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크시대 화가들/스페인 l'Espagne

디에고 벨라스케스

Mintaka5 2024. 4. 29.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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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고 벨라스케스(Diego Velázquez, 1599~1660)

스페인 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 자화상
디에고 벨라스케스 자화상, 출처-위키피디아

스페인 바로크 화가,  펠리페 4세 (프랑스어 Philippe IV, 스페인어 Felipe IV) 궁정을 주도하던 화가로 초상화 화가로도 유명하며 스페인 화가 프란시스코 파체코(Francisco Pacheco, 1564~1644)의 제자이기도 하다.

 

출생

1599년(펠리페3세, Felipe III, 재위원년)6월 6일, 스페인 왕국 세비야()에서 아버지 후안 로드리게스 데 실바(Juan  Rodríguez de Silva, 1574~?)와 어머니 헤로니마 벨라스케스(Jeronima Velázquez, 1575~?)사이에서 태어났다.

 

기회

1611년(펠리페3세, 재위 12년) 파체코의 문하생으로 들어가면서부터 미술교육이 시작되는데 수년간 교육을 받고 또한 파체코의 마음에 들었을까?.. 1618년에 파체코의 딸 후아나(1602~1660)와 결혼하기에 이른다. 23세이던 1622년(펠리페4세, Felipe IV, 재위원년)까지 세비야에 머물러 있다가 그해 왕의 사제(돈 후안 드 폰세카, Don juan de Fonseca, 1585~1627)로부터 추천서를 받고, 마드리드로 가게되는데 이후 벨라스케스의 영원한 후원자가 된 국왕 펠리페4세(1605~1665)의 즉위원년이 되는 해였고, 펠리페4세가 아꼈던 궁정 화가인 로드리고 데 비얀드란도가 1623년이 되기 한달전에 사망을 함으로서, 벨라스케스에게 기회가 생긴다.

폰세카의 초상화를 먼저 그리고난 다음 왕실에 초상화가 걸린 이후, 1623년에 드디어 펠리페4세로부터 주문이 들어온다. 두상만 그렸을 때 펠리페4세가 보게되는데도 만족하였던 펠리페4세가 벨라스케스를 자주 기용하면서 이때부터 벨라스케스의 인생이 풀리기 시작하며 월급이 계속해서 올라가고 보너스를 받게되면서 수도 마드리드에 머무를 수 있는 특권이 생기게 된다. 

말을 탄 스페인 왕 펠리페4세 초상화
말을탄 펠리페4세 초상화,1634년작, 출처-위키피디아

위 그림은 펠리페4세가 얼마나 벨라스케스를 아꼈을지 예상이 가는 그림이다. 앞서 페테르 파울 루벤스 게시물에서 루벤스가 스페인 마드리드 왕궁에 체류(1628~1629)한 기간에 벨라스케스와 루벤스 둘은 친구가 되는데, 루벤스의 권고로 1628년 로마에 유학을 가게되면서 이때 벨라스케스는 바로크의 시조격인 카라바조풍과 기존의 르네상스풍(베네치아파)를 동시에 습득하여 절묘하게 조합을 하는 기법을 터득하기에 이르는데, 이것이 현재의 인상주의와 비슷한 형태이다.

 

 

모리스 라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의 주인공

1656년 작 '시녀들'
시녀들, 1656년 작, 출처-위키피디아

필자 본인이 개인적으로 벨라스케스 작품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본인으로서 인상주의 작곡가 모리스 라벨(Maurice Ravel, 1875~1937)이 이 작품을 보고 영감을 얻어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1899년작)를 작곡한 스토리가 있다. 위 그림속 중간에 앉아있는 작은 공주가 스페인 왕 펠리페4세의 딸이자, 외삼촌 신성로마황제 레오폴트1세(Leopold I, 1640~1705, 재위1658~1705)의 황후가 되는 마르게리타 테레사 왕녀(Margarita Teresa, 1651~1673)이다. 합스부르크 가문의 근친결혼으로 인한 유전자 변이로 인해 비정상적인 주걱턱이 주 특징에, 근친으로 태어난 자식이라 선천적으로 약했다. 딸 출산이후 몇년간 후유증과 쇠약증이 겹쳐 22세로 죽게되는 황후이다. 여담으로, 그림을 자세히 잘 보면 왼쪽에 이젤앞에 서서 정면을 바라보는 남자가 벨라스케스 본인이고, 거울속엔 펠리페4세 부부가 비춰져있다. 

 

사망

벨라스케스는 왕 펠리페4세의 신임을 계속 받아, 국내외 수많은 귀족, 왕가 고위귀족들의 초상화를 수백여개를 그리기에 이르며, 1660년 8월 6일 61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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