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석주, 1892~1926
출생
1892년 조선 황해도 재령군에서 아버지 나병헌(?~?)과 어머니 김해 김씨 사이에서 1남2녀중 외아들로 태어남.
배경
조선식산은행과 동양척식주식회사에 폭탄을 투척한 독립운동가. 폭탄 투척 불발로 끝나지만 일제 경찰들과 총격전을 벌이다가 자결한다. 20대가 되어서 만주로 건너가 신흥무관학교에 입학하여 군사훈련과 공부를 병행하고 졸업한 후 항일 공작원으로 활동한다.
주요 요인 암살과 군자금을 모으고 다니는 임무를 수행하면서 일제의 간담을 서늘케끔 한다. 일제측에서도 나석주를 잡기위해 군병력을 증가시키는등 노력을 하지만 나석주는 이에 중화민국에 있는 임시정부로 들어가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그곳에서 임시정부 주석 김구(1876~1949)와 함께 일하면서 동양척식주식회사 폭파임무를 부여받고 일제강점기 조선으로 들어오게 된다.
경성에서 일제 경찰의 감시를 피해다니면서 기회를 보고있던 나석주는 1926년 12월 28일 동양척식주식회사 건너편에 있던 조선식산은행에 가서 폭탄을 투척하지만 불발하지만 시선이 끌린 덕분에 동양척식주식회사의 경비를 담당하던 경비병력도 한산해지게 되면서 잠입해 들어가 직원들을 준비해온 권총으로 사살, 폭탄을 투척하는등 거사가 어쨌든 표면적으로 성공했지만 조선식산은행직원이 종로경찰서에 신고한이후 시간이 많이 지체되어 종로경찰서 병력들과 마주한 나석주는 총격전을 벌이며 도주하지만 더이상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하여 자살을 시도하지만 병원에 실려가서도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종로경찰서 고등계 미와의 심문을 받다가 자신이 나석주임을 밝히고 순국한다.
초년
18살이 되던해 경술국치(1910)로 대한제국이 멸망하고 일제치하에 떨어지면서 망명을 해 독립운동에 기여하려고 하다가 망명에 실패하고 옥고살이를 치르는등 고생하다가 1914년 동림무관학교에 들어가 군사훈련을 받고 이후에 고향인 황해도 재령일대에서 쌀가게를 운영하면서 조용히 지낸다. 이동휘가 세운 동림무관학교에도 입학해 군사교육을 받지만 1916년 어머니 김씨가 위독해지면서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다.
1919년 군사주비단에 가입해 3.1운동때엔 군자금을 마련해 중화민국 상해에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송금하기도 하고 황해도 일대에서 일제 관직 요인들을 암살하고 군자금을 모이는 행보를 보이면서 일제의 간담을 싸늘하게 하는데, 이에 일제가 나석주를 잡기 위해 병력을 증강하는등의 행태를 보이면서 이에 나석주는 1921년 배를타고 중화민국으로 망명하게 된다.
임시정부
그렇게 상해 임시정부로 들어가서 동시에 임시정부 외곽단체 한국노병회에 가입해 활동하고 1922년 한국노병회의 추천에 따라 신흥무관학교에 입학, 졸업한 후 중화민국 하북성(현 허베이성) 한단에 있는 한단군관학교 군관단을 졸업해서 중국군 장교가 되어 공병단에 배속되어 복무하게 된다.
1924년까지 중국군에 보직되어 장교로 복무하다가 다시 상해 임시정부로 돌아와서 의열단에 가입하게 된다. 그렇게 상해 임시정부 경무국 경호원직을 수행하며 주석 김구(1876~1949)의 지시를 받아 행동대원으로서 임무를 수행하는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게 된다.
폭탄 의거
1925년부터 김구 주석의 제안으로 상해를 떠나 일제강점기 조선으로 잠입해들어가 조선총독부, 조선식산은행, 동양척식주식회사등을 폭파하는 임무를 제시받고 실행하고자 무기류를 준비하고 출발하려고 하지만 자금부족으로 당해에는 시행되지 못하고 1926년이 되어서 김창숙(1879~1962)이 독립운동 자금을 가지고 상해에 복귀하면서부터 자금을 지원받아 계획을 세우고 경성으로 몰래 입국해 들어가 사전답사를 거치면서 거사계획을 다시 재확인한다.
1926년 12월 28일, 경성내에서 잠적을 깨고 중국인 행세를 하며 조선식산은행에 들어가 폭탄을 투척하지만 터지지않고, 직원이 이를 종로경찰서에 신고하는등 작전이 어렵게 되었지만, 은행 내 소동으로 인해 바로옆에 있던 동양척식주식회사의 경비가 느슨해진 틈을 타 잠입에 성공한다.
그렇게 들어가서 준비해온 권총으로 일제 관리들을 향해 총을 쏘고 폭탄을 투척하지만 이번에도 불발로 끝나버리는데, 앞서 조선식산은행 직원이 신고한 종로경찰서 병력이 당도하면서 나석주는 이들과 총격전을 벌이면서 도주를 시도하지만 총격전에서 맞은 총알과 더이상 움직이기 어렵다는 판단에 자신의 가슴에 총을 쏴서 자결을 시도하지만 일제 경찰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진다.
병원으로 옮겨진 다음 의식을 잠시라도 살려 심문하고자 한 종로경찰서 고등계 미와는 나석주를 심문하여 신분과 소속을 묻는 과정에서 대답을 하지않던 나석주는 죽기직전 자신은 대한민국의 의열단이자 나석주라는 이름을 밝히고 순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