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유정난(1453)
1453년(단종1년), 조선4대 임금인 세종의 둘째 아들 수양대군(세조, 1417~1468, 재위1455~1468)이 조카인 단종(1441~1457, 재위1452~1455)의 왕위를 찬탈하고자 황보인, 김종서, 정분등의 반대파를 숙청해 정권을 장악한 사건.
배경
세종(1397~1450, 재위1418~1450)은 장남인 문종(1414~1452, 재위1450~1452)과 차남인 수양대군(미래의 세조, 1417~1468, 재위1455~1468)이 있었는데, 세종은 이미 둘째아들 수양대군의 야심이 후대에 영향을 미칠 것을 걱정했었고, 1450년에 적장자로서 왕위에 오른 5대 문종은 건강이 좋지않아 스스로 오래 살지 못할 것 이라는 것을 예견하면서 자신의 어린 세자 단종을 염려해 대신 3명에게 어린 왕세자를 잘 보필할 것을 부탁하게 된다.
생몰년도 | 품계, 직위 | |
황보인 | 1387 ~ 1453 | 정1품 영의정 |
남지 | 1392 ~ 1453 | 정1품 좌의정 |
김종서 | 1383 ~ 1453 | 정1품 우의정 |
1452년, 문종이 승하하고 세자가 단종으로 즉위하게 되는데 당시 11세에 불과했던 단종이였던지라, 우의정 김종서가 핵심 권력을 쥐고 섭정이되면서 단종을 보필하게 된다. 이 땐 하필 왕실어른(대비, 대왕대비)이 없었었다. 세종의 왕비 소헌왕후(1395~1446)도 이미 서거했었고 단종의 어머니 현덕왕후(문종의 왕비, 1418~1441)역시 1441년 단종을 낳고 산후병으로 서거해버리면서 모두 부재한 상태였다.
세조의 정통성
군주로서 정통성은 즉위의 근반이되기에 상당히 중요한 기틀이 되는 것인데, 세조는 1468년 승하할때까지 그 기틀이 없었다. 즉위의 명분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사건명 자체도 정난(난리를 안정시킴, 난리:세조의 명분이 없는 쿠데타)이 될 수 밖에 없던 것. 단종은 적장자라는 아주 든든한 정통성이 있었기 때문에 나이는 비록 당시 어렸지만, 권력기반이 설정되어있었기 때문에 잠재성은 매우 충분했다.
하지만 너무 어렸기 때문에, 그 잠재성을 시험해보지도 못하고 승하해버린다. 세조는 조카 단종을 아예 명분없이 내치면서 당시 유학자 김종직(1431~1492)이 이에 상당히 분개하여 세조의 왕위 찬탈과 단종을 살해하여 왕위에 오른 세조를 진 항우(BC232~BC202)로 빗대고, 단종을 초 의제(?~BC205, 재위BC208~BC206)로 빗대어 사실상 세조의 '왕위찬탈'을 비꼬면서 정통성이 없는 것을 강조한다.
세조의 세력
I. 안평대군과 육종영
수양대군의 폭주에 맞서 육종영(단종을 위해 세조와 맞서다 죽임을 당한 6명의 왕실종친)이였던 안평대군(1418~1453)은 아우 금성대군과 이복동생 세명과 힘을 합쳐 수양대군과 대립했다.
육종영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
생몰년도 | 모친, 계열 | 비고 | |
안평대군 이용 (수장) |
1418 ~ 1453 | 소헌왕후 심씨(중전, 1395~1446) | 세종의 3남, 진도로 유배후 1453년 사사 |
금성대군 이유 | 1426 ~ 1457 | 세종의 7남, 1457년 사사 | |
화의군 이영 | 1425 ~ 1460 | 영빈 강씨(후궁, ?~1483) | 세종의 6남이자 서장자, 1460년 사사 |
한남군 이어 | 1429 ~ 1459 | 혜빈 양씨(후궁, ?~1455) | 세종의 11남이자 서4남, 유배후 경상도 함양에서 1459년 병사 |
영풍군 이전 | 1434 ~ 1456 | 세종의 16남이자 서8남, 1455년 위리안치형 | |
하령군 이양 | ? ~ 1453 | 태조의 이복동생 의안대군의 손자 | 1453년에 수양대군의 수하에 의해 황보인, 김종서와 함께 암살됨 |
II. 세조의 친위대
친동생 안평대군(1418~1453)이 동복, 이복동생, 당숙(하령군)등 6명이 단종을 지키기위해 뭉쳐 수양대군(세조)에게 대항하게 되면서 위협을 느낀 수양대군은 자신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측근을 구한다. 수양대군(세조)은 큰숙부 양녕대군(1394~1462)과 자신의 동생 임영대군(1420~1469), 계양군(1427~1464)등을 같은 편으로 두게 된다.
