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손(Kim il son, 1464~1498)
출생
1464년 조선 경상도 청도군에서 아버지 김맹(1410~1483)과 어머니 용인 이씨 사이에서 3남중 막내로 태어났다.
배경
1498년 스승인 김종직(1431~1492)이 쓴 조의제문으로 인한 발단으로 일어난 무오사화로 처형을 당하는 인물이다.
초년
1471년 아버지 김맹이 예문관 봉교(정7품)로 부임하면서 큰형 김준손(1454~1508), 작은형 김기손(1456~1493)과 함께 옥수정사에서 학문을 배웠다고 전해지며, 1478년(성종9년) 14세가 되던 무렵 성균관에 입학하여 수학하였다. 김일손의 아버지 김맹(1410~1483)은 종3품 사헌부 집의까지 오르는 중신이였는데, 1480년 아버지 김맹이 노환으로 병져누우면서 고향인청도로 가족모두가 내려가 이곳에서 이맹전(생육신중 한사람, 1392~1480)을 만나 이 문하에서 수학하고, 청도 아래쪽 밀양에 가서 스승이 되는 김종직(1431~1492)의 문하에 찾아가 제자가 된다. 이 문하에서 동문수학하는 동기생을 만나며 동기들은 아래 표와 같다.
생몰년도 | 비고 | |
김굉필 | 1454~1504 | 정6품 형조좌랑 |
정여창 | 1450~1504 | 종6품 현감 |
강혼 | 1464~1519 | 종4품 경략장 |
남효온 | 1454~1492 | 생육신중 한명 |
그렇게 이맹전과 김종직의 문하에서 수학하다가 1480년 이맹전이 병사하면서 김종직의 문하에서 거의 눌러앉아 학문을 배웠다. 거의 6년정도 더 수학하다가 1486년(성종17년) 초시에 합격해 생원시 장원, 진사시 2등으로 합격한다. 김일손은 이 기세를 몰아 같은해 1486년에 식년문과에 급제하면서 첫 관직 생활을 승문원에 들어가 시작하게 된다. 첫 관직은 권지부정자로 시작하면서 잠시 고향에 돌아가 운계정사를 열고 학문연구에 몰두하는 시기도 있었지만 다시 복귀해서 다음과 같은 직책을 맡게 된다.
년도 | 비고 | |
홍문관 수찬 | 1486~1490 | 정6품 |
병조 좌랑 | ||
이조 좌랑 | ||
홍문관 부교리 | 종5품 | |
홍문관 교리 | 정5품 | |
홍문관 헌납 | ||
이조 정랑 | ||
사가독서 | 1491 | 재능이 있는 문신에게 휴가를 주어서 독서에 전념하게 했던 제도, 연구년과 비슷 |
이극돈과의 악연, 처형
기껏해봤자 정5품정도의 중위품계의 김일손이였지만, 훈구파 이극돈(1435~1503)과는 상당히 관계가 좋지 못했다. 안그래도 김종직의 제자인 것과 강단있고 불의를 참지못하는 강한 성격에 이극돈을 자주 건드려 원한이 있던 터였다. 그러다가 1498년, 1495년에 모친상으로 3년상을 치르고 공직으로 돌아왔을 때, 춘추관 사관으로 있을 때 스승인 김종직(1431~1492)이 지은 조의제문을 사초(군주 사후 실록에 기초가 되는 자료)에 실는데, 훈구에대한 부정적인 평가와 세조(1417~1468, 재위1455~1468)에 대한 내용(항우에게 살해당해 물에 던져진 의제를 조상하는 제문:세조를 비꼼)들로 이극돈과 유자광(세조의 최측근)등이 무오사화를 일으키면서 스승 김종직이 모든 일의 원흉이 되면서 부관참시(관에서 끄집어내져 목이 잘리는 형벌)를 당하고 본인을 포함해 사림파 여러 인물들과 함께 처형당하게 되어버린다. 김일손과 같이 처형당한 인물로는 아래 표와 같다.
생몰년도 | 비고 | |
권경유 | ?~1498 | 제천 현감(종6품) |
권오복 | 1467~1498 | 예문관 교리(정5품) |
김일손 | 1464~1498 | 본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