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군주/고구려의 군주

11대 동천왕

Mintaka5 2024. 7. 31.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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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gcheon, 209~248, 재위227~248

 

출생

고구려 에서 아버지 산상왕(?~227, 재위197~227)과 어머니 소후 사이에서 태어남.

 

배경

산상왕은 원래 처자가 있었지만 발기의 난때 죽어 사실상 부인이 없었다. 산상왕의 형인 고국천왕의 왕비 우씨덕분에 산상왕이 즉위를 하게 되지만 우씨가 이미 아이를 갖기엔 나이가 너무 많아 소후(후궁)을 두어서라도 아이를 얻어야한다고 생각했지만, 우씨를 포함한 외척세력은 반대.

아명은 '교체'로서 삼국사기에 따르면, 본인이 아이를 가지기위해 기도를 올리곤 했는데, 꿈에서 '소후'라는 여자에게 아들을 낳게 할 것이다 라고 일러주었지만 당시엔 산상왕 곁에 없었음. 몇년후에 교제(제사)에 쓸 돼지가 달아나 아무도 못잡던 돼지를 주통촌이라는 마을의 한 여인이 잡았는데 이런 여인을 이상히 여겨 관계를 맺어 여자가 아들을 낳게 되는데, 이가 동천왕이된다. 교제(제사)에 쓸 돼지로 인해 태어난 아이라 하여 아이의 이름을 교체라고 함.

 

태자

교체는 213년 4살이 되었을 때 태자에 책봉되는데, 우씨의 소생이 아닌 자식을 태자로 삼는것에 대해 외척세력의 반발이 컸지만 산상왕은 그대로 뜻을 관철시키는데, 그래서 우씨로부터 미움을 많이사서 학대를 받고, 사사건건 간섭하고, 폭력을 쓰기도 했다고 함. 

그래도 교체는 꿋꿋이 참는 인내력을 보이며 성격또한 삐뚤어지지않고 원래도 성품이 너그럽고 어질어서 화도 내지 않았던 탓에 적이 많이 없었다고 한다.

 

혹시 부처님?

227년 아버지 산상왕이 서거하면서 고구려 11대 대왕으로 오르게 되지만, 태후 우씨의 심술로 계속 당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천왕은 한번도 화를 내지않고 오히려 너그럽게 대했다고 할 정도였다고 한다(보살인가..?). 234년 우씨가 서거할때까지 계속 심술을 부리는데 그럼에도 동천왕은 화한번내지않고 불화를 일으키지도 않을 뿐더러 본인이 태자시절부터 줄곧 반대를 고수해온 외척세력에게도 불이익을 주지않는등이였다.

그러니 신하들과 백성들 모두 동천왕을 높게 평가할 수 밖에..

명군밑에 명재상이 있달까, 230년 3대 국상 고우루(?~230, 국상재임203~230)가 사망하고 연나부 출신 명림어수(명림답부 아님 그러나 명림답부의 후손일 수 있다는 이야기도 있음, ?~254, 국상재임230~254)가 4대 국상으로 재임하게 된다. 정치적으로 들어가면, 고국천왕시대때부터 불이익을 받던 연나부의 불만을 해소시키고 화합을 이루기위해 등용한 계산이라고도 볼 수 있다. 

 

리얼삼국지

동천왕 치세때, 중원은 위나라 조조, 촉나라 유비, 오나라 손권의 삼국구도(우리가 흔히 아는 삼국지 배경)가 형성되어 있었는데 서로 세력다툼을 하면서 통일을 꿈꾸는데 동천왕은 이 3국을 적절히 이용해 취할수 있는 이득을 취하고자 했다. 3국은 고구려의 지원을 받기위해 경쟁적으로 외교관계를 맺고자 했다. 

 

서진정책

오나라가 유독 고구려와 외교관계를 맺기위해 233년, 236년 두번에 걸쳐 화친을 요청하지만, 234년 위나라가 보낸 화친은 받아들인다(고구려와 상대적으로 가깝게 위치해있었고, 3국가중 가장 강성한 국력과 군사를 가졌다는 점에서 위나라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236년 다급했던 오나라는 다시 화친을 청하지만, 거절하고 사신을 감옥에 억류시키고 참수하여 그 수급을 위나라에 보냄으로서 고구려와 오나라 관계는 끝.

그렇게 위나라와 가깝게 지내는쪽으로 선택한 고구려는 위나라에서 요동에 있던 공손연(?~238)을 토벌하고자 하여 고구려에게 호의를 요청해 고구려에서 군사 1천명을 보내서 위나라를 도와 공손연 세력을 멸망시키게 되며 지원한만큼의 영토를 차지하게되면서 이후 위나라와 사이가 험악해진다. 

 

영원한 동지는 없다

242년 위나라가 공격하지만 막아내지만, 246년 관구검(?~255)이 고구려를 침공하면서 동천왕은 이에맞서 두번 막아내어 승승장구 하지만, 세번째 전투에서 아예그냥 끝내버리려고 했던 동천왕의 욕심이 컸는지, 패주하던 관구검이 방어진을 치고 결사항전을 하면서 고구려 도성 환도성도 피해를 입고, 1만명이 넘는 군사가 사망해버리면서 결국 옥저방향으로 도주. 이곳에서 군사를 정비하여 다시 위나라를 몰아세워 다행이도 몰아내게 된다.

위나라 차원에서도 피해가 막심했지만 고구려는 수도인 환도성까지 피해를 입게되면서 타격을 크게 입게되는데, 이때문에 247년에 수도를 평양성(지금의 평양 위치와는 좀 다른듯)으로 옮긴다. 

 

서거

천도 후 오랜 전쟁으로 인한 피로로 인해 기력을 잃고 병을 앓게 되면서, 248년 결국 서거.

동천왕의 죽음으로 수많은 백성들이 슬퍼했고, 그와중에 왕을 잃은 슬픔으로(많은 백성들이 왕의 은덕을 받음)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까지 많았다고 한다. 영광스러운 죽음.

묘호는 동천왕으로, 서거 후 후임 군주는 장남인 고연불(12대 중천왕, 224~270, 재위248~270)이 재위에 오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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