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로마황제/합스부르크

막시밀리안2세(신성로마황제)

Mintaka5 2024. 9. 7.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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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ximilien II du Saint-Empire, 1527~1576, 로마왕 재위1562~1576, 신성로마황제재위1564~1576

막시밀리안2세, 출처-위키피디아

출생

1527년 오스트리아 대공국 빈(Vienne)에서 아버지 페르디난트1세(Ferdinand Ier, 1503~1564, 로마왕재위1531~1564, 신성로마황제재위1556~1564)와 어머니 안 드 보헤미아(Anne de Bohême ou Anne Jagellon, 1503~1547)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남. 

 

배경

합스부르크 가문 출신이며, 태어날 당시 유럽을 휩쓸던 신성로마황제 카를5세(Charles Quint, 1500~1558, 재위1519~1556)는 막시밀리안의 큰아버지다. 큰아버지 카를5세의 딸 마리 도트리슈(Marie d'Autriche, 1528~1603)와 결혼했다(합스부르크의 근친상혼). 

신성로마제국의 황족답게 다들 카톨릭을 믿고, 심지어 큰아버지 카를5세는 '카톨릭의 수호자'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카톨릭의 신봉자였는데, 막시밀리안은 개신교에 호의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당시 큰아버지 친동생인 아버지 페르디난트1세가 이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재위초기 오스만 제국 파디샤 슐레이만 대제(Soliman Ier le Magnifique, 1494~1566, 재위1520~1566)와의 마지막 일전을 벌여 슐레이만 대제가 1566년 승하하면서 후임 파디샤인 셀림2세(Sélim II, 1524~1574, 재위1566~1574)와 1568년 아드리아노플 조약(Traité d'Andrinople, 1568)을 체결하면서 평화가 오게된다.

1576년 승하하기 전까지 재위했으며, 재위기간에 주세페 아르침볼도(Giuseppe Arcimboldo, 1527~1593)라는 특이한 작품을 그리는(?) 화가로인한 작품이 많이 보여지는 군주이다.

 

재위 배경

큰아버지 카를5세는 다음 군주로 아들인 스페인 왕 펠리페2세(Felipe II, 1527~1598, 재위1556~1598)에게 물려주려고 했는데, 친동생인 페르디난트1세가 이미 로마왕에 선출되어있던(한국사로 치면 태제 : 황제의 동생인 계승자)상태로서 형 카를5세의 아들에게의 상속을 반대하면서 대립하는데, 이미1531년 독일왕에 선출함에 있어 지지한 선제후들이 황제의 자식상속을 거부하면서 결국 카를5세는 동생 페르디난트에게 물려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후 1555년 아우스크부르크에서 종교 협약을 끝으로 카를5세는 다음해인 1556년 퇴위하고 아들 펠리페2세는 스페인왕으로, 동생 페르디난트1세가 후임 신성로마황제가 된다. 그렇게 해서 막시밀리안이 사실상 태자가 된다.  

 

개신교

1517년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에 의해 시작된 종교 개혁(Réforme protestante, 1517)의 여파가 계속해서 지속하고 있던 때에 막시밀리안2세는 개신교 사상에 흥미를 느낌으로서 제후들의 격렬한 반대를 국교는 카톨릭일 것이다 라고 약조를 한 다음에야 황제 후계자로 선출된다.  

그렇게 1564년 아버지 페르디난트1세(Ferdinand Ier, 1503~1564, 로마왕재위1531~1564, 신성로마황제재위1556~1564)가 61세로 승하하면서 막시밀리안이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된다.  

카톨릭의 가문이라고 하는 합스부르크 가문에서 나오느 군주중 유일하게 개신교에 관대했던 군주답게, 종교의 화합으로인한 제국의 분열을 막았다는 차원에서는 아주 평이 좋다. 다만 이 개신교도 루터파 개신교에 대한 종교자유를 허용한 것이지, 칼뱅파 개신교에 대한 종교자유는 허용하지 않았다.     

 

오스만 제국

1566년 오스만 제국 파디샤 슐레이만 대제가 10만의 군대를 이끌고 헝가리로 쳐들어오는데 그해 고령(72세)으로 승하해버림에도 전쟁은 끝나지 않았고, 막시밀리안2세는 슐레이만의 아들인 다음 파디샤 셀림2세와 평화조약을 체결하는데 이 조약이 아드리아노플 조약(Traité d'Andrinople, 1568)이다. 그러나 체결조건에 막시밀리안이 셀림에게 연간 3만 두캇씩 배상금을 바치는 조항이 있었기에 이에 굴욕적인 조약아니냐는 여론이 나오고, 책임을 제대로 지지 않았다는 여론과 함께 황제로서의 권위가 실추되는 사건이 되고 만다. 

 

그래.. 이게 나란 말이지? 

막시밀리안2세와 동갑내기 화가인 주세페 아르침볼도(둘다 1527년생)는 원래 페르디난트1세 때부터 눈에 띄어 들어오게된 이탈리아출신 화가인데, 독특하고 독창적인 작품해석(과일, 꽃, 동물, 사물등을 이용한 사람표현방식)과 해박한 지식등으로 궁정화가로 삼았던 페르디난트1세였기에, 아르침볼도는 1593년 당시 황제 루돌프2세(Rodolphe II, 1552~1612, 재위1576~1612)에 이르기까지 3대에 걸친 궁정화가로 일하면서 합스부르크에 봉사한다.

특히 막시밀리안2세가 오스만제국과의 굴욕적인 조약체결로 인해 권위가 떨어진 상태에서 아르침볼도에게 자신의 초상화를 그리라고 지시하는데, 보통 화가였으면 사람이 보이는 모습 그대로 그렸을 것인데, 상당히 특이한 기법으로 그린다.

아래 작품은 막시밀리안2세의 초상화는아니고 사계절(봄, 여름, 가을, 겨울)을 표현한 작품인데 대충 이런방식으로 사람을 그렸다고 보면 된다. 

첫번째 시계방향으로(겨울, 봄, 가을, 여름)

 막시밀리안은 자기자신을 희화하 해서 그린 작품을보고는 그자리에서 빵터졌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

 

승하

1576년 평소에도 건강이 별로 좋지 않던 막시밀리안2세였기에, 49세의 나이로 레겐스부르크에서 승하. 차기 황제는 장남 루돌프2세(Rodolphe II, 1552~1612, 재위1576~1612)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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