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군주, 고위 귀족/Valois, 발루아

샤를 6세

Mintaka5 2024. 5. 24.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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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rles VI le fou(1368~1422, 재위1380~1422)

 

출생

1368년 일드프랑스 파리 오뗄 쌩-뽈(Hôtel Saint-Pol)에서 프랑스 군주 샤를5세(Charles V, 1338~1380, 재위1364~1380)와 잔 드 부르봉(Jeanne de Bourbon, 1338~1378)사이에서 차남[형 장 드 부르봉(Jean de Bourbon, 1366~1366)이 요절하면서 사실상 장남]으로 태어남.

 

태어나자마자 핵 다이아몬드 수저

위에서도 설명했듯이 차남인데, 형 장 드 부르봉이 태어나자마자 죽어버려 사실상 장남으로서 샤를이 태어나자마자 도팽(Dauphin, 프랑스의 왕태자)의 작위를 얻게 됨. 유아기 도팽은 거의 잘 없는데 이례적으로 샤를이 받게됨.

 

삼촌들이 와이리 많노?

아버지 샤를5세(1338~1380)가 갑자기 42세로 급사를 해버리는데, 어머니 잔 드 부르봉도 샤를5세가 죽기 2년전 1378년에 사망하여서 샤를6세의 양육또한 맡길 인물이 없어져 버린다. 자연스럽게 다음 계승은 도팽 샤를이 되는데, 역시 또 나이가 문제다(12세). 프랑스에선 아직 12세면 미성년자로서 직접통치가 어려웠는데, 아버지 샤를 5세의 남동생들이자 샤를6세의 삼촌들이...3명이나 되었다. 나열하면(나이순으로) 앙주공작 루이(Louis, duc d'Anjou, 1339~1384), 장 드 베리(Jean, duc de Berry, 1340~1416), 필리프 드 부르고뉴(Philippe II de Bourgogne 'le Hardi', 1342~1404), 그리고 외가쪽으론 외삼촌 루이 드 부르봉(Louis II de Bourbon, 1337~1410)등 이다. 샤를5세의 칙령에 따라, 나이순으로 루이가 샤를6세의 섭정으로, 둘째 베리공작은 랑그도크와 프로방스, 필리프와 외삼촌 루이는 조카 샤를6세의 보호와, 파리, 노르망디등의 경계및 보호를 맡게 됨. 왜냐면 아직 백년전쟁(La guerre de cent ans, 1337~1453)이 계속 지속되었기 때문. 언제든지 위험에 노출될만한 상황이였음.

 

세금이고 뭐고 니들이 다 해무라..

그렇게 삼촌3형제와, 외삼촌까지 권력의 핵심자리에 오르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권력구도가 형성이 되는데, 섭정이자 첫째삼촌 앙주공작 루이가 재정적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나폴리 여왕 잔에게 입양되어 나폴리 군주자리를 엿보게 되면서(이게 돈이 더 들어가는데?) 나폴리 원정대 지원을 위해 어마어마한 왕실 국고가 빠져나가게 되는데.. 그럼뭐다.? 세금올려야지... 이로인해 샤를5세때 중지시킨 간접세를 다시 부활시키는데, 안그래도 전쟁통이고 먹고살기 힘든처지에 누가 좋아하겠는가?  폭동이 일어날 명분을 던져준 셈이지.. 

이후 프랑스 전역에서 폭동이 일어나게되는데, 이리저리 부수고 농민들을 죽이는등 폭도들의 행태가 예사롭지 않음에 샤를6세가 분노하여 왕권을 확인시킬 기회다 삼고, 직접 군대를 이끌고 가서 본보기를 보여줌으로서 왕권은 확인시키는데 성공하는데, 세금에 대한 얘긴 없이.. 

 

드디어 친정시작? 역시 피는 진하네,. 

1385년, 샤를6세의 유일한 남동생 루이 도를레앙(Louis d'Orléans, 1372~1407)의 도움으로 삼촌들의 영향에서 벗어나 친정을 시작하게 됨. 아버지 샤를5세를 따르던 신하들을 등용하여 완전히 권력을 장악하긴 했는데, 친정을 위해 도움을 준 동생 루이의 권력도 만만치 않게 커져버렸다.

 

정신병

맨위에 적혀져있는 le Fou라는 단어가 되게 궁금했을 것이다. 프랑스어로 '광인왕' 일명 미치광이 왕이다. 1392년 샤를6세가 갑자기 정신불열증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감정조절이 안되고 이것저것 가리는 것 없이 던지고 때리고 하면서 통치를 할 수 없게 되면서, 동생 루이도를레앙이 샤를6세를 대신해 섭정까진 아니고, 섭정위원회의 일원이 되는데 사실상 섭정이다. 

 

막내삼촌과 동생의 대립

루이의 권력이 실세급으로 막강해지면서, 당연히 대립이 안일어난다면 이상한 상황이 되는데, 앞서 언급했던 삼촌3명(앙주공작 루이, 베리공작 장, 부르고뉴 공작 필리프)중 막내삼촌 필리프가 세 사람들 가운데 가장 야망이 컸던 사람으로 보인다. 부르고뉴 공국이라는 독자적인 공국에서 어떻게 하면 이 공국을 키울까 했는 상황에서, 한창 백년전쟁중에 싸우던 영국을 이용해야 겠다는 것을 느끼는데, 루이는 이 생각과 좀 달랐던 것 같다. 

 

가족끼리 와 싸우노?

볼링베르크의 헨리의 경우 당시 영국 리처드2세의 감시를 받으면서 파리에 머물고 있었는데 필리프의 경우엔 볼링베르크를 철저히 감시하면서, 리처드2세와 조카 샤를6세간의 대립상황에서 부르고뉴 공국이 이득을 볼 것이라 생각하는데, 루이 도를레앙은 선수를 미리치면서, 볼링베르크에게 지원을 해줘서 영국에 다시 돌아가서 리처드2세를 끌어내려 왕위에 올라라고 해버린다. 그리하여 지원을 받은 볼링베르크가 리처드2세를 몰아내고 헨리4세로 영국의 군주로 즉위를 하게되는데 필리프가 빡이 치지 않겠는가..

그래서 바로 1401년 군대끌고 루이 도를레앙을 협박하는데, 아 삼촌들과 가족들이 중재를 한다. 특히 장 드 베리(베리공작 장), 바이에른의 엘리자베트(샤를6세의 왕비), 앙주공작 루이2세(앞서말한 앙주공작의 아들)가 뜯어 말린다. 싸우지 말라고. 다행이 전투는 안벌어지지만, 1404년 필리프가 죽고 아들 장 드 부르고뉴(루이 도를레앙과 사촌지간)와 루이 도를레앙의 피튀기는 승부가 이후에 펼쳐지게 된다(암살과 암살)

 

죽을때까지도 권력다툼

1422년 54세의 나이로 승하하게 된다. 죽기전까지 가족들간의 권력다툼, 영국과의 백년전쟁 지속 뭐 물론 1415년 아쟁쿠르 전투에서는 영국 군주 헨리5세(Henri V d'Angleterre, 1386~1422)에게 아주그냥  대패를 당한다. 태어나면서 죽을때까지 혼란의 연속이였는데, 병이 안걸리면 이상한 정도 아니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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