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군주, 고위 귀족/Bourbon, 부르봉

루이13세

Mintaka5 2024. 4. 4.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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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rait du roi Louis XIII , peint par Philippe de Champaigne, 1635 (루이13세 초상화, 필리프 드 샹파뉴 작, 1635년)

Louis XIII le juste

1601년 9월 27일 ~ 1643년 5월 14일 (재위 1610년 5월14일 ~ 1643년 5월 14일)

출생

프랑스 부르봉 왕조 제 2대 왕. 공교롭게도 재위에 오른날과 붕어한 날이 같다. 대왕이라고 불리는 아버지 앙리4세(Henri IV le grand, 1553~1610)와 메디치 가문의  마리 드 메디시스(Marie de Medicis, 1575~1642)사이에서 장남으로, 퐁텐블로 성(Château de Fontainebleau) 에서 태어남. (마리 드 메디시스가 앙리4세의 정실부인이므로 부르봉 왕조의 정통성을 가진 자녀로서는 루이13세가 서열1순위가 됨)과 동시에 도팽(dauphin; 프랑스의 왕세자)칭호를 하사받게 된다.

 

대왕 아버지

아버지 앙리4세는 호색한(vert galant) 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을만큼 여성편력이 어마무시했는데, 그로인해 만난 여성들과의 관계로부터 태어난 6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루이13세의 이복형과 누나들이다. 

앙리4세의 암살되기까지의 스토리는 1500년대 중후반에 펼쳐진 위그노전쟁(1562~1598)에서 키포인트를 찾을 수 있으니, 찾아보길 바람.

1610년 5월14일 쉴리공작(본명: 막시밀리앵 드 베튄 Maximilien de Béthune, 1559~1641) 을 만나러 가는길에 마차에서 떨어지는데, 이를틈타 카톨릭광신도 교도인 프랑수아 라바이약(François Ravaillac, 1578~1610) 에게 칼로2번 찔리면서 암살이 됨에따라 앙리4세의 왕위를 계승하여 루이 드 프랑스에서 루이13세로 명칭이 바뀌게 된다.

 

9살즉위?

그러나, 즉위당시 루이13세의 나이는 고작8세(1601년생)라 정치력은물론 통치력을 갖추지 못한 나이라, 어머니 마리 드 메디시스가 아들의 섭정을 생드니 대성당에서 제창하고 나서게 되면서 그녀의 섭정시대(régence, 1610~1614) 가 열리게 된다. 그녀가 어느정도 섭정통치를 이어가고 있을 시기에, 루이13세의 친가 사촌형이되는 앙리 드 부르봉콩데 친왕 (Henri II de bourbon-condé, 1588~1646) 이 1614년 반란을 일으키나, 실패를 하게되고 동시에 루이13세가 친정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자 섭정직에서 물러나게되는 마리 드 메디시스이지만, 여전히 실질적인 권력을 쥐고있는 상태라 루이13세에게는 실질적인 권력이 없었다. 마리는 이탈리아출신 총리대신 콘치노 콘치니에게 점점더 의존하게되면서 루이13세와 귀족들에 대해 반감을 계속 사게되면서 불신의 벽이 생기다가, 1617년 4월 24일 루이13세에 의해 암살이 되면서, 마리 드 메디시스 또한 블루아 성에 유폐되면서 명실상부 루이13세가 권력의 정점에 오르게 되었다.

이듬해 1618년, 종교전쟁인 30년 전쟁이 터지게되면서 프랑스에서는 누구편에 서야하느냐 라는 화두가 떠오르게 되는데, 근본적으로 귀족을 신임하지 않던 루이13세는, 신성로마제국의 페르디난트2세(Ferdinand II du Saint Empire, 1578~1637)를 지지하게 되고, 덩달아 세금까지 철회하게 되면서 귀족들에 대한 반발감이 더 커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리하여 블루아 성에 유폐되있던 마리 드 메디시스에게 귀족들이 모여들기 시작되면서, 그녀는1619년 블루아성을 탈출하면서 둘째아들 가스통 드 프랑스(Gaston de france, 1608~1660)와 손을잡고 반란(1619~1620)을 일으키면서 위협을 가하지만, 1620년 8월 왕실 진압군에 의해 모두 폐퇴당하게 되면서 모든 권력을 잃고 연금되지만, 추기경 리슐리외( le cardinal de Richelieu, 1573~1642)가 무너진 모자관계를 중재하게 되면서 1621년 공식적으로 화해하게 된다. 그러나 샤를달브뢰 총리가 열병으로 사망하고나서 새로운 장관회의를 열게되고, 그자리에서 마리에게 추천되어 재상이 된 리슐리외의 권력이 커지게 되면서 마리가 불안감을 느껴 루이13세에게 리슐리외의 퇴진을 요구하게되지만, 그녀의 바람과 반대로 그녀가 도리어 프랑스에서 추방되고 떠돌게 되다가, 1642년에 먼 이국에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절대왕정 기틀마련

루이13세와 리슐리외의 사기급 조합으로인하여 프랑스는 1624년부터 1642년까지 엄청난 성장을 이룩하게되는데, 왕권이 강화됨과 동시에 육,해군력까지 증대되게되면서, 30년전쟁을 성공적으로 활용하게되면서 많은 이득을 취하게 되면서 더욱더 왕권이 강화되는 결과를 가져오게되면서 절대왕정의 기틀을 비로소 마련하게 되었다.

그리고, 프랑스어를 배워온 나로서도 잘 알고있는 알리앙스 프랑세즈의 시초인 프랑스 아카데미가 세워진 시기가 바로 루이13세시기이다(1635년). 현재까지도 프랑스어의 사용, 어휘, 문법의 공식적인 권위의 상징으로 남아있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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