아래는 수양대군의 왕실종친 측근, 핵심급 측근.
모친, 계열 | 비고 | ||
양녕대군 이제 | 1394 ~ 1462 | 원경왕후 민씨(태종의 중전, 1365~1420) | 수양대군의 큰숙부 |
임영대군 이구 | 1420 ~ 1469 | 소헌왕후 심씨(세종의 중전, 1395~1446) | 동복형 수양대군의 1등공신 |
계양군 이증 | 1427 ~ 1464 | 신빈 김씨(1406~1464) | 수양대군의 이복동생, 세조 즉위 후 1등공신 녹훈 |
생몰년도 | 품계, 최종직위 | 비고 | |
권람 | 1416 ~ 1465 | 정1품 좌의정 | 권근(1352~1409)의 손자, 한명회의 소개로 수양대군을 만남 |
한명회 | 1415 ~ 1487 | 정1품 영의정 | 수양대군의 최측근 책사 |
신숙주 | 1417 ~ 1475 | 정1품 영의정 | 집현전 학사 출신 |
홍윤성 | 1425 ~ 1475 | 정1품 영의정 | 문무 통합형 |
양정 | ? ~ 1466 | 정2품 공조판서, 정1품 평안도 도체찰사 | 변방에 머무르게 한 세조에게 본인 피로연에서 막말했다가 투옥후 처형 |
황수신 | 1407 ~ 1467 | 정1품 영의정 | 영의정 황희(1363~1452)의 아들 |
이징규 | 1403 ~ 1468 | 병마절도사 | |
이징석 | 1305 ~ 1461 | 병마절도사, 중추원부사 |
정난시작
I. 명나라 사신
수양대군은 첫 시작점으로 단종의 최측근 황보인, 남지, 김종서 3정승의 경계심을 없애기 위해 본인이 명나라의 사신으로 간다고 자청을 한다. 결국엔 별다른 경계를 하지않은 3정승들이 보내주는 바람에 수양대군은 사신으로 가는 동안에 자신의 세력을 확장시키는 계기로서 세력들을 포섭하고, 3정승의 경계심을 허무는 2마리의 토끼를 잡게 ㄷ된다.
II. 살생부 실행
명나라 사신으로 갔다가 다시 귀국한 수양대군은 자신의 반대파에 대한 살생부를 작성한다. 이로서 사실상 거사가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는데, 첫 시작 김종서를 시작으로 황보인, 이양(), 조극관()등이 철퇴를 맞고 살해된다.
사실상 단종을 지키던 최측근 세력이 와해되는 순간이였다.
III. 정난 성공
수양대군의 승리한 이 난에서 반대 종친세력이였던 육종영의 수장격인 동복동생 안평대군을 포함한 6명과 나머지 반대세력에 대한 처벌을 공식화하는데, 위에 육종영의 표에 언급되었던 것 처럼 모두 유배후 사사된다. 연좌제로 죽음을 당한 가족들은 노비로 전락하고 만다.
처벌이 종료되고 난 이후 정난공신 1, 2, 3등을 책록해 자신의 최측근 세력으로서 조정의 주요 관직을 독점하게 되면서 사실상 즉위기반을 다 다져놓는다.
IV. 결론
이렇게 수양대군(세조)의 최측근으로 채워진 조정에서 홀로 쓸쓸하게 허수아비 군주가 되어버린 단종(1441~1457, 재위1452~1455)은 숙부 수양대군에게 휘둘리다가 계유정난2년후인 1455년에 숙부에게 왕위를 양위하는 형식으로 상왕으로 물러나고 수양대군이 조선7대 임금 세조(1417~1468, 재위1455~1468)로 즉위하게 된다.
이외.. 이징옥의 난
김종서(1383~1453)의 최측근 참모인 이징옥(1399~1453)이 상관이였던 김종서가 암살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 명분으로 칭제건원(?)을 해버린다. 국호는 '대금', 여진족의 지원을 받아 황제에 즉위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얼마가지못하고 내부에서 밀사에 의해 살해되면서 정리가 되고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