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군주(한국어, 프랑스어)/고려의 군주

26대 충선왕

Mintaka5 2024. 9. 3.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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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ungseon de Goryeo, 1275~1325, 재위1298, 1308~1313

 

 

출생

1275년 고려 개경 사판궁에서 아버지 충렬왕(1236~1308, 재위1274~1298, 1298~1308)과 어머니 제국대장공주(쿠빌라이 칸의 딸, 1259~1297)사이에서 태어남. 본명은 왕원 → 왕장. 몽골식 이름은 이지르부카.

 

배경

쿠빌라이의 외손자(고려-몽고 혼혈)로서, 완전히 원나라 제후국으로서 자리잡게된 시기의 군주로 직접적인 원나라의 정치적 영향을 받은 시기이기도 하다. 원나라의 정치구도 변화 속에서 원나라에 유배당하기까지 하고, 고려에 있는 시간보다 원나라에 머무는 시간이 더 많은 군주다. 

고려 왕위를 아들 충숙왕에게 1313년 물려준 이후에는 다시 원나라 수도 대도에 들어가서 아예 눌러살다가 승하한다. 거의 몽고인에 가까운 정체성을 가지는 군주이다.   

 

즉위

1277년 아버지 충렬왕으로부터 왕세자로 책봉되고 어린시절부터 몽고에 입조해 1292년 고려로 돌아갈때까지 10여년을 원나라에서, 1294년 외할아버지 쿠빌라이 칸(1215~1294, 몽고 칸 재위1260~1271, 원나라재위1271~1294)이 승하하며 원 성종 테무르 칸(1265~1307, 재위1294~1307)이 즉위하게 되면서 고려-원나라간 관계가 급변하게 되는데, 1295년 아버지 충렬왕이 고려로 불러들이게 되면서 국정을 담당하게끔 하는데, 또 이듬해 1296년 원나라로 가게된다. 

이유는 성종 테무르 칸의 조카딸인 계국대장공주(?~1316)과의 혼인을 위해. 그러나 안그래도 쿠빌라이 사후 분위기가 이상하던 두 국가간의 관계는 어머니 제국대장공주(1259~1297)가 갑자기 승하하면서 급작스럽게 상황이 흘러가게 된다. 이때 아버지와 갈등을 일으키게 되며 충렬왕이 결국은 원나라에 세자 왕장에게 왕위를 넘겨준다는 서신을 보내게 되고 충선왕이 1298년 1월 즉위하게 된다.

 

폐위

그러나 충선왕은 1298년 8월 원나라 조정에 의해 폐위되어 원 대도로 소환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는 두가지 요인이 있는데, 첫번째는 충선왕이 즉위하자마자 단행한 개혁이 큰 문제로 작용했기 때문이다(개혁 내용이 반원정책으로 오인받을 수 있는 내용들이였음). 권문세족 토지 몰수, 공신전 환급, 지방선비 천거, 청탁금지등은 고려내에서 환호를 받았으나, 관제개편이 문제였다. 원나라의 관직 명칭과 동일해도 안고친것들, 동일하지 않아도 고친것들, 개정관직명칭도 원나라 체계를 따르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 이모든 개혁은 원나라와 상의가 되지 않아 원나라에서도 매우 경계했었다고 한다.

두번째는 충선왕이 계국대장공주와 부부생활을 하지않고, 고려 출신후궁 조비(조인규*의 딸, ?~?)를 더 총애하면서 이를 원나라에 알려 충선왕이 원 대도에 소환되었다는 것. 이것이 조비무고사건으로 알려진 일인데, 조비가 계국대장공주를 저주했다고 무고한 것으로 알려진 사건이다. 

*고려의 외교관, 1237~1308

이 두 요인으로 인해충선왕은 개혁도 멈춰야했고 원나라에 소환당하여 가고, 8월에 폐위된다. 사실 첫번째 개혁사건이 조금 더 포인트가 들어가있다고 보면 될 듯하다 원 조정내에서도 저일을 어떻게 처리할까 하다가 계국대장공주를 통해 두마리의 토끼를 다 잡으려고 했던 것으로 보면 될 것.

