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급 귀족 & 관리/조선

정기룡

Mintaka5 2025. 3. 14.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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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룡, 1562~1622

 

 

출생

1562년 경상도 곤양현 금양면 중평리(현재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중평리)에서 아버지 정호(1550~1595)와 분성 김씨(김의손의 딸)사이에서 태어남. 초명은 무수. 

 

배경

임진왜란(1592~1598)당시 병마절도사, 삼도수군통제사를 역임했던 무신으로 1580년(선조13년)향시에 합격후 1586년(선조19년) 무과에 급제한 뒤에 선조(1552~1608, 재위1567~1608)의 명에 따라 기룡으로 개명하고 1590년(선조23년)당시 명장으로 이름이 높았던 신립(1546~1592)의 동생인 경상우도 병마절도사 신할(1548~1592)의 휘하에 들어가서 복무한다. 

 

 

관리로

1562년(명종17년) 경상도 하동에서 태어나 18세때인 1580년(선조13년) 경상도 고성에서 향시에 합격하고 1586년(선조19년) 별시 무과 병과로 급제하면서 조정에 출사하게 되며 당시 선조(1552~1608, 재위1567~1608)의 명에 따라이름을 무수에서 기룡으로 개명하게 된다.  이후 신립(1546~1592)의 동생인 경상우도 병마절도사 신할(1548~1592)의 휘하에 들어가 복무하게 된다. 1592년 임진왜란이 터지기 전까지 종8품 훈련원 봉사직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임진왜란

I. 용맹

1592년 5월, 수백여척에 달하는 왜적이 부산 해안에 당도하면서 임진왜란이 발발하게 된다. 정기룡은 임진왜란 발발 당시 경상우도 방어사 조경(1541~1609)휘하에 군관으로 근무하면서 왜적들을 막게되는 임무를 맡게 된다. 방어사 조경은 임진왜란 초창기 모친상을 당하고 50대중반의 나이로 고향에 돌아가고자 했지만 도원수 권율(1537~1599)의 부탁으로 행주 대첩에까지 출정해 대승을 거두게 된다. 

왜란 초기 수십명에 불과하던 조경의 휘하에서 경상도 김산 추풍역(현재 경북 김천시)부근에서 길목을 지키지만 병력숫자에서나 화력에서나 상대가 되지않아 대패를 하고 경상감사 김수(1547~1615)의 휘하로 참여하여 공을 세우지만 경기도 광교산에서 왜 육군 와키자카 야스하루(1554~1626)의 휘하 수비대 수백명의 기습공격을 받아패배하고 간신히 후퇴한다. 정기룡은 김산(김천)전투, 광교산전투등으로 왜적의 머리를 3개이상 베어 그 공적이 인정되고(당시 2개를 베면 6품에서임, 3개를 베면 정3품 상계 당상관에 서임된다고 하였다)상관들이 이러한 정기룡을 인정하여 정기룡의 고향인 곤양(경남 하동)의 수성장으로 군수 이광악(1557~1608)을 대신해 임시로 임명케끔 하여 왜군의 호남진출을 막으라는명을 받는다.    

 

II. 김산 전투, 진주성 전투 참전

1592년 9월 김산 부상고개 전투에 참여하는데, 이 때 의병, 목사, 군수등과 연합하여 왜군들을 섬멸하는 전공을 세운다. 

  생몰년도 당시 직위
이우빈 ? ~ ? 김산군수
김시민 1554 ~ 1592 진주목사
김해 1534 ~ 1593 상주목사
한명윤 1542 ~ 1593 의병대장

 이 승리이후 왜군은 경상도 사천쪽으로 병력을 집결시키는데, 이는 당시 남해상의 수군 전라좌수사 이순신(1545~1598)이 한산도 대첩으로 왜군이 섬멸되면서 수로길이 막힘에 따라 육군을 통해 육로로 진주를 공격하여 호남의 곡창지대를 얻고자 함에 우선적으로 길목인 진주성을 공격하고자 한 것이다. 그렇게 진주성이 공격받을거란 소식에 당시 상주판관 정기룡은 진주성 전투에 참여하러 떠난다. 우선적으로 진주에 주둔하고자 살천창(현 경남 산청군)에 주둔했을 때 호남 의병장 최경회(1532~1593)의 의병부대 방어와 군량 창고를 지키는 임무등을 수행한다. 

  본관 생몰년도 당시 직위
김시민 안동 1554 ~ 1592 진주목사
김성일 의성 1538 ~ 1593 초유사
이광악 광주 1557 ~ 1608 곤양군수
유숭인 문화 1565 ~ 1592 경상우도 병마절도사
정득설 하동 ? ~ 1592 사천현감
정기룡 진주 1562 ~ 1622 상주판관
곽재우 현풍 1552 ~ 1617 의병장
최경회 해주 1532 ~ 1593
임계영 장흥 1528 ~ 1597

정기룡은 제1차 진주성 전투에서 승리한 후 초유사 김성일에 의해 여러 품계를 뛰어넘어 상주 가판관으로 승진하게 된다. 그렇게 상주의 여러 의병들과 연합해 왜적에 수중에 떨어졌던 상주성을 떠나 피난 중이던 상주목사 김해(1534~1593)와 상주성 탈환에 관한 논의 후 상주성 가는 길목에 노략질을 일삼던 왜적 300여명의 목을 베는등 큰 공적을 올린다. 

