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명 : 카를로 델라 토레 디 레초니코 Carlo della Torre di Rezzonico
클레멘스13세(Clemens PP. XIII, 1693~1769, 재위1758~1769)
출생
1693년 베네치아 공화국 베네치아(Venise)에서 소귀족인 아버지 조반니 바티스타 델라 토레 레초니코(Giovanni Battista della Torre Rezzonico, ?~1757)와 어머니 비토리아 바르바리고(Vittoria Barbarigo, ?~1758)사이에서 태어난다.
레초니코는 어릴때 바로 볼로냐(Bologne)에 있는 예수회에서 인문학, 철학, 교회법을 공부하고 이후 파도바(Padova)대학교에 입학해서 신학과 교회법으로 박사학위를 받는다.
경력시작
레초니코는 21세가 되던 1714년에 로마로 가서 그곳에 있는 바티칸 외교관 학교(L'Académie pontificale ecclésiastique)에서 2년간 공부를 마친뒤 1716년부터 바티칸 카톨릭교회 사법기관을 시작으로 경력을 쌓으면서 1721년 파노의 주지사, 1731년 교황 클레멘스12세(Clemens PP. XII, 1652~1740, 재위1730~1740)로부터 사제로 서품 후 6년만에 부제급 추기경으로 서품되기에 이른다.
그는 주로 자신의 교구인 산 니콜라 인카르체레(San Nicola in Carcere)에서 머물면서, 운영 방식을 개혁해서 민중의 목소리에 더 집중하고, 억울한이들을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이후 교황 베네딕토14세(Benedictus PP. XIV, 1675~1758, 재위1740~1758)로부터 부제급 추기경에서 사제급 추기경으로 승품된다(1755년).
교황과 예수회
교황 베네딕토14세가 1758년 5월 통풍으로 선종하게 되면서, 콘클라베(교황 선거)로 추기경단이 꾸려지면서 각 파벌간 협상과 제안이 오가면서 격전이 벌어지다가 콘클라베가 열린지 2개월만인 1758년 7월에 레초니코 추기경이 44표중 31표를 얻으며 교황으로 선출되며, 248대 교황 클레멘스13세로 등극하게 된다. 자기를 추기경으로 승품시켰던 클레멘스12세를 기리기 위해 클레멘스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된다.
11년간의 교황 재위기간동안 제일 큰 문제는 프랑스 내 예수회 억압문제였다. 이들은 프랑스 계몽주의 세력으로부터 억압을 당했는데 1761년 예수회추방 캠페인을 시작하고, 1764년 루이15세(Louis XV, 1710~1774, 재위1715~1774)의 왕명으로 추방당하게 된다. 이후 프랑스 뿐만아니라 포르투갈등에서도 억압을 당하면서 심지어 추방까지 시키며 교황 사절대신을 다시돌려보내기까지 한다.
이러한 행태에 포르투갈 왕 주제1세(Jose Ier, 1714~1777, 재위1750~1777)의 개혁장관 폼발 후작(Marques de Pombal, 1699~1782)이 말하기를, 예수회가 남아메리카에서 그들만의 독립된 왕국을 건설하고 원주민을 핍박하고 그들의 터전으로투터 내쫓는 탐욕적인 행위를 했다고 주장하면서(당시엔 감히 할말이 없었다) 예수회의 이미지에 큰 타격이 생기고 만 것이다. 이러한 예수회 행태를 유럽 내 국가 왕족과 귀족들이 교황에게 공식적으로 이들을 제재조치 취해달라고 압박하지만 클레멘스13세는 예수회를 감싸면서 왕족과 귀족들의 신임이 떨어지는 효과를 낳게 된다.
선종
프랑스는 1769년, 예수회를 지키고자하는 클레멘스13세에 대항하며 교황령 베네벤토, 폰테코르보를 점령하기에 이르며 예수회들을 더욱 진압하기에 이르며, 서유럽국가들과의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에 노출될 수도 있다는 공포감으로 궁지에 몰린 클레멘스13세는 이 사태를 해결할 길을 마련하기위해 회의를 소집하지만, 극도의 스트레스로인한 건강악화로 문제를 해결하지도 못하고 회의가 열리기 하루 전날에 뇌졸중으로 선종해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