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군주, 고위 귀족/Bourbon, 부르봉

필리프 도를레앙 2세

Mintaka5 2024. 5. 8.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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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ippe d'Orléans, le Régent(1674~1723, 섭정재위 1715~1723)

1674년 오드센 생클루(Haut de seine Saint-cloud) 출생. 

 

다이아몬드 수저

루이 13세(Louis XIII, 1601~1643)의 손자, 루이 14세(Louis XIV, 1638~1715)의 남동생 오를레앙 공작 필리프 드 프랑스ou 필리프 도를레앙 1세(dit "monsieur", 1640~1701)의 아들. 

루이14세의 조카가 되는셈. 어려서부터 군사 및 외교 기능에 초점을 맞춘 세심한 교육을 받았는데(1682년 쁘띠도팽이 태어나기 전까지 1위 *루이 드 프랑스 "그랑도팽"(Louis de France "grand dauphin", 1661~1711), 2위 아버지 필리프 도를레앙1세,  자기자신이 계승순위 3위였기 때문), 특히 역사, 지리, 철학, 과학, 음악에 관심이 많을 정도로 다방면에 뛰어난 모습을 보이고 야심까지 있던게 삼촌인 루이14세가 조카이지만 선을 두고 경계를 했다고 전해짐.

이후 1682년 *루이 드 프랑스 "쁘띠도팽"(Louis de France "petit dauphin",1682~1712), 1683년 미래의 스페인 부르봉왕조 시조가되는 필리프 드 프랑스(미래의 Felipe V d'Espagne,펠리페5세), 1686년 베리 공작 샤를(Charles de France, duc de Berry, 1686~1714)까지 태어나게되면서 3위에서 6위로 순위가 밀리게 됨.. 

루이14세는 조카의 야망을 바로는 잠재우지는 못하겠다 싶어서, 눈에 바로 보이는 곁에두기로 하고 군인으로 두며 전쟁때도 곁에서 임무를 수행하게 했다고한다

*이 페이지에 루이 드 프랑스만 4명이나온다.. 헷갈리지 않게끔 각각 생몰년도를 써놨으나,  다시 정리하자면 루이 드 프랑스 "그랑도팽"(Louis de France "grand dauphin", 1661~1711),  루이 드 프랑스 "쁘띠도팽"(Louis de France "petit dauphin", 1682~1712), 루이 드 프랑스(쁘띠도팽의 첫째아들이자 루이15세의 형, 1707~1712), 루이 드 프랑스(루이15세, 1710~1774)..

 

드뎌 기회가 생기나..?

근데 어릴적부터 보였던 야망과 특출난 능력 때문이였을까, 사촌동생들이지만 계승순위가 높은 쁘띠도팽, 베리공작등과 심지어 혈통친왕세력 콩데가문에서도 필리프를 시기, 질투하는데 이게 전시상황에서도 이어져버리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리프는 상황을 잘 넘기고, 인내한다. 

1700년에 드디어 계승순위 상위권중 한명이 스페인으로 가게되는데 그인물이 필리프 드 프랑스(펠리페5세)이다. 1700년부터 1714년까지 스페인 왕위계승전쟁이 벌어지게되는데 필리프 도를레앙은 이때 스페인쪽에서 활약을 하게된다. 그러다 1701년 아버지 필리프 도를레앙1세가 사망하자마자 오를레앙 공작 작위를 받게되는데, 오를레앙 공작작위는 왕실 직계가 아닌 방계가문에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작위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필리프는 조용히 지낸다.. 아직 루이14세가 멀쩡히 살아있기 때문(77세까지 산다.....그때당시로는 초장수).  1711년 그랑도팽, 1712년 쁘띠도팽이 천연두로 사망하고 그해 루이15세의 형(*루이 드 프랑스)이 사혈치료를 받다가 사망하게되는데, 이때 마침 또 시기질투하던 세력들이 필리프 도를레앙이 꾸민 짓이라고 소문을 퍼트려 곤혹스럽게 되지만 이 또한 무사히 넘기게됨(1713년당시 왕위계승순위 1위 *루이 드 프랑스(미래의 루이15세) 2위 베리공작 샤를(1686~1714) 다음으로 3위가 필리프 도를레앙이 된다).

 

존버는 승리한다..

근데, 1714년 베리공작 샤를마저도 사냥중 낙마사고로 뇌출혈로인해 사망을 하게되면서 순식간에 계승순위 2위가 되어버리자... 루이14세도 죽기전에 결단을 내릴 수 밖에 없었나보다. 루이14세가 사망하면 섭정을 선포해야 하는데, 루이 14세는 유언장에서 필리프 도를레앙의 권한을 제한하려 했고, 통치기구인 섭정 의회의 구성을 명시하게되는데... 그리하여 사생아 메인 공작에게 어린 루이(루이15세)의 양육권과 후견권을 맡겼는데, 필리프 도를레앙은 의회에서 "섭정 의회 의장"을 맡고 있는 상태였으며 자신이 정당하다고 발언하고, 특권을 박탈한다는 루이14세 유언장을 무효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결국 성공하여 루이15세의 후견인이 되고 섭정이 되는데 성공한다.

루이14세가 우려했던 장면의 탄생. 오른쪽 서있는 사내가 루이15세, 의자에 앉아있는 사람이 필리프 도를레앙.

드디어 섭정기(régence, 1715~1723) 시작

필리프 도를레앙은 섭정기 시작인 1715년부터 1723년까지 루이15세가 머무르는 베르사유궁을 대신해 정치 및 예술 생활의 중심지가 된 팔레 후아얄(Palais-Royal, 지금으로치면 총리관저 비슷한 느낌?)에 거주하며 섭정 통치를 이어나가게 됨.

섭정기시기는 화려함과 사치스러움, 허영심등이 극치를 달리게 되는데, 이 때 볼테르(Voltaire, 진짜이름은 프랑수아-마리 아루에François-Marie Arouet, 1694~1778)가 섭정을 비판하는 글을 썼다가 수감되는 일까지 발생하게된다....

크게볼때 이 섭정기시기를 기점으로해서 바로크에서 로코코로 예술적 양식이 변화하는 시기라고 본다. 이후 루이15세는 삼촌 필리프 도를레앙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않은 화려함과 사치스러움, 허영심 (+여성편력)까지... 가지게되며 예술은 더 융성해지는 웃프지못할 상황이 발생하게된다.

필리프 도를레앙은 1723년, 베르사유에서 사망하고 이후 루이15세의 친정이 시작되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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