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세득, 1537~1598
출생
1537년 조선 충청도 직산(현 충남 천안시 서북구 직산읍)에서 아버지 황종식(?~?)과 어머니 진주 강씨(강위빙(1569~1637)의 딸)사이에서 태어났다.
배경
성주 황씨의 시조이며, 고려시대 당시 문신이자 상주 황씨의 시조인 황석주의 17대손이다. 조선 중기 임진왜란(1592~1598)당시 무관으로 전라우수사 이억기(1561~1597)의 휘하인 장흥부사로서 해전에 참전(당항포해전, 율포해전, 부산포해전)*하여 전공을 세운 인물이다. 1564년(명종19년)무과에 급제해 무관으로 살아오다가 장흥부사에 이르렀을 쯤인 1592년(선조25년) 임진왜란이 발발하면서 위와같이 해전에서 수많은 공을 세우고, 1596년(선조29년) 사도첨사가 되어 삼도수군통제사겸 전라좌수사 이순신(1545~1598)휘하로 들어가서 벽파진, 고금도 전투등에서 용맹함을 앞세워 왜적의 수급을 베는 공을 세우나 1598년(선조31년)명나라 제독 유정(1558~1619)과 도독 진린(1543~1607)의 15000명의 군대와 함께 연합해 선봉으로 왜군의 중심지까지 들어가 싸우지만 왜적의 집중사격으로 전사하고 만다.
이순신과의 인연
황세득과 충무공 이순신(1545~1598)은 사촌 동서지간이였는데 이는, 황세득의 부인인 상주 방씨가 진사 방인(1511~1573)의 딸이고 이순신의 부인 상주 방씨가 진사 방인의 남동생 방진(1514~?)의 딸인 정경부인 방씨(방수진)이다. 황세득의 부인이 이순신의 부인의 사촌언니였기 때문이였다.
황세득 계열 | 이순신 계열 | |
I | 방국형(1490~1561) | |
II | 방인(1511~1573) | 방진(1514~?) |
III | 온양 방씨(황세득의 부인) | 방수진(이순신의 부인) |
임진왜란
장흥부사로 재직하고 있을 당시인 1592년(선조25년) 5월, 임진왜란이 발발하면서 조선이 공격당한다. 발발한지 이틀만에 부산진, 다대포진, 동래성이 함락되어버리는데 특히 왜군이 다대포진으로 향할 때 경상좌수사 박홍(1534~1593)이 왜군의 기세와 병력수에 지레 겁을 먹고 자신의 아래에 있던 판옥선 40여척에 구멍을 내 고의로 침몰시키고 식량 창고에 불을 지르고 도망쳐버린다. 당시 황세득은 전라우수사 이억기(1561~1597)의 휘하로 있던 상태였고, 전라좌수사 이순신과 경상우수사 원균의 연합함대가 옥포 해전, 당포 해전등이 끝나고 당항포 해전이 발발하기 전 전라우수사 이억기가 연합함에 따라 황세득도 연합수군으로서 전투에 참여하게 되며 당항포 해전, 율포 해전, 한산도 해전등에 참전해 공적을 세운다.
전사
1596년(선조29년) 사도첨사에 임명되었고, 1597년(선조30년)왜국과 명나라간의 강화협상이 결렬되고, 왜국이 다시 조선을 재침공하면서 정유재란이 발발한다. 그러나 1598년(선조31년)9월 명 원군 1만5천여명과 연합한 조선 수군과의 전투인 순천 왜교성 전투에 참전하는데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과 함께 장도 해전에서 왜선 수십여척을 격침시키고 왜군 3천여명을 무찌른 전공을 세우지만 황세득은 왜군에게 포위되어 이도저도 하지 못하던 진린(1543~1607)의 명군을 구하러 가던 도중 왜군의 집중사격을 받고 전사해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