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cheon, ?~331, 재위300~331
출생
출생년도는 알려진 바가 없고, 아버지 고돌고(?~293, 서천왕의 차남, 봉상왕의 동생), 어머니 역시 미천왕의 출생과 더불어 알려진바가 없다. 본명은 고을불.
배경
아버지 돌고는 13대 서천왕(?~292, 재위270~292)의 둘째아들로서, 바로위의 형은 14대 봉상왕(?~300, 재위292~300)이다. 서천왕이 서거하고 형 봉상왕이 즉위하여 고구려를 다스리지만, 교만스럽고 방탕한 형 봉상왕이 왕권강화차원에서 여러 측근들에게 없는죄명을 씌워서 살해를 일삼다가, 293년 친족인 동생 돌고에게까지 역모죄를 씌워 자살케끔하여 돌고의 아들인 을불이 숙부를 피해 도망치는데, 을불은 신분을 숨긴채로 소금장수를 하면서 숨어지내며 7여년의 시간을 보내며 인고의 세월을 보내게 된다. 뭐 피해다니는 시점에 선비족 모용부의 수장인 모용외(269~333, 대인으로서 재위285~333)가 고구려국경을 넘게되면서 침입해오자 을불을 잡는데 신경을 쓸 수 없어서 마침 을불에게는 시간을 벌 수 있는 기회가 되었던 타임이 됨.
이게 모용?
일단 모용씨 이야기부터 하자면 모용외가 처음 침입했을 때 봉상왕을 맞이하러 나올 때 데리고나온 500명의 기병으로 모용외 군을 무찌른 고노자(?~?)를 막아내어 1차침입을 막지만 296년 다시 모용외가 고구려로 쳐들어오면서 서천왕의 무덤까지 파헤치는 시도까지 하게되면서 제대로 빡이친 봉상왕이 창조리(고구려의 국상)의 추천으로 신성(북방최전선 요충지)태수에 오르게 되면서 1차침입때 명성이 자자했던 고노자의 이름을 듣자마자 침입을 멈추게 된다.
흉흉하네..
모용외의 침입이 멈춘297년경부터 고구려에는 우박으로 농사를 망치고 민심이 흉흉해진 상황에서도 봉상왕은 궁궐을 새로 짓고 모용씨와의 전쟁으로 인해 신경쓰지 못했던 조카 을불을 죽이려고 하는 등 고구려 궁에까지 불만이 가득차게 된다.
국상 창조리는 봉상왕에게 이대로 가면 민심이 걷잡을 수 없게된다고 간청하지만, 오히려 궁궐이 화려하지 않다면 위엄이 떨어진다고 하게되면서 국상의 말을 무시하게되면서 더이상은 왕으로 인정하지 못해 창조리는 다른 신료들과 함께 봉상왕 폐위에 관해 논하게 되면서 이미 봉상왕에게 쫓기고 있던 을불을 찾아 일단은 숨겨두면서 을불의 지지세력을 모으기 시작하면서 봉상왕 폐위를 계획하게 된다. 300년경 봉상왕이 신하들과 함께 사냥을 떠난 틈에 남은 신하들까지 모두 을불의 세력으로 따르게 되면서 봉상왕을 유폐하여 폐위시킨 다음 을불에게 옥새를 전달하여 왕위에 오르게 하니 을불이 15대 미천왕(?~331, 재위300~331)으로 등극하게 된다. 봉상왕은 유폐되었을 때 두 아들과 함께 자결.
즉위
재위에 오르고 난 이후에 중원의 세력과 대립이 잦아지는데, 특히 선비족 모용부가 이전보다 더 세력을 확대하게 되면서 모용부가 요동지역을 차지하게 되면서 대립이 잦아지게 되는데, 말년의 모용외가 두 아들(모용황, 모용인)을 데리고 침략해오는데 고구려의 상황이 넉넉치 못한 상황에서도 계속해서 모용씨의 침략을 겪는데 죽고난 이후 수십년동안 계속 겪게된다(광개토태왕, 장수왕시기까지).
내적으로는 국상 직위가 창조리 이후 사라지게 되는데, 이때부터 고구려의 왕권이 강해진다고 보는데 직급, 직위가 개편되어 폐지된 거 아니냐는 것으로 추정된다.
서거
331년 아들 고사유(고국원왕)에게 양위한 후에 서거하게 된다. 미천 언덕에 묻혔다 하여 시호를 미천왕이라고 지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