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급 귀족 & 관리/조선

원균

Mintaka5 2025. 4. 8.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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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균, 1540~1597

 

 

 

출생

1540년(중종34년) 조선 경기도 진위현 여방면 내리(현 경기도 평택시 도일동)에서 아버지 원준량(1520?~1571)과 어머니 남원 양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배경

조선 중기 선조(1552~1608, 재위1567~1608)시대 무신으로 전라우수사를 지낸 원준량의 아들이였는데 1564년(명종19년) 당시 경상우병사였던 원준량은 원균의 무과 초시에 규칙을 위배하면서까지 응시시키고 이로인해 합격했다는 죄목으로 탄핵을 당하고 원균역시 무과 초시 합격이 취소된다. 이후 재시험, 삼수, 사수등을 치르지만 낙방을 거듭하다가 겨우겨우1567년(선조원년)식년 무과 을과로 급제한다. 이후 선전관, 조산보만호, 거제현령, 종성부사, 전라좌수사등을 역임하지만 거제현령당시 부족한 능력이 비판받으면서 전라좌수사는 직위해제되는등 난관을 거치다가 1592년(선조25년)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3개월전인 2월에 경상우수사에 임명된다. 3개월뒤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원균은 전라좌수사와 힘을 합쳐 옥포, 당포, 당항포, 율포, 한산도 해전등 다양한 해전에 같이 연합하여 승리를 거머쥐지만 이후 조정에서 이순신에게 정2품 하계 자헌대부를, 자신에게는 이순신보다 한품계 아래인 종2품 하계 가선대부를 내렸다는 것에 불만을 품었고, 이순신이 1593년(선조26년)초대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어 자신의 상관이 되었다는점에 크게 반발한다.   

 

관리

1564년(명종19년)아버지 원준량이 아들의 무과 초시에 규칙을 위배하면서까지 응시시키고 합격했다는 이유로 탄핵을 받고 원균의 초시 합격마저 취소되고 3년이 지난 1567년(선조원년)겨우 식년 무과 을과로 급제한다. 선전관을 거친 뒤 주로 북쪽 여진족과 경계를 맡닿은 변방에 오래 재직하는데 변방에서 만호로서 상관으로 있던 순변사 이일(1538~1601)과 함께 함경도 일대의 여진족소탕을 맡게 된다. 그 이후 1575년(선조8년) 거제현령과 1587년(선조20년) 종성부사로 부임받게 되는데, 이 때 인사고과 성적을 최하점을 받게 되어 미래의 자신에게 누가되어버리고 이는 1591년(선조24년) 전라좌수사에 오를 때 앞선 현령과 부사시절의 인사고과 성적이 발목을 붙잡게 되어 좌수사에 오르지 못한다. 그래도 운은 있었는지 1588년(선조21년) 시전부락 전투에 북병사 이일과 함께 참전해 여진가옥 200여호를 불태우고 적 수백여명을 죽이는 전과를 올려 이 공으로 원균은 1592년 2월 경상우수사에 임명되게 된다. 

 

임진왜란

I. 발발

1592년 5월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다대포진이 공격받을 때 경상좌수사 박홍(1534~1593)은 왜 수군이 몰려옴을보고 겁을 먹고 경상좌수사 소속 판옥선 40여척에 구멍을 내 자침시키고 식량창고에불을 지르고 도망치는 만행을 저지르고 동래성 전투에도 구원에 나서지만 이후에도 지레 겁먹고 도망쳐 평양으로 몽진하는 선조(1552~1608, 재위1567~1608)에게 직접 찾아가는 장수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한다. 이때 당시 경상우수사 원균은 지금까지도 여러 의견이 나뉘며 정사에서는 원균이 적선10여척을 격파하였지만 동시에 수십여척의 함선을 잃었다는 것으로 경상우수영의 함선이 거의 분멸하고 얼마 남지 않은 상태에서 전라좌수사 이순신에게 지원을 요청하여 이순신은 조정에 보낸 공문이 다시 오기전까지 전라좌수영 본영의 소속원들에게 집결하라는 명령을내리게 된다. 

 

II. 해전

원균은 구원요청을 받고 출전을 하러 온 전라좌수영 함대와 연합하여(원균의 경상우수영 함대는 고작 3척) 1593년 6월 옥포해전에 참전하여 승리를 거머쥐지만 너무 왜 수군들의 수급을베어 공을 세우는데만 급급한 원균을 향해 이순신이 비난을 금치않았다. 이후 당포해전, 당항포해전, 율포해전, 한산도해전등에서 승전(사실상 이순신의 효과적인 지휘로 승전)을 한다. 

