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사건/조선

계축옥사

Mintaka5 2024. 11. 3.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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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축옥사(1613)

임진왜란 당시 정철(1536~1594)의 거치문제로 동인이 류성룡(1542~1607)을 필두로 한 남인(정철 죽이지 말자)과 이산해(1539~1609)를 필두로 한 북인(정철 죽여라)으로 갈라지고 난 후 1602년, 북인은 또다시 광해군을 지지하는 대북과 영창대군을 지지하는 소북으로 나뉜다. 

1608년 선조(1552~1608, 재위1567~1608)가 승하하고 광해군(1575~1641, 재위1608~1623)이 즉위하면서 대북(광해군 지지)파는 영창대군(1606~1614)을 옹립해 역모를 꾀했다는 이유로 소북파의 영수 류영경(1550~1608)등이 숙청된 사건. 

'칠서의 옥'이라고도 불린다.

 

동인? 남인? 북인? 대북? 소북?

20년도 안된 시기동안에 2번이나 분파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헷갈릴 수 있는 분들을 위해 표로 나타내겠다.

  분파 영수 분파이유
동인 남인 류성룡(1542~1607) 1591년 정철의 건저의 사건에서 온건론을 내세움(정철 살려놓자)
북인 이산해(1539~1609) 1591년 정철의 건저의 사건에서 강경론을 내세움(정철 죽여라)
  분파 영수 1602년 북인 분파이유
남인  1598년 실각 이원익(1547~1634)
이덕형(1561~1613)
윤승훈(1549~1611)
 
북인 소북 류영경(1550~1608) 영창대군(1606~1614)지지.
대북 이산해(1539~1609)
홍여순(1547~1609)
이이첨(1560~1623)
광해군(1575~1641, 재위1608~1623)지지.

 

배경

조선14대 선조(1552~1608, 재위1567~1608)시대 재위 말기인 1606년, 선조의 14남이자 선조의 유일한 적장자인 영창대군 이의(1606~1614)가 태어난다. 선조역시 방계출신 군주에다가 자신의 아들이지만 서출인 세자 광해군을 싫어했는데, 임진왜란 때 분조를 이끌며 의병까지 성공적으로 지휘하던 광해군을 더욱 싫어하게 되는데 아무리 세자이지만 정통성이 빈약했던 광해군인지라 1606년 이복동생이지만 정통성이 본인보다 더 있게되는 영창대군을 경계할 수 밖에 없었다.

선조는 광해군을 세자에서 폐위시키고 영창대군을 세자로 책봉하려했지만 워낙에 임진왜란때 혁혁한 공을 세웠던 광해군인지라 지지기반만큼은 매우 탄탄했어서 세자를 바꾸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선조는 어린 영창대군을 보호 할 유교칠신(선조가 승하하기 전 영창대군의 뒤를 봐줄 일곱신하에게 내린 교서)7명에게 영창대군의 뒤를 부탁하고 1608년 승하한다.

유교칠신은 다음과 같다

  생몰년도 품계, 직위 비고
한준겸 1557 ~ 1627 정2품 호조판서, 정2품 도원수 1617년 유배, 1621년 도원수
류영경 1550 ~ 1608 정1품 영의정 1608년 사사
한응인 1554 ~ 1614 정1품 우의정 1611년 탄핵
박동량 1569 ~ 1635 종1품 판의금부사 탄핵 후 유배, 1633년 석방후 고향에서 사망
서성 1558 ~ 1631 종1품 판중추부사 1613~1624 유배, 인조반정이후 재등용
신흠 1566 ~ 1628 종2품 대사헌, 정1품 영의정 1613~1624 유배, 인조반정이후 재등용, 정묘호란(1627)이후 영의정
허성 1548 ~ 1612 정2품 이조판서  허난설헌의 이복오빠, 허균의 이복형, 1612년 병사

 

 

계축옥사 발단

I. 강변칠우

대북파는 앞서 소북파의 영수인 영의정 류영경(1550~1608)을 사사시키고, 소북세력의 정리를 위한 행동을 지속해나가는데, 1613년 다음과 같은 인물들이 문경새재에서 은 상인을 죽이고 수백냥(600~700냥)에 달하는 은을 약탈한 사건이 발생한다. 

이들은 모두 서얼(첩실:첩의 자식, 서출)출신으로, 1608년(선조41년)에 자기들이 올린 적서차별 폐지상소가 거부되면서 관직에 오르지 못해 불만을 품고 '무륜정'이라는 정자를 짓고 시와 술로 세월을 보내고 같이 살면서 이룬 모임의 일원으로서, 모임명은 '강변칠우' 또는 '죽림칠우'라고 불린다.

  생몰년도 비고
박응서 ? ~ 1623 영의정 박순의 서자
서양갑 ? ~ 1613 의주 목사 서익의 서자, 허균의 제자
심우영 ? ~ 1613 종2품 경기도 관찰사 심전의 서자
김경손 ? ~ 1613 종2품 대사헌 김계휘의 서자
이경준 ? ~ 1613 정5품 정랑을 역임한 이제신의 서자
박치의 ? ~ ? 형조참판 박충간의 서자, 나머지 체포될 때 도주하면서 행방묘연, 1623년 인조반정때까지도 잡히지 않음
허홍인 ? ~ 1613 가계모호, 거열형으로 처형

 

II. 박응서의 옥

이들은 돈이 떨어지면 도둑질도 서슴치 않았는데, 때마침 이 때 도둑질을 해도 큰 규모의 도둑질을 해버려서 모두 포도청에 끌려가 조사를 받게되는데, 이이첨(1560~1623)일파의 대북은 이 강변칠우 멤버들에게 이번 살인의 목적이 영창대군(1606~1614)을 옹립하기위한 자금조달을 위해 인목왕후(영창대군의 모후, 1584~1632)와 그녀의 아버지 김제남(영창대군의 외할아버지, 선조의 장인, 1562~1613)이 시켜서 했다고 목숨을 담보로 자백하게 한다.  

조사결과, 김제남과 인목왕후가 선조의 정비였던 의인왕후 박씨(1555~1600)의 묘에 저주를 했다는 사실까지 밝혀지면서 김제남은 결국 역모죄로 사사되어버리고 영창대군은 폐서인당해 강화도로 유배보내져 그곳에서 유폐된다. 

이것이 계축옥사의 핵심.

 

III. 대북의 정권 장악

이 과정에서 서인, 남인까지 연루되면서 대거 교체되고, 대북이 정권을 장악하게 된다. 

  당색 교체 전 비고(교체 전) 교체 후
정1품 영의정 남인 이덕형*(1561~1613) 탄핵으로 물러남 기자헌(1562~1624)
정1품 좌의정 서인 이항복*(1556~1618) 탄핵으로 물러남 정인홍(1536~1623)
정1품 우의정 북인 정인홍(1536~1623) 좌의정으로 승차 정창연(1552~1636)
정2품 이조판서 북인
(중북)
정창연(1552~1636) 우의정으로 승차 조정(1551~1629)
정2품 호조판서 서인 황신(1560~1617) 계축옥사로 유배형 유근(1549~1627)
정2품 예조판서 서인 이정구(1564~1635)   이이첨(1560~1623)
정2품 형조판서 남인 오억령(1552~1618)   민몽룡(1550~1618)

*오성과 한음의 주인공들. 이항복의 봉호인 오성부원군과 이덕형의 호인 한음을 따면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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