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군주, 고위 귀족/Bourbon, 부르봉

루이16세

Mintaka5 2024. 6. 8. 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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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16세(Louis XVI, 1754~1793, 재위1774~1792)

  전임 군주 당시 재직 군주 후임 군주
프로필 루이15세
Louis XV
1710~1774
재위1715~1774
루이16세
Louis XVI
1754~1793
재위1774~1792
제 1 공화국
1792~1804

루이16세, 출처-위키피디아

출생

1754년, 루이15세의 아들이자 도팽(dauphin, 왕태자)인 루이 페르디낭 드 프랑스(Louis ferdinand de France, 1729~1765)와 마리아 요제파 폰 작센(Maria Josepha von Sachsen, 1731~1767) 사이에서 3남으로 태어났다. 루이15세와 비슷하게도, 미성년때 아버지(1765) 어머니(1767)를 잃고, 형들(1755, 1761)도 모두 잃음. 그래서 3남으로서 루이15세가 사망한 1774년 왕위를 계승할 수 있게 되며 즉위한다. 

 

불안한 왕권

5대조 할아버지 루이14세, 조부 루이15세부터 이어져온 과도한 부채로인한 이자와 경제구조 자체적문제, 불평등등이 이미 곪을데로 곪아버려 회복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시기에 재위에 올라서, 많은 책임을 요했다. 세금으로는 도저히 이자를 충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서, 다른국가에 차관을 도입하는 정도까지 와버렸는데 그래서 루이16세가 즉위하며 재무장관(현재의 기획재정부 장관)인 안 로베르 자크 튀르고(Anne Robert Jacques Turgot, 1727~1781)를 기용하며 경제개혁이 실시가 되는데, 내세우는 조건이 미국 독립전쟁 개입반대와 귀족들에게도 세금을 매기고, 독점을 해지하여 국민들에게 이익이 돌아가게끔 하는 것이였는데 나름 효과가 있었는데 귀족들의 반발이 이어지고 게다가 루이16세(Louis XVI, 1754~1793, 재위1774~1792)와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Marie antoinette, 1755~1793)까지 대상이 되며 불편함을 느끼자 튀르고가 사임하는 동시에 개혁이 취소되어 버린다. 

 

미국 독립 전쟁 지원

그런데 정말 제정신인지 모르겠으나, 1776년 미국에서 조지워싱턴(George Washington,1732~1799, 재임1789~1797)을 주도로 독립전쟁이 펼쳐지는데, 프랑스가 개입하여 미국을 지원하는데 이후 자금난 사태가 펼쳐지고 루이16세는 직감적으로 잘못됨을 느껴 사태해결을 위해 노력을 하게되지만 재무장관 튀르고가 행했던 것 처럼 귀족들에게 세금을 매길려고 했다가 거부당하고 만다(루이16세는 성격이 유하고 우유부단했으며, 결정적으로 나약했음). 이미 군주의 명령이 통하지 않을만큼 귀족이 성장해버린 것이였다.

 

재무장관 자크 네케르

재무장관 튀르고(Anne Robert Jacques Turgot, 1727~1781)의 후임으로 자크 네케르(Jacques Necker, 1732~1804)가 내정되어 파탄나고있는 프랑스 경제를 살려볼려고 증세와 동시에 적자를 최소한으로 할 계획을 짰으나, 귀족들에의해 반대, 게다가 우유부단한 루이16세옆에서 일을 할려니 답답해할 지경이였는데 1787년부터는 거의 프랑스재정이 최악에 가까워지며 루이16세또한 삼부회 개최라는 카드를 꺼내야하나 고심하다가, 1788년 기후악화로 인한 대흉작으로 민심은 끝장나버리고, 1789년 5월에 드디어 1614년(루이13세, 재위4년)에 해산된 삼부회가 175년만에 열리게 된다. 

 

삼부회

1계급 성직자 290명, 2계급 귀족 270명, 3계급 평민585명의 대표가 참석한 삼부회에서, 상것들이 여긴왜왔냐라는식으로는 기본에, 표결방식의견차이(평민이 불리한 표결방식)로도 충돌하며 그냥 개판5분전이 되어버린다. 삼부회가 혼란을 계속 거듭하다가, 도저히 안되겠었는지 평민대표들이 6월에 '국민의회(Assemblée nationale, 1789)를 결성하기에 이른다. 이게 무엇이냐면 사실상 배째라로서(세금 못낸다) 이로 인해 빡친 루이16세는 물론 강제해산을 명하고 국회문을 닫게 한다. 그러나 이대로 가면 정말 끝인 평민대표들은 테니스코트로 이동하면서 시위를 이어가면서 의견을 관찰시키고자 하지만 협상은 역시 펼쳐지지 않았다.

 

프랑스 대혁명

이전의 불평등과 차별, 과도한 부담으로 눌러왔던 프랑스 국민들이 1789년 7월 14일 드디어 폭발해버리는데, 우리들도 잘 아는 '프랑스 대혁명(Révolution française, 1789~1799)'이다. 프랑스 대혁명은 바스티유 점령으로부터 크게 번지게되는데, 루이16세역시 시민측과 협의를 볼려고했으나 입헌군주제로 바꿔달라는 요구를 차마 받아들이지 못하여 결렬되고만다. 루이16세는 입헌군주제 요구를 받아들이지 못하면서 혁명이 더 크게 번지게 되는 와중에 1791년 아내 마리앙투아네트의 고향인 오스트리아로 피신을 가다가 시민들에게 걸려 체포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신뢰가 뚝 떨어져버린다. 이를 바렌 사건(La fuite manquée des 20 et 21 juin 1791)이라고 한다. 

1791년 6월 20일 루이16세와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 왕자, 공주등이 각각 변장을 하고 미리 준비된 마차를 타고 궁전을 빠져나오면서 시작된 이 사건은 러시아 귀족 행세를 하면서 감시망을 피해다니지만, 프랑스 동쪽 국경 근처 마을 바렌에서 루이16세를 알아본 우편마차 직원이 시민군에게 알려 이들이 출동하게 되면서 탈출에 실패하게 된다. 그렇게 덜미를 잡힌 루이16세 일가는 파리로 다시 압송되어 궁에서 연금상태에 놓이게 된다. 그렇게 왕에 대한 신뢰가 바닥으로 떨어지고 왕정 페지와 동시에 공화국 수립으로 루이16세는 폐위되어 파리 시민이 된다. 이후 루이16세에 대한 재판이 지속되고, 1793년 국민공회 에서 유죄판결이(총708명중 유죄673, 무죄0, 기권35) 나오며 결국 콩코르드 광장에서 기요틴(단두대)에 루이16세는 왕비 마리앙투아네트와 함께 처형되면서 프랑스에 첫 공화정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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