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 1543~1592
출생
1543년(중종37년) 조선 전라도 영암군 옥천종면 대산리(현 전남 해남군 옥천면 대산리)에서 아버지 정응정과 어머니 (미상)사이에서 태어났다.
배경
조선 중기 무관으로 1570년(선조3년) 식년시 무과 병과로 급제한 뒤 훈련원봉사, 수군권관, 거산찰방, 웅천현감등을 지내는데 워낙 강직한 성격으로 윗전의 미움을 받아 몇년동안 벼슬길이 막혀버리기도 한다. 이후 1591년(선조24년) 녹도 만호로 부임받아 전라도로 내려간다. 이듬해 1592년(선조25년) 임진왜란이 발발하면서 전라좌수사 이순신(1545~1598)의 휘하로 소속되어 옥포, 당포, 당항포, 율포, 한산도등 여러 해전에서 공을 세워 인정을 받다가 1592년 9월에 벌어진 부산포해전에서 우부장으로서 선봉대에서 왜 수군과 싸우다가 절영도(현 부산광역시 영도구) 앞바다에서 왜적의 대조총(대형 조총)에 맞아 전사한다.
관리
정운은 27세가 되던해인 1570년(선조3년) 식년시 무과 병과로 급제하여 훈련원봉사, 수군권관, 거산찰방등을 거쳐 웅천현감에 부임하게 되는데, 특유의 강직한 성격으로 제주 목사간에 불화가 일어나 파직되어버리고 몇해간 관직을 얻지 못한다. 파직 후 몇해가 더 지나서 1591년(선조24년)이 되어서야 전라좌수영 관할 행정구역인 오관오포*중 하나인 흥양현 녹도진의 만호가 된다.
*오관오표 정리표
소속 | 비고 | |
오관오포 | 5군현 | 순천도호부, 낙안군, 보성군, 광양현, 흥양현 |
5진포 | 방답진, 사도진, 여도진, 발포진, 녹도진 |
임진왜란
I. 발발
1592년(선조25년) 5월, 왜 태합 도요토미 히데요시(풍신수길, 1537~1598, 관백재위1585~1592, 태합재위1587~1598)가 조선을 침공하기위해 군대를 보내는데 첫 전투 시작점은 부산 절영도(현 부산광역시 영도구)였다. 왜1군 선봉부대 1만9천여명을 이끄는 선봉장 고니시 유키나가(소서행장, 1558~1600)는 부산진을 공격해 첨사 정발(1553~1592)을 포함해 수백의 군민들을 학살하고 파죽지세로 다대포첨사 윤흥신(1540~1592)이 지키는 다대포진으로 향하는데 이때 왜군의 병력과 기세에 지레 겁을 먹은 경상좌수사 박홍(1534~1593)은 도망쳐버리고, 다대포진 함락 이후 동래부사 송상현(1551~1592)이 지키는 동래성역시 발발 이틀도 되지않아 함락되어버리고 송상현 역시 전사한다.
II. 해전 참전
부산쪽이 왜군의 수중에 넘어가면서 경상우수사 원균(1540~1597)이 전라좌수사 이순신(1545~1598)에게 구원을 요청하면서 대부분은 출전 반대를 외치는데, 녹도만호 정운과 군관 송희립(1553~1623)과 함께 출전을 주장하게되어 이후 전라좌수군이 경상우수군과 합류하게 된다. 이에 수군 연합 함대는 옥포해전, 합포해전, 당포해전과 전라우수사 이억기(1561~1597)의 전라우수군까지 합류하여 당항포해전, 율포해전등에서 왜선을 격파하는 큰 전공을 세우고 율포해전 이후 한산도해전(한산도대첩)에서도 큰 공을 세운다.
전사
1592년(선조25년) 9월, 부산포 해전에서 우부장으로 선봉대를 이끌고나가 왜 수군과 싸우다가 절영도(현 부산광역시 영도구)앞바다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왜 수군의 대조총(대형 조총)을 맞고 전사한다. 이순신(1545~1598)은 아끼던 부하 정운이 전사하면서 자신이 지은[난중일기]에서도 정운의 전사로 매우 슬퍼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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