첫째 요인 개혁안은 충선왕이 1298년 즉위하자마자 발표했던 개혁은 1차 개혁이며 사림원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는 충선왕의 관제개혁과 동시에 왕권강화를 위해 사림원을 설치하여 이 관청격 관할청에서 모든 행정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다음 표는 사림원의 대표인물 6명을 나타낸 것. 

  생몰년도 사림원 업무담당
박전지 1250~1325 인사 담당
최참 ?~? 즉위교서 담당
오한경 1242~1314 왕명출납, 궁중숙위 담당
이진 1244~1321 과거시험 담당  
이승휴 1224~1300 조서, 교서작업 담당
권영 ?~? 법제 담당

 

복위

1308년 아버지 충렬왕(1236~1308, 재위1274~1298, 1298~1308)이 승하함에 따라 다시 복위를 명 받아 복위식을 치르지만 다시 원나라로 가서 서면정치를 하게 된다. 사실상 고려는 왕이 공석이나 다름없었는데, 충선왕은 원나라에 있으면서 친해진 사대부들을 고려 왕 대행으로 파견하게 되면서 왕행세를 하고,  자신은 원나라에 체류하면서 왕명을 고려에 전달하는 식으로 정치를 이어가면서 고려는 다시 혼란에 빠진다.

충렬왕 승하 이전해인 1307년 원 성종 테무르 칸(1265~1307, 재위1294~1307)이 승하하면서 칸 계승 권력 다툼이 기정사실화되면서 두 파로 크게 나뉘게 되는데 충렬왕은 테무르 칸의 동생 안서왕 아난다(1270~1307)에 줄을 댔기 때문에 충선왕은 이에 반대로 반드시 아난다의 즉위를 막기위해 미래의 원 인종이 되는 아유르바르와다(1285~1320, 재위1311~1320)에 기대를 거는데 원 대도 내 중신들은 아유르바르와다를 부르기 전에 브르간 황후(쿠빌라이의 황후)와 안서왕 아난다를 살해한다. 

그러나 원나라 고원쪽 방위를 담당하던 카이산(1281~1311, 재위1307~1311)이 대도로 군을 돌리게 되면서 사실상 카이산이 황위에 오르는 쪽으로 합의가 되며 카이산이 원 무종으로 즉위하게 된다(1307년).

 

니 무슨왕 할끼고? 아들 니가 고려왕 해라

충선왕은 1308년 원 무종으로부터 심양왕에봉해지는데,  마침 아버지 충렬왕이 1308년 승하하면서 고려왕까지 봉해지지만, 이미 원나라쪽에 정치에 깊숙히 관여가 되있던 충선왕으로서는 고려 신하들이 대도까지와서 충선왕에게 귀국을 종용해도 말을 안듣다가 결국 1313년 끈질긴 종용의 끝에 아들 충숙왕(1294~1339, 재위1313~1330,1332~1339)에게 고려 왕위를 양위하게 된다. 그런데 양위이전에 세자 왕감(?~1310)이 있었는데 신하들이 하도 충숙왕이 고려로 올 생각을 하지 않음에 세자라도 고려왕으로 올리려고 하는게 충선왕한테 걸려 아들인 세자 왕감을 살해해버린 것이다(1310).

 

말년

1313년 충숙왕에게 양위를 하고 충선왕은 원나라 대도에 계속 머물면서 원 무종()과 인종()의 총애로 고위직까지 오르는데, 1320년 인종이 승하하고 영종이 즉위하면서 환관 임백안독고사의 참소(3년뒤 역으로 1323년 처형됨)로 티베트로 유배를 가게 된다. 충선왕은 1323년 영종이 암살되고 난 다음 태정제(예순테무르, 1276~1328, 재위1323~1328)가 즉위하면서 유배에서 풀려나와 대도에서 승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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