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군주(한국어, 프랑스어)/고구려의 군주

24대 양원왕

Mintaka5 2024. 9. 9.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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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ngwon de Goguryeo, ?~559, 재위545~559

 

 

출생

출생년도는 여러 설이있다 528, 530, 538년등.. 확실치는 않고, 아버지는 23대 안원왕(?~545, 재위531~545)과 기록미상의 어머니(두번째 왕비로 추정)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남. 본명은 고평성.

 

배경

문자명왕(?~519, 재위492~519)의 손자이며, 즉위하기 전 태자일때 아버지 안원왕이 병석에 누워있을 때 이복동생 세군이 반란을 일으켜서 왕위를 찬탈하려는 시도를하지만 3일만에 난이 진압되고 겨우 왕위에 오른다. 즉위했을 때부터 이런 사건으로 인해 왕권이 크게 위축되었고,  외부적으로도 북쪽 돌궐이 강성해지면서 고구려를 위협, 신라 정복군주 진흥왕(534~576, 재위540~576)이 고구려 남쪽 변경을 노리면서 전선이 2개가 생겨버리는등 어려운 상황에서 고구려를 꾸려나간다.   

 

즉위

위 배경에서 언급한 것처럼 안원왕에게는 3명의 부인이 있었는데, 양원왕은 둘째부인 소생, 세군은 셋째부인 소생이였다고 한다. 두 왕비모두 안원왕 승하후 태자 평성(추군)과 세군을 왕으로 세우려 하면서 지지세력이 충돌하면서 세군의 기습 반란이 일어나지만 3일만에 제압되면서 평성이 24대 양원왕으로 즉위하게 되지만, 즉위 직전에 발생한 왕을 향한 권한 도전으로 인해 왕권이 크게 타격을 입으면서 약화되어져 간다.

 

고구려 외부

내부적으로도 혼란스러웠던 고구려였는데, 외부적으로는 더 심각한 상황에 놓였던 양원왕의 치세는 북쪽으로는 북위가 분열되며 돌궐이 크게 성장하면서 고구려 서북쪽 변경을 위협하고, 신라 정복군주 24대 진흥왕(534~576, 재위540~576)이 고구려 남쪽 변경을 노리는것으로도 모자라 백제가 한창 성장하는 신라와 손을 잡고 고구려 공략에 나서고, 동북쪽엔 말갈족까지 고구려 국경을 침범하면서 양원왕은 북쪽과 남쪽 2개의 전선을 신경써야하는 복잡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양원왕은 이에 전쟁을 대비하면서, 547년에 국경지대에 놓여져있는 성들을 개축하고 보수하는 작업에 급히 서두르게 된다. 돌궐이 551년 고구려에 쳐들어오기전에 전방 성 백암성과 신성을 개축하면서 북방 전선을 점검함으로서 쳐들어왔을 때 나름 효과적으로 방어에 성공(양원왕은 이때 장군 고흘에게군사1만을 주어 대적하게끔 함)하지만 여기서 국력소모가 꽤 많이 되는데, 신라입장에서는 이 상황을 기다렸던 것. 

 이에 나제동맹(백제-신라)군이 한강유역 변경을 공격하면서 한강 상,하류 부분의 일대를 백제-신라에게 뺏기는데 더욱이 수도 평양성까지 들어올 수도 있던상황에 양원왕이 진흥왕에게 협상을 벌여 함흥일대를 내어주고 한강상류유역 점령지를 신라의 영토로 인정해주겠다는 조건을 내어 협상에 성공하면서 가까스로 침입을 막아낸다.     

역시 전선2개는 버티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

 

귀족연립정권

고구려는 내부 정쟁으로 불안정했던 것을 위와같이 고구려 외적으로 남, 북으로 고구려를 양쪽에서 위협하는 모습을 두눈으로 목격하고 한강유역까지 빼앗기는 대가를 치루면서 정신을 차렸는지,

내부 정쟁을 종식시키고 안정을 도모해 외부세력으로부터의 방비를 해야한다는 정치적 합의를하기에 이르는데, 이것이 귀족연립정권이다.  이 귀족연립정권의 개편으로 국정을 총괄하는 집권관직(지금으로치면 내각제 총리격)인 막리지가 이때 등장한다.  대대로와 헷갈릴 수 있는데, 아래 표로 정리를 해두겠으니 참고하길 바란다.

  대대로 막리지 연개소문대 막리지
직위 설명 귀족회의를 주관하는 회의장
현재의 국회의장 또는 국무총리
대인, 귀족회의 대표자격으로 국사를 총괄하는 직위
현재의 여, 야당 대표
연개소문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설치한 특수직위, 막리지의 하이퍼 버전 직
임기 3년, 연임가능 3년마다 교체 X
세습 여부 X O O
임명 과정 왕이 임명하지 않고, 귀족들의 선출로 임명(제가회의), 이부분은 아직까지도 혼동이 많음. 연개소문이 스스로 오름
군권 X X O

 

간주리의 난

양원왕 12년인 557년, 귀족 간주리(?~557)가 환도성(국내성)에서 반란을 일으킨다.

이유는, 수도 평양 정권에 대해 국내성 세력이 반발하게 되면서 일어난 것인데, 자세한 이유는 알려져있지 않고, 수도권에만 집중되는 정치 개편과정에 환도성(국내성)세력들의 불만이 커짐과 동시에 연이은 북방의 침입으로 피폐해진 민심을 이용해 군대를 일으켜 반란을 일으킨 것으로 보고있다. 

그러나 반란은 쉽게 관군에 의해 진압되고 간주리가 체포되어 처형됨으로서 반란이 확산되지 않는차원에서 마무리가 된다.

 

승하   

553년 아들인 왕자 양성(미래의 평원왕)을 태자로 삼고, 14년간의 재위기간을 뒤로하고 559년 승하하면서 양성이 25대 평원왕(?~590, 재위559~590)이 즉위하게 된다. 

평원왕의 딸 교과서에서도 많이 등장한 평강공주(?~?)이며 바보온달의 주인공 온달장군(?~590)은 평원왕의 사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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