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군주/고려의 군주

24대 원종

Mintaka5 2024. 9. 2.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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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njong de Goryeo, 1219~1274, 재위1259~1274

 

 

출생

1219년 고려 개경 정궁에서 아버지 고종(1192~1259, 재위1213~1259)과 어머니 안혜왕후 유씨(?~1232)사이에서 태어남. 본명은 왕전.

 

배경

1231년부터 시작된 고려-몽골 전쟁(여몽전쟁)으로 혼란스러운 정국에 군주가 된 인물이다. 3차 침입기(1235~1239)시작인 해에 개경에서 천도한 강도(강화)에서 태자로 책봉된다. 교정별감 최우(1166~1249)의 사위인 김약선(?~?)의 딸 정순왕후(충렬왕의 어머니, 1222~1237)와 혼인하였다. 아버지 고종이 1259년 승하한 후 당시에 쿠빌라이(1215~1294, 몽골 칸 재위1260~1271, 원나라 재위1271~1294)에게 가있던 왕전이 고려로 돌아와서 24대 원종으로 즉위하게 된다. 친몽 정책을 펼친 군주로 반대파였던 교정별감 김준(?~1268)과 갈등을 빚고 김준의 양아들 임연(1215~1270)을 사주해 김준을 죽이고, 임연과 임유무(1248~1270) 부자를 이용하다가 1270년 다 몰아내고 100년간의 무신정권을 종식시키지만 100년가까운 기간동안의 긴 원 간섭기가 시작되는 시기의 첫 군주이다.  

 

즉위 배경

1258년 최의(?~1258)가 김준(?~1268), 류경(1215~1289), 최온(?~1268)등에 의해 암살당하고 이들이 도방을 허물고 국정을 고종에게 되돌려줌으로서 최씨 정권(1196~1258)이 막을 내리게된다. 고종은 황실에 권력이 이양된지 한해만에 노환(67세)으로 인해 승하하는데, 이때 태자 왕전은 고려에 없었다. 몽고 황제 몽케 칸(몽고 헌종, 1209~1259, 재위1251~1259)이 승하하면서 차기 후계를 두고 분열이 일어나는데 아우들 중에서 가장 강한 세력을 가진 두 세력 쿠빌라이와 아릭부케(1219~1266)이다.

태자 왕전은 몽케 칸이 승하하기 전에 이미 고려를 떠나 몽케의 행재소(별궁)가 있던 연경(북경)으로 가고 있었는데, 1260년 가던 도중 몽케가 승하했다는 소식을 듣고 고민에 빠진다. 사실상 어디에 베팅을 해야 이득인지를 결정하는 상황에 직면 한 것인데, 태자는 쿠빌라이를 선택하게되며 만나게 되면서 쿠빌라이는 고려 태자가 온 것을 이전의 당태종(이세민, 598~649, 재위626~649)도 굴복하지 못한 국가에서 태자가 왔다 하늘의 뜻이라면서 아주 크게 기뻐했다고 한다. 이후 쿠빌라이는 형제간의 승부에서 승리하게 되어 몽고의 칸으로 즉위하게 되는데 이때가 1260년 5월이다.

 

원을 상국으로

쿠빌라이는 태자 왕전이 오고 난 다음 고려-몽고간 강화를 논의하는 과정중 고종(1192~1259, 재위1213~1259)이 승하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왕전을 국왕으로 책봉하여 고려로 보낸다. 이 때 쿠빌라이가 원종에게 했던 말이 바로 '불개토풍'이다. 사실상 고려의 정체성을 그대로 이어나가도 가능하다 라는 것.

불개토풍은 고려가 몽골의 속국이 되어도 고려의 풍습을 그대로 행해도 된다 라는 뜻이다. 황제의 약속으로 이행되어진 이 불개토풍은 이후에도 계속 지속되면서 이때부터 고려와 몽고는 정치,문화적으로도 교류가 활발해지며 점점 비슷해져간다.

 

김준과의 대립

원종이 태자시절때 몽골에 들어갔을 때 고종이 승하함에따라 제위에 공석이 생겨버림으로서 임시로 국정을 아들인 태 왕심(충렬왕, 1236~1308, 재위1274~1298, 1298~1308)가 맡게 되었고 일단은 원종이 다시 고려로 와서 즉위해야하는 상황이였는데, 당시 도방을 혁파한 김준(?~1268)은 반원파로 원종과 뜻이 맞지 않았다. 계속된 몽고의 입조에 따라 김준일파의 반대는 더욱 극심해지지만 전쟁을 막기위해서는 이방법이 최선이였기에(고려는 당시 전쟁을 수행할만한 처지가 못되었다)김준역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지만, 원종이 쿠빌라이의 몽고의 지원을 받으면서 왕권회복을 꾀하면서 더욱 둘의 사이가 틀어진다.

 

무진정변

1268년 원종은 김준의 양아들인 임연(1215~1270)이 김준과 노선이 다르고 서로 맞지 않다는 것을 알고 서로를 갈라놓게끔 해 임연으로 하여금 양아버지인 김준을 살해하게끔 한다. 이것이 무진정변(1268)이다. 이로인해 임연이 교정별감이 되는데, 원종은 이미 김준이 죽은 이후 나름대로 왕권이 회복중이였고 임연도 본인이 사실상 세운 것이나 마찬가지였고 제거할 대상으로 생각하여 대놓고 친몽정책을 추진하게 되는데, 1269년 태자 왕심(충렬왕)을 입조시키는 것이였다. 이때 임연은 불안감을 느껴 원종을 폐위시키고 원종의 친동생 안경공 왕창(임시군주, 1223~?, 재위1269)을 옹립시키지만 몽고의 개입으로 5개월만에 원종이 복위. 

 

왕권회복

1270년 임연이 등창으로 사망, 아들 임유무(1248~1270)가 교정별감에 오르지만, 원종은 이전 임연때보다 더욱 과감해져 수도를 다시 개경으로 환도를 추진하게 된다. 임유무는 강도(강화)를 기점으로 대몽항전 하려했지만 원종의 측근에게 암살당하며 100년간의 무신정권이 막을 내리게 된다.  그리고 남은 삼별초 세력의 해산을 명하지만 반발하여 1273년까지 벌어진 삼별초의 항쟁이 일어나지만 여몽 연합군에 의해 그 끝을 마주한다.

 

승하

1274년 55세로 승하한다. 원종은 고려 군주들에게 붙여진 묘호 '종'이 붙여진 마지막 군주이고, 아들인 태자 왕심이 충렬왕으로 즉위하면서 부터 충정왕(1338~1352, 재위1349~1352)까지 원나라에 충성한다는 의미로 '충'을 붙이게되며 31대 공민왕(1330~1374, 재위1351~1374)이 즉위할때까지 사실상 묘호를 쓰지 못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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