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군주(한국어, 프랑스어)/고구려의 군주

17대 소수림왕

Mintaka5 2024. 8. 2.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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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surim, ?~384, 재위371~384

 

 

 

출생

출생년도는 미상, 아버지 16대 고국원왕(300?~371, 재위331~371)과 알려져있지 않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남. 본명은 고구부. 

 

배경

국사교과서에 단골로 등장하는 인물로서 고구려, 백제, 신라 3국중 불교를 가장빨리 수용하게되는 고구려의 군주로서, 태학설립, 율령반포등 고구려 전성기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을 받는 군주이다. 비슷한 포지션의 군주로는 프랑스 부르봉 2대왕 루이13세(Louis XIII, 1601~1643, 재위1610~1643)와 신라 23대 군주 법흥왕(?~540, 재위514~540)과 비슷한 행보를 보인다. 모두 공통적으로 내치를 잘 해서 국가를 안정시키고, 법을제정하는등 국가 체제를 정비해 중앙집권형 왕권강화를 이룩했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아이고 아부지

고국원왕의 장남으로 태어났고 아래동생으로는 고이련 ou 어지지(고국양왕, ?~391, 재위384~391)가 있다. 355년 태자로 책봉되었지만 책봉되기 이전인 340년에 아버지 고국원왕의 명령을 받아 전연 황제 모용황(297~348, 재위337~348)을 예방한 것이 자료로 남아있다. 

여튼 아버지 고국원왕을 도와 태자가 되기 전까지도 국정 전반에 대한 많은 경험을 해왔고, 외교적으로도 많은 경험을 했다. 371년 아버지 고국원왕이 백제와의 전쟁에서 전사하는 상처도 안게 됨.

아버지가 전사한 이후 17대 소수림왕(?~384, 재위371~384)으로 즉위하게 된다.

 

탁월한 외교군주

소수림왕 재위시기엔 중원은 시끄럽기가 그지없었는데, 전연(마지막 황제 모용위, 350~384, 재위360~370)이 전진 황제 부견(337~385, 재위357~385)에게 멸망하고, 이 기세를 몰아 전진은 동진국까지 멸망시키면서 중원 동부의 패자가 된다. 

그러나 전진은 동진을 멸망시킬때 혹시나 고구려가 뒤에서 치지 않을 까 하는 걱정이 있었기에 고구려의 비위를 건드리지는 않았고, 동진을 멸망시킨 이후에도 고구려에 대해서는 비교적 온건한 외교를 펼친다. 

오히려 소수림왕은 아버지를 전사하게끔 만든 백제에 원한이 더 많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수림왕은 칼을 빼들지 않고, 중원의 전진과의 안정적인 외교를 취하면서 백제를 고립시키기 위한 작전을 편다(우와...). 상당히 품격있는 한방인데 소수림왕의 주특기인 고도의 외교전략으로 대내외적으로 실리를 취하는 문치주의(학문을 최고의 가치 개념으로하여 정치에서 무인을 제외하고 문인을 주요 파벌로 내세우는 통치 이념)가 바로 여기서 나오게 된다.

문치주의는 사실상 소수림왕이 중앙집권을 하기위한 초석이였는데, 쉽사리 막무가내식 무력사용이 남발하지 않게끔 하는 장치역할을 해서, 내적으로도 왕권이 강화되고 외적으로도 다른 국가들간에 사이가 좋아지는 효과를 얻어 대내외적으로 안정을 이룩하게 된다.

 

불교수용, 태학설립

전진과의 화합을 위해 당시 전진지역에서 부흥하던 불교를 도입하기위해 372년 전진 황제 부견이 고구려에 사신과함께 불교 승려를 파견시켜 불상과 경문을 전하게 함으로서 처음 전파된다. 

375년 초문사(고구려 최초의 불교사찰)와 이불란사를 건설하여 전진으로부터 온 승려들을 머무르게 하는등 전진과의 관계유지와 고구려 내 불교를 수용, 보급하는 정책을 펼친다. 

비슷한 시기인 372년 태학을 설립하는데(유학 교육기관), 주로 중앙관료나 귀족들의 자제가 입학하는 국가공인 최고의 교육기관으로서 유학, 무예를 가르쳤다. 한국역사 최초의 학교이자 대학교.

 

기다릿데이...기... 다릿데이..

376년 하반기, 백제군에 의해 전사했던 아버지 고국원왕에 대한 복수를 하기위해 백제 북쪽 변경을 치게되지만, 2년여간의 전쟁으로 인해 민심이 흉흉해지고, 설상가상으로 378년 고구려에 가뭄이 극심해지면서 사람들이 서로 잡아먹기까지 하게 되면서 더이상 전쟁을 하게될 여력이 되지 않아, 백제와의 전쟁을 멈추고 내치에 모든 총력을 기울이게 된다. 

너무 지나치게 기력을 소모했던걸까,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지면서 384년 서거해버린다.

소수림왕에게는 자식이 없어서, 아우였던 고이련(고국양왕, ?~391, 재위384~391)이 고구려 18대 대왕으로 즉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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