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상현, 1551~1592
출생
1551년(명종6년) 조선 전라도 정읍현(현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에서 아버지 송복흥(1527~1594)과 어머니 안동 김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배경
1576년(선조9년)문과로 급제한 송상현은 내직과 외직 두루 거쳐 1584년(선조17년) 명나라에 종계변무사 사신으로 다녀오기까지 한다. 1591년(선조24년)당상관으로 승진하고 경상도 동래 부사로 임명되기에 이른다. 동래 부사에 부임한지 겨우 1년이 지난 시점인 1592년 5월 23일, 왜1군 선봉장 고니시 유키나가(1558~1600)의 1군 선봉대가 부산 앞바다에 나타나면서 임진왜란이 발발한다. 임진왜란(1592~1598)이 발발한지 이틀만에 부산진과 다대진이 함락당하고, 왜군들이 동래성으로 쳐들어오자 동래 부사 송상현이 왜군을 상대로 끝까지 막아내고자 버티지만 병력의 차이와 화력의 차이로 인해 2시간만에 동래성이 함락된다. 성이 함락되기 전 송상현은 관복을 차려입고 한양(북쪽)쪽 방향으로 절을 올리고 동래성 성문 누각에 단정히 앉아있은채로 왜군에게 살해당한다. 이미 이전에 사신으로 왕래하면서 안면을 텄던 고니시 유키나가가 송상현을 살해한 자신의 부하를 처형시키고 또한 안면이 있던 쓰시마 번주 소 요시토시(고니시 유키나가의 사위, 1568~1615)가 송상현을 동래 성 동문 밖에 장사 지내 주었다고 한다.
문관 출신임
송상현을 무관으로 알고있는 사람들이 간혹 있는데, 송상현은 1570년(선조3년)생원, 진사시에 합격하고 1576년(선조9년)별시 문과 병과로 급제한 문관이다. 문과 급제 이후 정9품 정자, 정8품 저작, 정7품 박사, 정6품 기사관, 정5품 지평, 정랑등을 역임하고 1584년(선조17년)명나라에 종계변무사 사신으로 다녀오기도 한다. 1591년(선조24년) 당상관(정3품 상계 통정대부)에 오르면서 동래 부사에 임명된다. 동래 부사에 임명된 시점엔 부산포쪽엔 왜국이 조선을 침략할 거라는 소문에 동요하는 민심을 잡기위해 동래성 방비를 철저히 하고 나름 잘 다스렸다고 전해진다.
임진왜란
I. 부산진 전투 : 정발
1592년 5월 23일 왜 태합 도요토미 히데요시(풍신수길, 1537~1598, 관백재위1585~1592, 태합재위1587~1598)의 명으로 조선으로 쳐들어온 왜1군 선봉장 고니시 유키나가(1558~1600)가 부산 앞바다에 나타났다. 최초로 이들을 발견한 장수는 부산진을 지키던 첨사 정발(1553~1592)이였는데, 정발은 당시에 절영도(현 부산광역시 영도구)에서 사냥훈련을 진행게끔 하고있었는데 쇄견선(조공사신)이라 여겼던 왜 수군이 공격을 퍼붓게 되자 바로 부산진으로 복귀하여 전투준비를 한다. 그러나 2만에 가까운 병력을 상대하기에는 너무 적은 800의 병력으로 최선을 다해서 막아보지만 정발은 전투도중 왜군의 총탄을 맞고 전사하고 부산진은 함락된다.
II. 다대포 전투 : 윤흥신
부산진이 함락되고 경상좌수사 박홍(1534~1593)은 성을 버리고 도망쳐버리는 만행을 저지르고 왜군은 다대포진앞에까지 다다른다. 다대포진을 지키던 첨사 윤흥신(1540~1592)은 수백의 병력으로 2만에 달하는 고니시 유키나가(1558~1600)의 군대를 죽음을 각오하고 끝까지 막아내면서 임진왜란이 발발한 최초로 소규모 승리를 거둔다. 그러나 5월 25일, 대병력을 막고자 끝까지 싸우나 중과부적으로 다대포성이 함락되고 윤흥신은 동생과 함께 순절하기에 이른다.
III. 동래성 전투 : 송상현
부산진과 다대진이 왜군의 수중에 떨어지고 왜1군 선봉장 고니시 유키나가는 동래성을 향해 진격하는데, 송상현은 이미 왜군이 쳐들어올 것을 대비하여 동래성 주변에 방어시설 설치, 나무를심어 시야를 가리는등 만반의 준비를 거친다. 왜1군 고니시 유키나가의 선봉 부대는 부대에 동래성을 포위하게끔 하라는 명을 내리고 동래 부사 송상현에게 전령을 보내 무리한 전투를 피하기위한 말을 전달하는데, 송상현은 이에 회답한다.
각자의 말 | |
고니시 유키나가 | 조선군과 협상을위해 싸우겠다면 싸울 것이고, 싸우지 않고자 한다면 길을 빌려달라. |
송상현 | 싸워 죽기는 쉽지만, 길을 빌려주기는 어렵다. |
그렇게 송상현은 길을 빌려줄 수 없다고 회답하고 고니시는 동래성을 공격하기에 이른다. 송상현은 휘하 병력 1천여명과 민간인 3~4천여명과 함께 왜의 대병을 막고자 노력하지만 2만에 달하는 병력을 막기엔 무리였고 동래성 동문이 무너지면서 동래성이 뚫리면서 송상현은 관복으로 갈아입고 북쪽 수도 한양에 있는 선조(1552~1608, 재위1567~1608)를 향해 절을 올리고 앉아있다가 적 왜병의 칼에 맞고 전사한다. 이미 사신 시절부터 송상현과 안면이 터져있던 고니시 유키나가와 소 요시토시는 송상현이 부하의 칼에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부하를 그자리에서 처형시키고 장사를 치뤄주었다고 한다.
동래성 전투 이후 상황
동래성 함락 이후 부산쪽을 침입 교두보로 삼은 왜군은 후속 부대들이 속속이 도착하면서 북진하면서 성을 함락시킨다.
'고위급 귀족 & 관리 > 조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운 (0) | 2025.04.04 |
---|---|
211대 영의정 심환지 (0) | 2025.04.02 |
부산진첨사 정발 (0) | 2025.03.29 |
98대 영의정 기자헌 (0) | 2025.03.15 |
정기룡 (0) | 2025.03.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