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is XII(1462~1515, 재위 1498~1515)
출생
샤를 도를레앙(Charles Ier d'Orléans, 1394~1465)과 세번째 부인 마리 드 클레브(Marie de Clèves, 1426~1487)사이에서 1462년에 둘째로 태어남. 년도를 보면 놀랄수도 있는데, 아버지 샤를 도를레앙과 나이차이가 무려 66살 차이가 남(66세에 루이12세를 낳음). 그래서 그런지 루이12세가 태어난지 3년만에 아버지 샤를 도를레앙이 7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는데 이건뭐.. 저때당시 70세면 장수했다고 보면됨.
여기도 다이아몬드 수저
1465년 아버지 샤를 도를레앙이 노환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아버지가 가지고있던 오를레앙 공작(Duc d'Orléans)을 승계받는데, 3세밖에되지도 않은 루이를 당시 프랑스 군주이자 루이12세의 6촌형인 루이11세(1423~1483)의 궁정에서 생활하게 됨(루이11세가 6촌형이지만 둘은42년의 나이차이가 있다, 루이11세의 할아버지 샤를6세와 루이12세의 할아버지 루이 도를레앙이 형제지간).
너 내 딸이랑 결혼해라. 어?
원래 루이12세는 프랑스 왕과는 거리가 먼 집안이였는데(왕은무슨...조용히 살자), 사촌형 루이11세(1423~1483)의 딸이자 7촌 조카 잔 드 프랑스(1464~1505)와 정략혼인을 하게되면서 잔의 남동생이자 또한 7촌조카인 샤를8세(1470~1498)의 매형이 되면서부터 루이12세의 운명이 바뀌게 됨.
아 니가왜 섭정인데
1483년 루이11세가 나이가 들어 세상을 떠나고 어린 샤를8세(1470~1498, 당시13세)를 대신해서 큰 누이 안 드 보주(1461~1522)가 섭정(섭정기 1483~1491)을 맞게되면서, 빡친 루이12세가 1488년 브르타뉴 공작 프랑수아2세(1433~1488)와 이미 프랑수아2세와 동맹을 맺은 신성로마제국 막시밀리안1세(1459~1519)와 함께 프랑스를 공격하는데, 패배하고 포로로 잡히게 되며, 베르제 조약(le traité du Verger)으로 마무리지어지며, 야욕이 한풀 꺾이게 되고 섭정은 유지가 됨.
이득
1491년 공식적으로 큰누나 안 드 보주(1461~1522)의 섭정이 끝나고, 루이12세도 용서를 받아 풀려나게 됨. 이후로 좀 조용히 살았던 듯 하다 근신하면서.. 근데 역시 사람일은 모른다고 했던가, 1498년 한창의 나이(28세)인 샤를8세가 쥬드폼(오늘날의 테니스와 같은 스포츠)를 즐기고 문틀에 머리를 세게 부딫히고 몇시간후에 갑자기 급사한다(뇌진탕으로인한??). 게다가 샤를8세의 어린자녀들은 모두 요절해버려서 갑자기 후계자마저 공석이 되는데..
제일 가까운 계승자가 누구겠는가, 바로 루이12세. 살리카법에 의해서 루이가 프랑스의 군주로 오르게 되는데, 이로서 발루아왕조 직계(1328~1498)가 끊기고 방계(발루아-오를레앙, 1498~1515)로서 명목을 이어나가게 됨.
국민의 아버지
재위이후 영토전쟁이 많이 일어나는데, 아라곤과의 나폴리분쟁, 베네치아대항전쟁 등등 국세가 많이 들어가면서 불만이 많았을 것에, 1504년부터 재정개혁과 세금동결, 세금징수과정 개선 등으로 많은노력을 거쳐서 국내에서 큰 지지를 받게되면서, 삼부회에서 '국민의 아버지(le père du peuple)'라는 칭호를 얻게 됨.
상남자네..
이분.. 복상사로 돌아가신 분인데 총3번의 결혼중 마지막부인 메리 튜더(Mary Tudor, 1496~1533)와 하시다가 돌아가시게 된다(1515년). 자식은 물론 없어서, 이번에도 발루아-오를레앙왕가가 끊기며, 이후 프랑수아1세(1494~1547)가 되는 프랑수아 당굴렘에게 프랑스 군주가 되면서 발루아-앙굴렘 가(1515~1589)가 이어지게 됨.
'프랑스의 군주, 고위 귀족 > Valois, 발루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샤를1세 도를레앙 (0) | 2024.06.01 |
---|---|
루이11세 (0) | 2024.05.30 |
샤를 6세 (0) | 2024.05.24 |
샤를9세 (0) | 2024.05.21 |
프랑수아2세 (0) | 2024.05.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