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군주(한국어, 프랑스어)/고려의 군주

15대 숙종(고려)

Mintaka5 2024. 8. 29.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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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kjong de Goryeo, 1054~1105, 재위1095~1105

 

 

출생

1054년 고려 개경 정궁에서 아버지 문종(1019~1083, 재위1046~1083)과 어머니 인예왕후 이씨(인예태후, ?~1092)사이에서 3남으로 태어남. 본명은 왕희. 위로는 첫째 형 장남 순종(1047~1083, 재위1083), 둘째 형 선종(1049~1094, 재위1083~1094), 아래 동생으로는 대각국사 의천(1055~1101)이 있다.

 

배경

1065년 계림후에 봉해지고, 조카 헌종(1084~1097, 재위1094~1095)의 재위를 거의 반 강제적으로 양위받아 고려의 군주로 오른 인물이다. 이자의(?~1095)의 난으로 권력의 핵심에 오른 당시 '계림공'이였으며 왕권이 강력했던 군주였다는 점에서 조선 숙종(1661~1720, 재위1674~1720)과 비슷한 점이 어느정도는 있다만, 조선 숙종에 비할바는 못된다(정통성 끝판대장, 환국정치).

 

이자의의 난

형 선종이 1094년 승하하고 10살의 조카 헌종이 재위에 오르지만 어린나이로 사숙태후(선종의 비)가 수렴청정을 행하지만, 사숙태후의 사촌인 이자의(?~1095)가 1095년 헌종의 이복동생인 한산후 왕균(?~?)을 군주로 옹립시키기위해 난을 일으킨다. 이때 숙종은 계림공 시절이였는데, 당시 이자의는 외척세력으로서 거대한 사병집단에 경제력까지 막강했는데, 숙종도 이를 주시하다가 난이일어나기 직전에 급작스럽게 거사를 일으키면서 우왕좌왕하던 이자의 세력을 단번에 제압하고 이자의를 죽이고 권력을 장악하게 된다.

 

즉위, 황권강화

I. 6촌이내 근친혼 금지

1095년 헌종의 사실상 반강제성 양위(형식은 병으로 인한 양위)로 계림공 왕희가 15대 숙종(1054~1105, 재위1095~1105)으로 즉위하게 되는데, 1096년 즉위1년에 6촌이내 혼인을 금지한다는 법령을 공포하는데, 4대 광종(925~975, 재위949~975)때부터 이어져온 근친혼을 통해 다른 세력의 권력강화를 효과적으로 막아낸 왕권 강화가 이자의의 난으로 그 권위가 바닥까지 추락하게 되면서 이 법령을 시행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아들 예종(1079~1122, 재위1105~1122)대에 들어 다시 근친혼이 시작된다(두명의 왕비가 사촌, 딸들모두 6촌이내 친족과 근친혼 함).

II. 고려조폐공사

숙종은 1097년 아우인 대각국사 의천(1055~1101)의 주청으로 화폐주조(주전)의 필요성을 느껴 주전관을 둬 주전을 만드는 일을 추진하기위해 1101년에 주전도감이라는 현재 조폐공사에 해당하는 기관을 만든다. 당시 화폐는 동전으로서, 주전도감이 세워진지 1년만에 해동통보라는 명목상 화폐를 주조하고 15000관(갯수)을 고위직순서로 나누어주고 사용시키기에 이른다. 

더불어 1104년에 백성들이 주조된 해동통보로 외식을 장려하여 화폐의 가치를 광범위하게 인식시킬 수 있도록 지시하지만, 이듬해 1105년 숙종이 승하하고 예종이 즉위하면서 해동통보 유통은 중단된다(화폐가치 인식부족, 경제기반 미비등).  

III. 서울을 키워라

숙종은 1101년부터 남경(현재의 서울)에 남경개창도감을 설치하는데, 이 배경은 김위제(풍수지리사, )가 [도선비기, 통일신라 승려 도선(827~898)이 썼다는 풍수서]에 의거해, 1095년 일어났던 이자의의 난으로 헌종의 왕위를 사실상 찬탈하였다는 거에 대한 하늘의 응징으로 남경을 설치하자라는 주장이 나오게 된다. 이 주장역시 현대에서도 찬반이 나뉘고 많은 이들이 믿거나 말거나 이겠지만, 숙종은 이를 황권 강화를 위해 추진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보통 어떤 국가든 궁이 있는 수도에 권력층인 기득권들이 모여살고 이 세력을 강하게 움켜잡는데, 숙종은 개경에 몰려있는 권력층 세력을 약화시키기위해 새로운 남경파 세력을 만들어서 서로 견제하게끔 하여 황권을 강화시키겠다는 생각으로 추진한다.

IV. 별무반

1100년에 접어들면서 동북방 완안부 여진(당시 여진족 추장 오아속, 금나라 태조의 , 1061~1113, 재위1103~1113) 세력이 커지게 되면서 숙종이 총사령관으로 임간()을 임명하여 공격하게끔 하는데, 임간이 그만 공적에 눈이멀어 제대로 된 작전을 하지않고 돌진만했다가 대패하게 되버린것...! 이에 숙종은 윤관(?~1111)을 보내 화친을 맺고 일단 매듭짓는다.

숙종은 이 사건을 계기로 여진정벌을 천명하며 윤관으로 하여금 별무반(여진정벌을 위한 군사조직)을 설치해 현재로 따지면 특전사 공수여단 같은 부대로, 3군으로 구성된다[신기군(기병), 신보군(보병), 항마군(승군)].

 

그러나 승하

별무반을 조직해 수십만의 군대를 두고 훈련시켜 여진정벌을 천명했던 숙종이였지만 1105년 서경에 동명왕*(부여의 초대군주)묘에 제사를 지내고 개경으로 돌아오는 와중에 병을 얻어 궁에 도착하지 못한채  승하한다.  51세.

위의 여진정벌은 숙종 사후 아들 예종(1079~1122, 재위1105~1122)대에 들어서 진행되게 된다.

*동명왕은 부여의시조, 동명성왕(주몽, BC 58~BC 19, 재위BC 37~BC 19)과는 다른 인물이니 유의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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