물러나지 않는다. 

1519년 신성로마황제 막시밀리안1세(Maximilian I, 1459~1519, 재위1493~1519)가 서거하면서 공석이 된 신성로마황제직을 가지고 벌어진 신경전중, 막시밀리안의 손자인 카를5세(Charles quint, 1500~1558, 재위1519~1556)가 즉위하게되는데, 카를5세의 즉위를 반대했던 레오10세로서는 카를5세와 루터를 저울질하면서 이익을 취하려했으나, 막상 카를5세가 황제직에 오르고나서는 갑자기 빌붙기 시작하면서, 이전 볼로냐조약으로 관계가 개선되었던 프랑스와 또 사이가 틀어지면서 유럽이 또 혼란스러워 지는데, 카를5세의 기가막힌 능력으로 다 패배하면서 결국엔 레오10세가 바라던 것 처럼 이득이 취해지게 됨(잘 붙었네..)

 

선종

1521년 갑작스럽게 발병한 오한으로 인해서 45세의 나이로 선종하게되는데, 여지껏 낭비벽이 심했던 레오10세로.. 교황청의 재정은 거의 파탄직전수준이라, 이후 교황들이 재정적으로 매우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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