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급 귀족 & 관리/조선

이운룡

Mintaka5 2025. 4. 10. 13:44
반응형

이운룡, 1562~1610

 

 

출생

1562년(명종17년) 조선 경상도 청도(현 경남 청도군)에서 아버지 이몽상(1530~?)과 어머니(?~1602) 사이에서 태어났다. 

 

배경

경상도 청도에서 남해현령 이몽상의 아들로 태어나 1585년(선조18년)별시 무과 병과로 급제한다. 동북방 여진 국경지대쪽에서 복무하면서 녹둔도 전투에 참전하는데 당시 녹둔도 둔전관과 조산보 만호를 겸임하던 이순신(1545~1598)과 함께 참전하지만 피해가 발생했음에도 최대한 피해를 최소화하고 포로를 구출하는 전과를 올리지만 패전의 책임을 북병사 이일(1538~1601)이 책임을 물어 이순신과 이운룡, 이경록(1543~1599)등을 옥에 가두지만 선조(1552~1608, 재위1567~1608)는 이들이 열악한 환경에서도 충분히 잘 싸워주었다 하여 장형을 치고 이들을 백의종군하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짓는다. 이후 운룡은 복직해 1589년(선조22년)옥포 수군만호로 부임하고 3년이 지난 1592년 5월 임진왜란이 터지면서 경상우수사 원균(1540~1597)의 부장으로서 이미 자신의 함선에 구멍을 뚫어 자침시키고 식량창고를 불태우고 도망친 경상좌수사 박홍(1534~1593)과 마찬가지로 자기의 상관인 경상우수사 원균도 도망치려고 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같은 부장으로서 상관 원균을 모시던 율포만호 이영남(1563~1598)과 함께 원균에게 도망치지말고 맞서 싸우자고 설득하여 이영남이 전라좌수사 이순신(1545~1598)에게 구원을 요청하는 계기가 된다. 이후 경상좌수사로 승진해 7년간의 긴 임진왜란을 마무리짓고 선무공신 3등에 책록되고 삼도수군통제사에 임명되고 복무하다가 1610년에 사망한다. 

 

관리

이운룡의 아버지 이몽상은 남해현령이였는데, 종3품 상계 중직대부였던 아버지가 종5품 현령직을 맡는데 이는 품계와 관직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의 대표적인 예시로서,  품계가 높은 관리가 품계가 낮은 하급 관리에 임명되어 수행하면 '행(行)'이라 하였고, 반대로 품계가 낮은 관리가 품계가 높은 고위 관리에 임명되어 수행하면 '수(守)'라고 했다. 그래서 이운룡의 아버지 이몽상은 종3품 중직대부 행 남해현령으로 표기된다. 이운룡은 1585년(선조17년)을유년 별시 무과 병과로 급제하여 선전관이 된다. 

 

녹둔도 전투

이운룡은 급제 이후 선전관으로 1587년(선조20년) 동북방 여진의 경계지역에 복무할 때 조산보 만호 이순신(1545~1598)과 경흥부사 이경록(1543~1599)을 만난다. 조산보 만호 이순신은 매번 돌아가면서 관리하는 둔전관리관까지 겸하고 있었는데 시전부족이 몰래 조선땅을 습격해 약탈과 조선백성들을 납치하는등 만행을 일삼다가 이들을 일벌백계하기위해 출동하여 전투가 벌어진다. 표면적으로는 조선이 전투에서 승리했지만 피해가 결코 만만치 않았던 것이 1천여명의 여진인과 상대하면서 사상자가 다량 발생하고 군민 포로가 150여명이나 발생하여 당시 북병사 이일(1538~1601)이 이 전투의 책임을 묻고자 이순신, 이경록, 이운룡등을 옥사에 가두지만 이일이 보낸 잔궤에 대한 답변으로 선조(1552~1608, 재위1567~1608)는 열악한 상황참작을 고려하고 최대한 피해를 줄이고자했던 이들에게 장형을 치고 백의종군하라는 명령을 내리게 된다. 그렇게 이운룡은 2년이 지난 뒤 1589년(선조22년)복직하여 경상도 남해안 옥포 수군만호로 부임받게 된다. 

 

임진왜란

1589년 옥포 수군만호로 부임하고 3년이지난 1592년(선조25년) 5월, 왜 태합 도요토미 히데요시(풍신수길, 1537~1598, 관백재위1585~1592, 태합재위1587~1598)가 20만대병을 조선에 출병시킴에 따라 임진왜란이 발발하게 된다. 이운룡은 경상우수영 소속으로 경상우수사 원균(1540~1597)의 부장으로 임무를 수행하게 되는데, 임진왜란이 발발한지 이틀도 되지않아 동래성이 공격받을 때 경상좌수사 박홍(1534~1593)이 경상좌수영 소속 함대 수십여척에 구멍을 뚫어 자침시키고 식량창고까지 불태우고 도망쳐버리는 바람에 수군전력에 비상이 걸리는 마당에 자신의 상관인 원균마저도 도망칠 궁리를 하게 되면서 같은 부장이였던 율포만호 이영남(1563~1598)과 함께 원균을 설득하여 전라좌수사 이순신(1545~1598)에게 구원을 요청해 연합하여 여러 해전(옥포, 당포, 당항포, 율포, 한산도등등)에 참전하여 승전하며 전공을 세워 1593년(선조26년)웅천 현감에 부임하게 되고, 1596년(선조29년)엔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의 천거로 경상좌수사에 부임받게 된다. 그러나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이 모함을 받아 보직해임되어 한양으로 압송되어간 사이 원균이 신임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지만 칠천량 해전으로 궤멸당하는데, 이운룡은 칠천량 해전때 참전했다가 겨우 목숨을 건져 육전에 투입되는데, 이후 이듬해 1598년(선조31년) 노량해전에 다시 경상좌수사로서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 휘하로 참전하여 승리를 거둔다. 

 

왜란 이후

1598년 12월, 7년간의 긴 임진왜란이 끝나고 6년뒤 1604년(선조37년) 선무공신으로 식성군에 봉해지게 된다. 이후로도 포도대장, 비변사 당상, 삼도수군통제사등에 오른 뒤 함경남병사, 충청수사등을 역임하다가 1610년(광해군2년) 48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반응형

'고위급 귀족 & 관리 > 조선' 카테고리의 다른 글

150, 152대 영의정 서종태  (0) 2025.10.21
153대 영의정 김창집  (0) 2025.10.20
이영남  (0) 2025.04.09
원균  (0) 2025.04.08
황세득  (0) 2025.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