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ego Velázquez(1599~1660)
스페인 바로크 화가, 펠리페 4세 (프랑스어 Philippe IV, 스페인어 Felipe IV) 궁정을 주도하던 화가.
초상화 화가로도 유명함. 파체코(1564~1644)의 제자이기도 함..
출생
1599년(펠리페3세, Felipe III, 재위원년) 세비야 출생, 1611년(펠리페3세, 재위 12년) 파체코의 문하생으로 들어가면서부터 미술교육이 시작되는데 수년간 교육을 받고 또한 파체코의 마음에 들었을까?.. 1618년에 파체코의 딸 후아나(1602~1660)와 결혼하기에 이른다
역시 인복이 있었던가? 1622년(펠리페4세, Felipe IV, 재위원년)까지 세비야에있다가 그해 왕의 사제(돈 후안 드 폰세카, Don juan de Fonseca, 1585~1627)로부터 추천서를 받고, 마드리드로 가게되는데 이후 벨라스케스의 영원한 후원자가 된 국왕 펠리페4세(1605~1665)의 즉위원년이 되는 해였고, 펠리페4세가 아꼈던 궁정 화가인 로드리고 데 비얀드란도가 1623년이 되기 한달전에 사망을 함으로서, 벨라스케스에게 엄청난 기회가 생긴 것이다...!
기회가 온건가?
폰세카의 초상화를 먼저 그리고난 다음 왕실에 초상화가 걸린 이후, 1623년에 드디어 펠리페4세의 주문이 들어온다. 두상만 그렸을 때 펠리페4세가 보게되는데도 엄청 만족했나보다.. 이때부터 벨라스케스의 인생이 풀리기 시작하고..월급이 계속해서 올라가고 보너스를 받게되며 마드리드에 머무를 수 있는 특권이 생기게 됨. 집세와 팔리지 않은 작품까지 챙겨주었으니.. 이제 맘편하게 그리는 일만 남은 것 이다.
왕이 얼마나 벨라스케스를 아꼈을지 예상이 가는 그림이다. 앞서 루벤스 게시물에서 루벤스가 마드리드 왕궁에 체류(1628~1629)한 기간에 둘은 친구가 되는데, 루벤스의 권고로 1628년 로마에 유학을 가게되는데, 이때 벨라스케스는 카라바조풍과 르네상스풍(베네치아파)를 동시에 습득하여 절묘하게 조합을 하는 기법을 터득하기에 이르는데 현재의 인상주의와 비슷한 형태이다.
모리스 라벨 - 죽은왕녀를 위한 파반느
본인이 개인적으로 벨라스케스 작품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본인으로서 인상주의 작곡가 모리스 라벨(1875~1937)이 이 작품을 보고 영감을 얻어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1899년작)를 작곡한 스토리가 있다.
이 그림속 중간에 앉아있는 작은 공주가 펠리페4세의 딸이자, 외삼촌 신성로마황제 레오폴트1세의 황후가 되는 마르게리타 테레사 왕녀(1651~1673)이다. 합스부르크 가문의 근친결혼으로 인한 유전자 변이로 인해 비정상적인 주걱턱이 주 특징에, 근친으로 태어난 자식이라 선천적으로 약했다. 딸 출산이후 몇년간 후유증과 쇠약증이 겹쳐 22세로 죽게되는 황후이다.
그림을 잘 보면 왼쪽에 이젤앞에 서서 정면을 바라보는 남자가 벨라스케스 본인이고, 거울속엔 펠리페4세 부부가 비춰져있는걸 확인하셨나요? 몰랐죠?!
이리하여 왕의 신임을 죽을때까지 받아, 국내외 수많은 귀족, 왕가 고위귀족들의 초상화를 수백여개를 그리기에 이른다.
1660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