 

III. 불만과 질투

이 해전들에 대한 공으로 조정에서 이순신(1545~1598)에게는 정2품 하계 자헌대부를 내리고 원균 자신에게는 이보다 한품계 낮은 종2품 하계 가선대부를 내리는데 거기다가 이순신이 1593년(선조26년) 초대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어 자신의 상관이되면서 이 때 부터 이순신과 원균사이에 불화가 발생하게 된다. 더욱이 자신의 측실소생인 서자 원사웅(1575~1646)이 20세도 되지않은나이에 전쟁에 공이있는 것으로 조정에 장계를 올려 이순신이 이에 보고를 올려 윗전의 눈에는 둘 사이의 반목이 있었던 것으로 선조역시 불편해하였다. 

 

IV. 정치

1594년(선조27년)부터 선조는 개인적으로 이순신을 점점 의심하게 되면서 그와 라이벌(?)이라고 주장하고 자기말 잘 듣는 원균을 점점 눈에보기시작하면서 점차 선조가 원균을 신임하면서 1595년(선조28년) 원균은 충청병사가 되고 나름 왜적침입에 대비는 하기위해 산성을 정비하지만 무리하게 공사하면서 원성이 자자했고 공사가 완공된 이후에 비가 오면서 산성이 무너져 버리는 사건도 벌어진다. 거기다 원균은 삼사(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중 하나인 사헌부(현재의 검찰기능)에서 탐욕스럽고 포악한 것등의 죄목으로 탄핵을 받는데 이 때 선조가 원균을 옹호한다.  

1596년(선조29년) 이몽학의 난이 일어나면서 의병장 김덕령, 홍계남, 곽재우, 최담령, 고언백등이 하옥되고 이들이 주로 있던 전라도지역이 불안해지면서 원균이 전라좌병사로 임명되는등 선조로부터 더욱 신임을 받는데, 이듬해 1597년(선조30년) 정유재란이 발발함에 따라 1군 가토 기요마사(가등청정, 1562~1611)군이 다시 조선으로 쳐들어온다는 소식이 들린다. 

 

V. 삼도수군통제사

왜 태합 도요토미 히데요시(풍신수길, 1537~1598, 관백재위1585~1592, 태합재위1587~1598)는 조선 수군에게 연전연패 당하는 현실에 1596년(선조29년) 조선군에 첩자를보내는데, 1597년 정유재란이 발발하여 15만의 왜 대군이 다시 쳐들어오는 시점에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첩자는 왜1군 장수인 가토 기요마사(가등청정, 1562~1611)가 소수의 병력만 이끌고조선에 오는 것처럼 거짓말을 한다. 이 왜 첩자가 한 말을 조선조정은 곧이곧대로 믿어버리고 위유사를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에게 보내지만 이미 거짓을 간파하고있던 이순신은 머뭇거릴 틈도 없이 가토 기요마사의 1군 선봉부대가 이미 부산에 상륙했던 틈이라 출정에대한 논의로 바뀌고 이순신은 63척의 전선을 출동시켜 부산포쪽으로 간다. 그러나 김응서()는 왜 첩자의 말을 듣고 이순신이 일부러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는 것처럼 주장한 것을 선조(1552~1608, 재위1567~1608)에게 보고하고 이순신은 이에 삼도수군통제사에서 파직되고 한양으로 압송되어버리고 선조는 원균을 새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한다. 

 

VI. 칠천량 해전

원균은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이후에도 육군이 합류하지 않으면 전투를 할 수 없다고 전투를 주저한다. 이후 나간 출전에서도 10척의 왜선을 대파하지만 조선 수군의피해가 더 컸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다시 조선 수군에 첩자를 보내 원균을 끌어들이는 작전을 쓴다. 원균은 왜인의 말이라 믿을 수 없다고 하지만 출전은 하고 그에 따라 성과도 없이 장수를 전사시키는 행보를 보인다. 그럼에도 왜 첩자의 말에 속아넘어가면서 100여척이 넘는 판옥선을 동원해 부산쪽 공략에 나서면서 그 사이에 계속 공격을 받으면서도 조금이라도 불리해지면 육군에게 지원만 요청하면서 출전에 소극적이자 이에 열받은 도원수 권율(1537~1599)은 원균을 잡아다가 곤장을 치는등 겨우겨우 부산포쪽으로 출전을 하게 된다.

왜군은 이미 계획된대로 조선 수군을 두려워해 도망가는 것처럼 꾸미고 이에 원균이 왜 함선을 추격하다가 적진 깊숙히 빠진줄도 몰랐고 파도에 의해 함선 10여척을 잃고 다시 퇴각해버린다. 1597년 8월 27일, 삼도수군 함대들은 칠천량에 정박해있던 상태에서 왜군의 기습공격을 받는데, 사방에서 함대를 에워싼 왜 수군이 화력을 퍼부으면서 정신이 없던 사이에 경상우수사 배설(1551~1599)이 먼저 전장을 이탈하면서 전선이 무너지고 만다. 그렇게 원균은 나머지 부하들과 겨우 탈출해 육지에상륙하고 피신해다니다가 왜군에게 전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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