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수아2세(François II, 1544~1560, 재위 1559~1560)

출생
1544년(프랑수아1세, 재위29년) 앙리2세(Henri II, 1519~1559)와 카트린 드 메디시스(Catherine de Médicis, 1519~1589)의 첫째 아들로 퐁텐블로궁(Château de Fontainebleau)에서 태어났다.
배경
운명이란게 참 황당하게 일어나곤 하는데, 1559년 앙리2세가 여동생 마르그리트 드 프랑스(Marguerite de France, 1523-1574)의 결혼을 축하하는 연회에서 마창토너먼트에 직접 참가했다가 상대편 창날이 부러지면서 파편이 앙리2세의 눈 위에 박히게되면서, 이로인한 감염으로 사망하게 되버린다[왕이 상대편에게 왕이라고 봐주지말고 해라 라고 했는데 이리 되어버리면 상대편은 어떻게 되는걸까? 에 대한 내용은 가브리엘1세 드 몽고메리 백작, Gabriel Ier, comte de Montgommery, 1530~1574)를 참고]. 아버지 앙리2세의 급작스러운 사망으로 프랑수아가 당시 만15세의 나이로 즉위하게 된다.
프랑스판 세도정치
갑자기 사망해버린 프랑스 왕의 부재로 프랑스 내에선 엄청난 혼란이 일어나게 되는데, 이는 뒷배경에 기즈가문(Maison de Guise)이 있었기 때문인데, 즉위한 프랑수아2세의 외척세력이라고도 할 수 있는 가문으로서 이 가문은 클로드 드 기즈(Claude de Guise, 1496~1550)때에 가문이 융성하게 되는데, 클로드의 딸 마리(Marie de Guise, 1515~1560)가 스코틀랜드의 제임스5세(1512~1542)와 결혼하여 딸 메리스튜어트(1542~1587)을 낳자마자 제임스5세가 세상을 떠나버려 갓난아이 메리스튜어트가 여왕으로서 즉위하게되며 동시에 섭정이 되면서 권력을 차지하고, 메리 스튜어트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자라서 앙리2세를 이어 프랑스 왕이 된 프랑수아2세와 결혼하게 되면서 외척세력으로 실세가 된다.
또한 앙리2세의 왕비이자 프랑수아2세의 어머니인 카트린 드 메디시스가 프랑수아2세즉위부터 사실상 섭정이 되며 기즈가문과 팽팽한 대립을 하게 된다(1800년대 조선후기 세도정치때와 비슷한 양상이 펼쳐지게 됨). 당시로서는 프랑수아2세(1544~1560)가 성인이 된 나이에 즉위를 했고(1559년,15세), 법적으로 친정을 하고 섭정위원회를 둘 필요가 없지만, 워낙 신체가 허약하고 경험이 부족한 상태라 기즈가문에 권력을 위임할 수 밖에 없었던 실정이였다. 프랑수아2세의 1년여간의 짧은 기간동안 프랑스는 순식간에 암흑으로 치닫으면서, 1562년부터 1598년까지 36년간의 내전이벌어지는 위그노 전쟁이 펼쳐지게되는 첫 시발점이라고도 할 수 있다. 기즈가문의 개신교(위그노)에 대한 억압정책으로 1560년 앙부아즈의 음모(프랑스의 위그노 귀족들이 가톨릭교도인 기즈 가문을 상대로 꾸민 음모로서 기즈 가문이 위그노를 탄압하자, 위그노 귀족들이 정부를 전복하려고 한 사건)를 계기로 도화선이 터지게 된다.
승하
그 와중에 프랑수아2세는 허약한 신체가 버티지 못하고 16세로 사망하고 만다. 이후 남동생 샤를9세(Charles IX, 1550~1574, 재위1560~1574), 앙리3세(Henri III, 1551~1589, 폴란드재위1573~1575, 프랑스재위1574~1589)등이 즉위하나, 어머니의 치맛폭에 쌓인 왕이라 조롱받고, 위그노전쟁의 광풍에서 벗어나지못하고 앙리3세가 암살됨에따라 프랑스 발루아(Maison de Valois)왕조가 문을 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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