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군주, 고위 귀족/Valois, 발루아

샤를 5세

Mintaka5 2024. 5. 6.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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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rles V le sage (1338~1380, 재위1364~1380)

출생배경

1338년 1월 21일 일드프랑스 뱅센(Île-de-France Vincennes, 파리동부)에서 장 2세(Jean II, 1319~1364)의 수많은 아들들중 첫째 아들로 태어남. 프랑스 발루아 왕조(royaume de valois, 1328~1589)의 3번째 왕임.

태어날때부터 100년전쟁(1337~1453)이 시작되었는데, 이때는 할아버지 필리프6세(Philippe VI, 1293~1350)의 통치기간이고 샤를5세가 도팽(왕태자)에 오르기도 전인 1346년 칼레지방에서 벌어진 100년전쟁중 크레시 전투에서 4만명 사상이라는 대패에도 모자라, 1356년 푸아티에전투에서 흑태자 에드워드(1330~1376)에게 또 대패를 하는거에 모자라, 장2세와 샤를5세의 동생 부르고뉴 공작 필리프(Philippe le hardi, 1342~1404)가 영국에 포로로 끌려가게되어버린다..! 

혼란속 섭정

순식간에 국왕직 공석이라는 엄청난 사태에, 당시 도팽이였던 샤를5세가 섭정(le régent)이 됨. 섭정기동안에 어지러워진 국내 정치상황에 폭동까지 발생하고 여러모로 샤를에게는 고통의시간이였을듯,,

일방적으로 약탈당한 프랑스측에서 휴전을 제안하게 되는데, 9년간의 휴전조건을 건다.. 이과정에서 1360년에 장2세가 다시 프랑스로 돌아오는 조건으로, 300만 크라운(이것도 400만에서 줄여준 것.,.)이라는 어마무시한 몸값을 요구.

이후 장2세가 영국에서 사망하고(1364년), 샤를5세가 프랑스의 군주로서 등극하게되는데, 이전의 큰 전투들을 눈으로보고 심지어 군주로서 직접 전투에 뛰어들어 포로로까지 잡혀 국가가 순식간에 비상사태가 되었던 걸 직접 배웠던 것일까, 군사개편이 필요하다라는 걸 느끼고, 뒤 게클랭(1320~1380) 같은 유능한 지휘관들과 남동생들(장 드 베리, 1340~1416등등)에게 군권을 주어 백년전쟁에 대한 일을 맡기고, 내치에 신경을 썼던 흔적이 보인다.

프랑스 국민들에게 현왕이라고 불리는 왕으로서, 백년전쟁당시 전시상황에도 내치에 힘을 쓰며 동시에 왕권강화라는 카드까지 들며, 고급 인력을 등용하고(사람보는 눈이 탁월했던듯..?) 특히 외교부분에 있어서는 당시 유럽 군주들 중 으뜸이 아니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비상했다고 생각이 든다.

이후 1380년 갑자기 급사를 하게되는데, 심혈관쪽 질환이 아닐까 라는 결과가 있다고 하는데.. 아들인 샤를 6세(Charles le fou, 1368~1422)에게 사후 왕위가 이어져가지만 샤를6세의 별칭 광인왕 처럼 재위초기에는 나름 잘 통치를 이어가다가 중반기 무렵부터 정신분열증에 시달리게 되어 쇠퇴기간을 거치는데...

이 이후는 샤를6세 편에서 다루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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