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급 귀족 & 관리/조선

남명 조식

Mintaka5 2024. 12. 17.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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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식, 1501~1572 

 

 

출생

1501년 조선 경상도 합천 삼가현(현 경남 합천군 삼가면)에서 아버지 조언형(1469~1526)과 어머니 인천 이씨(1476~1545)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남. 

 

배경

관직에 전혀 나아가지 않고 후학을 양성하는데 평생을 쏟은 대 학자. 학자로서 성리학, 천문학, 역학, 지리학, 군사학등에 다방면으로 비상한 재주를 가지고 있어서 그 재주를 탐낸 명종(1534~1567, 재위1545~1567), 선조(1552~1608, 재위1567~1608)등이 조식에게 관직을 제안하지만 거의 다 거절하고 후학을 양성하고 계속해서 학문연구에 매진한다.

아버지 조언형은 문과에 급제함으로서 한양의 부친의 집에서 생활하면서 학문을 닦아 그곳에서도 여러 인물들과 교제하고 사림의 대표적인물로서 퇴계 이황(1502~1571)과 함께 사림의 거두로서 독자적 학파를 이룩하게 된다. 

수많은 후학들을 배출하며 조식 사후 임진왜란때 혁혁한 공을 세운 후학들도 많이 배출되어 위기의 조선을 지키게 되는 든든한 방패막이 되게 되었다.

 

과거시험이 다가 아니제? 

어렸을 때부터 학문에 깊이 심취하여 빠져드는 습성이 있어 수많은 분야를 섭렴하고 그와 동시에 학문을 수양함에 따라 내면의 수양까지 게을리 하지 않는 자질까지 실천하면서까지 본인을 절제하였다고 한다. 1526년 아버지 조언형이 사망하기전까지 주로 한양에 거주하면서 과거시험을 준비하기도 했다.

1522년 생원, 진사시에 모두 합격하여 이후 문과 초시까지 합격했으나, 최종시험인 회시에서 떨어지고, 1526년 아버지 조언형이 사망하면서 고향 합천으로 돌아가 3년상을 마치고 경상도 의령에 도굴산(경남 의령 자굴산)에 들어가서 학문을 닦으며 독서하다가 김해 탄종에 있는 처가로 가서 장인의도움을 받아 산해정이라는 기 더욱 학문에 깊게 매진한다. 

1536년(중종30년) 어머니 인천 이씨의 권유로 과거에 다시 응시해보지만 떨어지자, 본격적으로 학문에 대한 깊이있는 연구를 지향하며 스스로를 다지기 시작한다. 이는 24세때인 1525년 성리학을 처음 접해보면서 원나라 시대 주자학파 대표 학자인 허형(1209~1281)이 말한 '모든 일은 낱낱이 살피어 물질을 쫓아갈 것은 아니다'라는데 크게 감명을 받은 시점부터 이 생각을 가지고있었다 한다.

 

 

더욱 수면 아래에 머무는 계기

1545년 훈구파 소윤 윤원형(1503~1565)이 을사사화를 일으키며 대윤 윤임(1487~1545)을 실각시킴과 동시에 대윤의 대부분이 사림파로 이루어져있던 만큼 크게 숙청된다. 조식의 가까운 지인들이 을사사화로 화를 입게 됨에 따라 더욱 관직에 덧없음을 느끼고 더욱더 관직으로부터 멀어지는 쪽으로 굳혀진다.

거기다가 어머니 인천 이씨(1476~1545)마저 1545년 을사사화 직후에 사망하면서 3년상을 치르게 된다. 3년상을 마치고 상복을 벗은 이후 김해 산해정을 정리하고 고향인 합천으로 돌아가서 계복당, 뇌룡사등을 짓고 강론을 하게 된다.

1555년(명종10년) 단성현감에 임명되지만 단성현감 사직소를 올려 사양한다. 내용이 하도 파격적이라서 당시에는 이야기가 많았다. 정중히 거절한 내용은 아니고 대충 의식의 흐름대로 이야기한다면, 생각은 해줘서 감사하긴한데 전하(명종)의 성의를 받기엔 아직 대비마마(문정왕후)의 입김과 더불어 대비마마의 남동생(윤원형)등이 한창 국정을 농단하고 있는데 어찌 제가 가서 똑같은 짓을 하라고 하시는겁니까..정도 단성현감 사직소를 간단하게 줄여 단성소로도 불린다. 

이와같이 파격적인 내용으로 문제점들을 콕 집어 딜을 넣으니.. 당연히 조정에서는 난리가 난다. 금상(명종)에게 불경한 언사로 질서를 어지럽혔으니 처벌을 해야한다고 주장하는자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야인으로서 지방에서 머무는 선비로 표현히 적절지 못하지만 우국충정만큼은 인정해줘야한다며 변호하여 살아남긴 한다.

이후에도 계속해서 출사를 거부하고 합천에서 지내면서 후학을 양성하며 학문을 연마하는데 시간을 보낸다.

 

 

제자

대표적으로 동서분당이 될 때 핵심인물이 되는 김효원(1542~1590), 김우옹(1540~1603), 정구(1543~1620), 정인홍(1536~1623), 곽재우(1552~1617)등이 조식의 문하에서 수학한 제자들이다. 

경상도 북부의 퇴계 이황(1502~1571)과도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학문적, 사회적 논란 해결책등을 교류하면서 지낸다. 1565년 윤원형(1503~1565)이 문정왕후 서거로 인하여 실각하여도 관직에 나가기를 거부하고 1567년 명종이 승하하고 선조(1552~1608, 재위1567~1608)가 즉위하였음에도 관직에 나가기를 거부한다.

 

사망

1572년(선조5년) 71세의 나이로 고향 합천에서 조용히 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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