 

III. 상주목사

1592년 11월 23일, 야간을 틈타 정기룡은 화공을 써서 상주성을 기습공격해 수백에달하는 왜적의 목을 베고 상주성을 탈환하게 된다. 1달간의 왜적 동태를 살핀 뒤 안정이되면서 고향에 있던 어머니와 조카등 가족들을 상주로 이주시킨다. 1593년 1월, 상주 가판관으로 복무중이던 정기룡은 1592년 여름 왜적의 포로가 된 선조의 두 아들 임해군(1572~1609)과 순화군(1580~1607)을구하기위한 작전에도 투입되지만 실패한다. 

그러던 도중 1593년 1월 명나라가 조선으로 출진을 하게되면서 명군이 왜군을 압박하여 왜군들이 남하하기 시작하면서 상주성길목을 지나치던 왜군이 상주성을 공격하여 공방전을 치르던 도중 상주목사 김해가 전사한다. 1593년 5월 한명윤(1542~1593)이 상주목사로 부임하면서 정기룡도 상주 가판관에서 종5품 상주판관으로 승진하게 된다. 그러나 상주목사로 부임한지 1달만인 6월 한명윤이 상주 관아에서 사망한다. 그렇게 정기룡이 한명윤을 대신하여 상주 목사 대행이 되어 상주성을 지휘하게 된다. 이후로도 가목사 오운(1540~1617)이 상주목사로 8월에 임명되지만 병을얻어 사임하고 정기룡이 가목사로 승진하게 된다. 그렇게 여러 왜적 토벌과 명나라 원군과 왜적을 토벌하는것을 도승지 윤승훈(1549~1611)이 직접 목격하여 임금에게 고하니, 선조가 정기룡을 상주목사로 승진시키게 된다. 

이후로도 계속 상주목사로 머물면서 왜적소탕과 군민 안정, 상주성 정비등을 꾀하여 상주성을 안정시키는등 노력을 기울이지만, 1597년(선조30년) 도요토미 히데요시(풍신수길, 1537~1598, 관백재위1585~1592, 태합재위1587~1598)가 조선을재침공하게 되면서 당시 하삼도 체찰사 이원익(1547~1634)의 주관으로 성을 쌓고 방비케끔 하고 정기룡은 경상도 방어군 선봉장으로 임명되게 된다. 

 

IV. 정유재란

정기룡은 1597년 왜1군장수로 다대포(현 부산광역시 사하구 다대포)에 상륙한 가토 기요마사(가등청정, 1562~1611)가 상륙하면서 하삼도 체찰사 이원익에 의해 경상도 방어군 선봉장에 임명되었는데, 1597년 한해 가토 기요마사의 왜1군과 수많은 전투를 거듭해서 가을무렵 가토 기요마사의 군사와 충돌하여 수많은 왜적을 죽이고 백성들을 피신시키게끔 하는 전공을올려 경상우도 병마절도사에 임명되게 된다. 

이후 1597년 10월, 명나라의 출병으로 명군 36000명과 조선군 11000여명이 합해 총 47000명의 조-명 연합군이 구성되면서 가토 기요마사의 본진이 있던 울산 도산성을 공격하기로 하면서 정기룡도 휘하병사 1천여명을 이끌고 이 전투에 출전하여 공격을 열흘정도(1597.12.24~1598.01.03)맹렬히 퍼부어 왜군 6천여명의 사상자를 내지만 조-명 연합군도 4천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한다. 

정기룡은 울산 도산전투 이후 상주로 돌아와 상주성근방과 김산군(김천)등에서 왜적을 죽이는공적을 세우는등 유지하다가 1598년 12월 7년간의 긴 전쟁이 끝난다.

 

전쟁이후

정기룡은 7년간의 긴 임진왜란 이후 재차 왜군들이 침공할 것을 대비해 경계를 늦추지 말라는 차원에서 군대를 정비하고 무기등을 수선하는등 방비한다. 1604년(선조37년) 종2품 가의대부와 동시에 정2품 자헌대부에 승진되고 이듬해 1605년(선조38년) 선무원종공신 1등에 녹훈되는 영예를 얻는다.  

1608년 선조(1552~1608, 재위1567~1608)가 승하하고 광해군(1575~1641, 재위1608~1623)이 즉위한 후에 정1품 보국숭록대부로 초자되고 삼도수군통제사를 겸직하는 경상우도 수군절도사를 맡다가 1622년(광해군14년) 60세로 군 주둔지에서 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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