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gugyang, ?~391, 재위384~391
출생
출생년도는 미상. 아버지 고국원왕(300?~371, 재위331~371)과 어머니 역시 미상. 둘 사이에서 둘째아들로 태어남. 본명은 고이련, 어지지. 형은 17대 소수림왕(?~384, 재위371~384).
배경
371년 아버지 고국원왕은 백제군에 맞서 싸우다 평양성에서 화살에 맞아 전사하였고 뒤이어 형 소수림왕이 재위에 오르게 되면서 고구려, 백제, 신라중 최초로 고구려가 불교를 수용하는 시대를 겪으며 태학설립, 율령반포등 고구려 내치를 다지는데 애쓴 형이 자식이 없자 왕위에 오른 인물이다.
모용.. 피곤하네
형 소수림왕이 외교적으로 잘 풀던 전진에 급변이 일어나는데, 과거 전연의 모용황(297~348, 재위337~348)이 전진에 의해 멸망했는데 이후 황제인 모용위의 동생으로서 전연에서 쫓겨 전진의 부견에게 투항했던 모용황의 아들 모용수(326~396, 재위384~396)가 아버지의 국가를 몰락시켰던 전진을 멸망시킨다. 이후 모용수는 후연(아버지 모용황의 연나라를 전연, 모용수가 세운 연나라를 후연이라 함)을 세워 스스로 창업군주가 되면서 요서지방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면서 고구려와의 불가피한 충돌이 곧 일어나는 건 시간문제였다고 보면 된다. 마침 후연이 건국된 시기가 384년으로 고국양왕이 즉위한 원년과 일치.
문제는 유주와 기주지방이였는데, 유주는 현재의 베이징근처이고, 기주는 유주남쪽에 위치한 곡창지대로서 소수림왕시대때 이미 고구려에 투항했던 곳이였는데, 모용수가 이 두곳을 점령하면서 고구려와 후연간의 전쟁이 촉발하게 된 시점이 되게 된다.
그러나 이때는 소수림왕재위 말기로서 병상에 누워있었던 관계로 적극대응도 하지못하고 서거하면서 동생 고국양왕에게 과업이 물려지게 되는데, 고국양왕은 즉시 4만의 군대를 이끌고 후연을 공격하여 요동, 현도지방을 점령하지만 다시 빼앗기고를 반복.
니들 오기만 해봐라이
진짜 문제는 이제부터였는데, 이미 아버지 고국원왕때부터 끝장을 본 사이 백제가 후연과 고구려의 전쟁을 틈타 고구려의 후방을 칠 준비를 하고있었던 것. 고국양왕은 전선이 2개가되면 고구려에게 매우 불리할 것이라는 것을 잘 알았기에, 백제쪽엔 대군으로 위협을 하는 정도의 선에서 끝내고 후연과의 전선에 집중하게 된다. 백제는 근데 쉽사리 고구려 후방을 치지 못했던 것이, 고구려 우방국이던 말갈이 백제를 공략하도록 되었기 때문에.
그럼에도 백제는 389년, 390년에 달솔 진가모에게 고구려 도압성을 공략하게끔 시켜 포로 수백명을 잡아가는등 고구려를 치게 되면서 고국양왕은 후연전선에 무리가 가지않게끔 공략을 늦출 수 밖에 없었다.
서거
그러나 고국양왕은 이때 병으로 드러눕고 마는데, 이에 후연과 백제 공략은 전면 취소. 이후 회생할 가능성이 없다고 스스로 보았는지, 태자였던 담덕(광개토태왕, 374~413, 재위391~413)에게 왕위를 양위하고 자신은 상왕으로 물러나게 된다. 이후 요양으로 건강회복에 애썼으나 결국 392년 서거.
묘호는 고국양왕.
드라마 광개토태왕에서 고국양왕의 왕비 고야는 극중에 지어진 인물이고, 왕후에 대한 기록이 전무하고 유일하게 가족중 기록이 남아있는 사람은 아들이자 19대 대왕이 되는 고담덕(광개토태왕)에 대한 기록밖에 남아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