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환지, 1730~1802
재임 기간 | 재임기간 군주 | |
211대 영의정 | 1800. 08. 23 ~ 1802. 11. 13 | 순조원년 ~ 순조2년 |
출생
1730년(영조6년) 조선 한성부에서 아버지 심진(?~?)과 어머니 거창 신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배경
조선 후기 정조(1752~1800, 재위1776~1800)시기 때 문신으로 당시로서 많이 늦은 나이인 41세(1771년, 영조47년)에 정시 문과 병과로 급제하여 관리가 되어 늦깎이 벼슬살이를 시작하는 인물이지만 이후 승진속도가 빨라져 부수찬, 부교리, 세자시강원 문학, 필선, 대사성, 대사간, 대사성, 도승지, 대사헌, 병조판서, 이조판서를 거쳐 정승의 반열인 우의정, 좌의정을 거친다음 1800년(순조원년)정조가 갑자기 승하하면서 당시 정순왕후(영조의 계비, 1745~1805)의 신임을 받아 영의정에 오르게 되는 인물이다. 노론 벽파의 영수격 인물로서(당시 노론 벽파 영수는 몽오 김종수)정조의 탕평책에 맞서오다가 정조 사후 탕평책의 핵심이였던 장용영(정조의 친위부대)을 혁파시키는데 일축했고, 정조의 정치 기구였던 규장각도 세도정치를 위한 중앙 기구가 되어버리기에 이른다. 영의정에 오르기 전 세도정치를 진정시키겠다는 명목으로 지지를 받아 오르지만 막상 영의정이 되고 나서는 반대파를 숙청하기위해 신유사옥을 일으키는 만행을 벌이기도 한다.
늦바람이 무서운 법
심환지는 1730년 한성부에서 태어나 당시로서는 늦은 나이인 32세(1762년, 영조38년)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41살이 되던 1771년(영조47년)에 정시 문과 병과로 급제하여 40대 초반의 나이로 조선의 관리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관직생활 시작 이후 급속도로 승진을 거듭해 관직에 입문한지 15년째가 되던 1785년(정조9년) 당상관으로 승진하며 정3품 상계 대사성에 오르게 되고, 10년뒤인 1795년(정조19년) 정1품 우의정에 오른다.
노론 벽파
심환지는 노론 벽파였는데, 노론 벽파는 정조(1752~1800, 1776~1800)의 탕평책을 반대한 세력으로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1735~1762)가 임오화변으로 뒤주에 갇혀 사망한 후 노론이 반으로 쪼개지는데 아래 표와 같다.
계열 | 수장 | 주장 | 정조시기 포지션 | |
노론 | 시파 | 김종수 1728~1799 |
사도세자의 죽음이 당연하다 | 벽파 : 우리가 충신이다 |
벽파 | 서명선 1728~1791 |
사도세자의 죽음이 안타깝다 | 정조의 탕평책 동의 |
사도세자의 죽음에 관한 주장이 서로 상반된 노론은 2개의 파(시파, 벽파)로 분파가 이루어진다.
관리
직위 | 소속 | |
1762년(영조38년) | 진사시 | |
1771년(영조47년) | 정시 문과 병과 급제 | |
1772년(영조48년) ~ 1778년(정조2년) | 정언, 교리, 대사성 |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 |
1779년(정조3년) ~ 1783년(정조7년) | 부수찬, 부교리 | 홍문관, 교서관 |
1784년(정조8년) | 필선 | 세자시강원 |
1785년(정조9년) | 대사성 | 성균관 |
1789년 | 대사간 | 사간원 |
1791년(정조16년) | 이조참의 | 6조 이조 |
1792년(정조17년) | 형조참판 | 6조 형조 |
1793년(정조17년) ~ 1794년(정조18년) | 이조참판, 도승지, 제학 | 6조 이조, 승정원, 규장각 |
1795년(정조19년) | 병조판서, 우의정 | 6조 병조, 의정부 |
1795년(정조19년) ~ 1798년(정조22년) | 대사헌, 예조판서, 형조판서 | 사헌부, 6조(예조, 형조) |
1799년(정조23년) | 판중추부사 | 중추부 |
좌의정 | 의정부 | |
1800년(순조원년) | 영의정 |
정조 승하 이후
1800년 정조가 48세로 갑자기 승하한다. 후임 임금으로 즉위한 순조(1790~1834, 재위1800~1834)는 즉위당시 10세에 불과하여 대왕대비였던 정순왕후 김씨(1745~1805)가 수렴청정을 하게 되면서 노론 벽파가 다시 득세하게 된다. 그렇게 당시 노론 벽파의 수장이였던 심환지는 1800년 순조가 즉위한지 한달만에 영의정에 오른다. 이미 이전 노론 벽파 수장이였던 몽오 김종수(1728~1799)보다도 더 강경한 벽파성향이였던 심환지는 영의정이라는 직위를 활용해 강경책을 사용하는데 그 대표적 사건이 최초의 천주학 박해라 여겨지는 신유박해(1801)이다. 심환지는 이미 전임 군주 정조(1752~1800, 재위1776~1800)가 천주교를 사학으로 규정했던점등을 명분으로 내세워 거침없이 이들을 탄압하기에 이르는데, 당시 이가환(1742~1801)과 정약용(1762~1836)등을 비롯한 남인들 중 천주학을 받아들이던 집단들이 다양한 명목으로 죄가 씌워져서 잡혀가면서 숙청되기에 이른다. 그렇게 심환지는 천주학 탄압뿐 아니라 정조의 탕평을 다시 이전으로 돌려놓는 행동을 자행하는데, 대표적인 것이 장용영(정조의 친위부대) 혁파였다.
사망
1802년(순조2년) 72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심환지 사후 순조의 수렴청정을 하던 정순왕후 김씨(1745~1805)가 민심을 잃어 실각한 후 1805년 사망하고, 노론 시파였던 김조순(순조의 장인, 1765~1832)이 집권하게 되면서 이미 죽은 심환지는 역적으로 단죄되고 사후 관직이 추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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