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군주, 고위 귀족/Bourbon, 부르봉

앙리4세

Mintaka5 2024. 5. 15. 23:46
반응형

Henri IV "le grand"(1553~1610, 재위 1589~1610)

Henri IV, 1553~1610

대왕폐하 출생

1553년 당시 나바라왕국 지역인 누벨아키텐 포(Nouvelle Aquitaine Pau)에서 앙투안 드 부르봉(Antoine de Bourbon, 1518~1562)과 나바라 여왕 잔 달브레(Jeanne d'Albret, 1528~1572)사이에서 태어남. 잔 달브레는 발루아-앙굴렘가문출신 프랑스군주 프랑수아1세의 조카이다..!(잔 달브레의 어머니 마르그리트 드 발루아(Marguerite de Valois, 1492~1549)가 프랑수아1세의 친누나임)

우리나라의 대왕이라하면 바로 누구든 세종대왕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면 프랑스에서 대왕하면 두명이 떠오를것이다 앙리4세와 루이14세(이분은 그냥 너무 강력하셔서 대왕별칭과 동시에 태양왕..)가 떠오른다고 할 것인데, 앙리4세가 프랑스인들이 자타공인하는 대왕이라고 할 수 있겠다(재위 중 업적을 많이 남기심)

 

슬리데린급 혈통

부계로나, 모계로나 아주그냥 끝내주는 혈통이다. 아버지 앙투안 드 부르봉(부르봉 가문)에서 부르봉 가문은 쭉쭉 역사를 타고 올라가서, 성왕 루이9세(Louis IX "Saint", 1214~1270)의 아들 로베르 드 클레르몽(Robert de clermont, 1256~1317)이 초대 부르봉 백작으로서 시조가 되며(루이9세 직계), 어머니 잔 달브레 또한 나바라 왕가를 따라 올라가면 루이10세가 나온다...! 둘다 프랑스 혈통인 셈. 7촌인 앙리3세(1551~1589, 재위 1574~1589)가 암살당하고, 프랑스 왕이되는데 집안배경이 딱 맞아 떨어져서 프랑스 왕이 되게 됨. 

 

프랑스에 장가가자마자 골치가 아파지네...

1570년부터 앙리4세의 어머니 잔 달브레와 프랑스 앙리2세의 왕비였고 대비인 카트린 드 메디시스(1519~1589)간에 혼담이 오가는데, 앙리4세와 카트린의 딸 마르그리트 드 발루아 "마고"(Marguerite de Valois, 1553~1615)와의 혼인이. 참고로 잔 달브레의 어머니 마르그리트 드 발루아랑은 다른 사람으로써 편의상 카트린의 딸은 마고라 부르겠다(큰할머니-손녀지간임) 카트린 입장에서도 자식들에서 대가 끊기면 자연스럽게 앙리4세에게로 프랑스 왕위가 넘어갈바에야.. 발루아 가문출신 군주의 대가 끊기지 않기위해 딸과 혼인을 기획했을 것이다. 아무쪼록 둘이1572년 결혼을 하게되어, 잔 달브레가 파리에 먼저 가서 있는데 호흡기질환으로 그만 세상을 떠나고말아서 앙리4세가 나바라의 군주로 즉위를 하게된다. 근데...? 그해8월에 그 유명한 성 바르톨로뮤 대학살이 벌어진다.. 

 

위그노vs 카톨릭 숙청 et 숙청

저번 앙리2세부분에서 나왔던 실세 기즈가문(Maison de Guise)과 콜리니 등등 사건에 직접적으로 연루된 인물들이 수두룩 하다.. 이야기가 길어지니 이때 수만명이 그야말로 학살을 당한다. 그냥 1589년 앙리3세가 죽기전까지 아주그냥 피가터진다 터져.. 혼란의 연속 글쓰기도 엄청 애매해져서 그냥 종교전쟁이다.. 글쓰면 내용이 더 혼란스러울 것

이차저차 앙리3세가 1589년에 죽고, 자연스럽게 앙리4세가 프랑스의 군주로 등극을 한다 그러나 아직 끝이아니다.

 

종교전쟁은 1598년까집니데이..

군주로 등극 후에도 신교도의 맹주로서 견제를 받고, 왕권을 강화시키기위해 노력을 하게되는데, 이과정에서 프랑스인들을 위해 카톨릭으로 다시 개종을 하여 프랑스인들에게 사실상 민심을 얻으면서도 주변국 영국의 엘리자베스1세(Élisabeth I, 1533~1603,재위 1558~1603)로서는 경악을 금치못하고(영국은 신교국가) 지원을 모두 차단당함. 그래도 어차저차 내실을 잘 꾸려나간 결과 1598년 그 유명한 낭트칙령(L'édit de Nantes, 1598, 설명: 프랑스 내에서 가톨릭,위그노(신교)의 종교적 자유를 인정하는 칙령)이 반포가 되면서 드디어 종교전쟁(1562~1598)이 막을 내리게 된다.

 

이제 프랑스가 정비가 좀 되네.. 다들1주일 1닭 콜? 어.... 앗 칼이다..

낭트칙령 이후 36년간의 위그노 전쟁으로 황폐해진 프랑스의 복구에 힘을 쓴 결과,  거대한 합스부르크 제국에 견줄만한 국력을 갖추게 된다. 명재상 쉴리(막시밀리앙 드 베튄,Maximilien de Béthune, 1559~1641)와의 환상의 콤비로, 그 유명한 매주 일요일 저녁엔 프랑스 국민 모두 닭요리를 먹을 수 있게하라라는 명언을 남긴다. 이때부터 프랑스 국민의 뇌리에 앙리4세=좋은 왕이라는 인식이 심어진 것 같다(뭐.. 어떤국가의 국민이든 왕이 누구냐보다 굶지않고, 배부르게 해주는왕이 최고). 그러다 1610년 5월14일 쉴리를 만나러 가는 와중에 카톨릭광신도 프랑수아 라바이약(François Ravaillac, 1578~1610)에게 칼로 여러번 찔리면서 암살을 당하게 된다. 

갑자기 왕이 암살되자 혼란이 오는건 당연.. 왕실에서도 바로 왕을 옹립해야하는데, 9살의 어린 장남 루이13세(Louis XIII, 1601~1643,재위1610~1643)가 왕위에 오르게되면서 명목을 이어나가게 된다(루이13세 글 참조) .

 

대왕의 그림자

이분.. 여자 많이 밝혔다.. 정부가 50명이나 되버린다...  뭐물론 당시에 군주한테 정부가 있는게 문제는 아니지만..ㅎㅎ50명이다 50명. 알아서 생각들하길 별명: le vert galante (호색한) 물론 나쁘다고 얘기한 적 없다.

반응형

'프랑스의 군주, 고위 귀족 > Bourbon, 부르봉' 카테고리의 다른 글

루이16세  (1) 2024.06.08
루이15세  (1) 2024.06.07
루이14세  (0) 2024.05.27
필리프 도를레앙 2세  (0) 2024.05.08
루이13세  (2) 2024.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