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ximilien Ier, 1459~1519, 재위1486~1519 (재위는 로마왕 재위 기준, 로마왕:신성로마황제 대관식 받기전 사실상 황제작위)
출생
1459년 오스트리아 중부 비너노이슈타트(Wiener Neustadt)에서 아버지 신성로마황제 프리드리히3세(Friedrich III, 1415~1493, 재위1440~1493)와 어머니 알리오노르 다비즈(Aliénor d'Aviz, 1434~1467)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남.
배경
전쟁과 결혼을 통해서 합스부르크가의 세력을 유럽 전체로 확산시킨 장본인으로서, 부르고뉴, 스페인(카스티야+아라곤)등을 손에 넣게 된다. 손자 카를5세(Charles Quint, 1500~1558, 재위1519~1556)가 유럽의 패자로서 발돋움할 수 있게 기반을 만들어놓은 군주이다.
하나하나씩 묵으보자
1477년 부귀공 마리(Marie de Bourgogne, 1457~1482)와 결혼하여 부르고뉴의 공동통치자가 되지만 1482년 마리가 사망하면서 장남인 미남공 펠리페(Felipe Ier, 1478~1506, 부르고뉴 재위1482~1506, 카스티야레온재위1506)를 부르고뉴 섭정으로 올리는데있어 네덜란드 의회와 프랑스로부터 인정을 받아야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는데,
이는 1482년 프랑스 루이11세(Louis XI, 1423~1483, 재위1461~1483)과 아라스 조약(Traité d'Arras, 1482)으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루이11세는 부르고뉴, 피카르디를 차지하고 막시밀리안1세는 플랑드르, 네덜란드, 룩셈부르크를 차지하게 된다. 이후 딸 마르그리트 도트리슈(Marguerite d'Autriche, 1480~1530)을 루이11세의 아들 샤를(샤를8세, Charles VIII, 1470~1498, 재위1483~1498)과 혼인하기로 합의하면서 지참금으로 아르투아, 샤롤레, 프랑슈콩테를 받게 된다.
1490년 헝가리 마티아스1세(Matthias Corvin, 1443~1490, 헝가리재위1458~1490, 보헤미아재위1469~1490)가 서거하면서 당시 헝가리군에 의해 뺏겼던 오스트리아를 탈환하는 과정에서 블라디슬라프2세(Vladislav II, 1456~1516, 재위1471~1516)와 대립하여 프레스부르크 조약(Traité de Presbourg, 1491)을 체결한다. 이는 블라디슬라프가 남성 상속인이 없이 사망할 경우 막시밀리안1세가 상속권을 확보하는 내용이다(보헤미아, 헝가리 왕위).
그리고 1493년 상리스 조약(Traité de Senlis, 1493)을 프랑스 샤를8세와 체결함으로서, 베네룩스3국과 부르고뉴에 대한 합스부르크 통치를 용인받게 되는데, 이는 최종적으로 상호중립의 평화조약이다. 샤를8세는 이 평화조약이후 바로 이듬해에 이탈리아로 쳐들어가 나폴리를 점령한다.
아버지 오래도 사셨소..
아버지 프리드리히3세가 1493년 서거하게되는데 당시 78세의 나이로 상당히 장수한 편에 속하는데(당시 평균수명 30~40세), 막시밀리안1세는 1483년부터 아버지와함께 공동재위를 하며 통치를 해왔기때문에 군주로서의 재위는 크게 변함이 없지만 이제서야 단독 통치자로서 합스부르크가의 수장이 된다.
또 막시밀리안은 1494년에 밀라노의 비앙카 마리아 스포르차(Bianca Maria Sforza, 1472~1510)과 결혼해서 이후 스포르차 가문의 대가 끊어질때 또 합스부르크가가 밀라노 공국을 상속받는 길을 뚫는다...(독하다).
거 가만히좀 있으라
샤를8세가 1495년 나폴리를 점령하는데 있어서 상당히 심기가 불편했던 교황 알렉산데르 6세(Alexander PP. VI, 1431~1503, 재위1492~1503)는 주변국들을 모아 신성동맹을 체결하여 사실상 프랑스를 견제하기에 이르는데, 이후 막시밀리안1세는 1496년 프랑스군과 싸우기위해 이탈리아로 군대를 보내지만 전혀 이득을 취하지못하고 대치상태에 놓이게 된다.
아들아 아빠말 듣그래이?
결혼으로 인해 영토를 취한 일중 가장 핵심적인 격인 부분이 스페인인데, 아들 미남공 필리프를 카스티야 여왕 이사벨1세(Isabelle Ier, 1451~1504, 재위1474~1504)와 아라곤 왕 페르난도2세(Fernando II, 1452~1516, 재위1479~1516)의 딸인 후아나(Juana Ier, 1479~1555, 재위1504~1555)와 결혼시키면서 이후 이 왕가가 끊어질 시 카스티야와 아라곤영토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게끔 한다.
이는1504년 카스티야의 이사벨1세가 서거하고 후아나가 후아나1세로 즉위하면서 미남공 필리프가 공동왕으로서 펠리페1세로 즉위하게 되는 상황이 벌어진다. 이후 1516년 장인인 페르난도2세역시 서거하면서 손자 카를(카를5세)이 카스티야, 아라곤 전체를 상속받게 되면서 카를로스1세로서 왕위에 오르게 된다.
사망
평생을 죽을때까지 자신을 포함한 자녀의 결혼으로 영지를 취해오던 막시밀리안1세도 1519년 60세로 서거하게 되면서, 손자인 카를이 신성로마황제 카를5세(Charles Quint, 1500~1558, 재위1519~1556)로서 즉위하면서 사실상 16세기 초중반 유럽의 패권자로서 자리매김하면서 유럽을 호령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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