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민, 1554~1592
출생
1554년 조선 충청도 목천현 백전촌(현 충남 천안시 병천면)에서 아버지 김충갑(1515~1575)과 어머니 창평 이씨 사이에서 6남 2녀중 3남으로 태어났다.
배경
조선 중기 임진왜란(1592~1598)에 참전한 무장으로,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게 되면서 왜군의 파죽지세로 선조(1552~1608, 재위1567~1608)마저 의주로 피난가고 왜군이 전라도지역 곡창지대를 확보하기 위해 3만여명의 대병력을 모아 교두보인 진주성을 공격하고자 할 때 김시민은 진주 목사로서 의병들과 합세하여 3천여명의 병력으로 일주일간 왜군과의 공방끝에 물리치는데 이것이 진주대첩(제1차 진주성 전투)이다. 진주 목사 김시민은 전투당시 총에 맞고 진주성 전투가 승리로끝난뒤에도 병상에 누워있다가 선조가 있는 방향인 북쪽으로 절을 하고 회복이 되지않아 며칠만에 전사한다.
초년
아버지 김충갑(1515~1575)은 1545년(명종원년)당시 을사사화와 1547년(명종2년) 양재역 벽서사건에 연루되어 삭탈관직 당하고 충청도 청주지역으로 유배되면서 20년간의 유배생활이 한창일 때 김시민이 1554년 태어난다. 어린 김시민은 총명하고 병정놀이를 즐겨하고 대장을 자처했던 아이라고 전해진다. 대장답게 말뿐만이아닌 행동으로 보여주는 모습으로 후일의 기질은 어릴때부터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관직
1578년(선조11년) 무과에 급제하여 군기시에 들어가게 되고, 1583년(선조16년) 니탕개의난이 일어나면서 황해도순찰사 정언신(1527~1591)의 부장장수로서 토벌대에 합류해 여진 국경지역으로 배치되게 된다. 이곳에 배치되고 니탕개군을 방원보전투(1583)에서 크게 격파하게 된다. 이 때 김시민은 다른 정언신의 부하장수로서 함께 싸웠던 장수들은 다음과 같다.
| 본관 | 생몰년도 | 직위 | |
| 이순신 | 덕수 | 1545 ~ 1598 | 삼도수군통제사 |
| 이억기 | 전주* | 1561 ~ 1597 | 전라우도 수군절도사 |
| 신립 | 평산 | 1546 ~ 1592 | 삼도 도순변사 |
*선조(1552~1608, 재위1567~1608)의 14촌
이듬해 1584년(선조17년), 대과에 해당하는 별시 무과에 을과3위로 급제하면서 종6품 훈련원 주부에 임명되고, 이전의 니탕개의난을 효과적으로 소탕한 공으로 종5품에 해당하는 군기시 판관에 임명된다.
임진왜란 이전
1591년(선조24년), 자신의 상관이였던 동인의 우의정 정언신과 서인의 조헌(1544~1592)등의 천거로 진주 판관에 임명된다. 당시 양사대간, 동인, 서인할 것 없이 공명정대한 업무처리와 솔선수범함에 백성들의 삶을 안정시켰다는 평을 받았다.
임진왜란
I. 초기의 혼란
1592년 4월, 임진왜란이 발발하여 부산포에 상륙한 왜군들이 파죽지세로 동래성을 함락시키고 보름도 안되어 수도 한양까지 진격해옴에 따라 선조(1552~1608, 재위1567~1608)가 북쪽으로 몽진을 떠나게 되고, 이 혼란스러운 시기에 진주목을 지키던 진주 목사 이경(1537~1592)은 조선군이 왜군에게 연일 패함을 목격하고 지리산으로 도망치게 되면서 이에 진주성내가 아주 혼란을 빚게 된다. 이에 초유사로 내려온 김성일(1538~1593)은 진주 판관 김시민에게 임시로 진주 목사로 임명하여 김시민은 진주성내 백성들을 독려해 성을 보수하고 왜군의 침입에 대비한 군사훈련으로 체계를 갖추면서 후일에 올 전투를 대비하게 된다.
II. 진주성 전투
1592년 가을, 왜 수장 풍신수길(도요토미 히데요시, 1537~1598, 관백재위1585~1592, 태합재위1587~1598)은 남도(전라도, 경상도 진주 평야일대)를 장악할 교두보이자 본거지로서 진주성 공략을 명령하게 되면서 왜군의 대병력이 경남 사천일대에 집합하게 된다. 3만에 이르는 왜군은 1592년 11월 본격적으로 진주성을 포위하기 시작하고 김시민은 이에 3천여명의 군대와 백성, 진주성으로 집결한 의병들과 합하여 결사항전을 준비하게 되는데, 왜군 후방에도 의병장들이 의병들을 이끌고 포진하며 왜군들을 견제한다. 아래 표는 진주성 전투에 참여한 의병장 목록이다.
| 생몰년도 | 직위 | |
| 곽재우 | 1552 ~ 1617 | 병마절도사 |
| 심대승 | 1556 ~ 1606 | 군자감정 |
| 윤탁 | 1554 ~ 1593 | 훈련원부정 |
| 이달 | 1561 ~ 1618 | 동지중추부사 |
| 임계영 | 1528 ~ 1597 | 진보현감 |
| 장응기 | 1556 ~ 1630 | 창녕현감 |
| 정언충 | 1554 ~ 1615 | 무겸선전관 |
| 최강 | 1559 ~ 1614 | 충청도 수군절도사 |
| 최경회 | 1532 ~ 1593 | 경상우병사, 2차 진주성전투에서 전사 |
그렇게 양측 군대가 팽팽하게 긴장상태를 유지하다가 왜군의 선제 공격으로 진주성 전투가 시작된다. 후방에서 왜군을 견제하던 의병들이 왜군의 후방을 기습공격하고 진주성에서도 이들을 엄호하기위한 사격을 통해 홍의장군 곽재우의 유격전까지 효과적으로 맞아떨어진 덕분에 왜군은 혼란에 빠지면서 조선군에 의해 대패한다.
전사
그러나 전투가 한창이던 때에 김시민이 왜군이 쏜 조총 총탄을 맞고 쓰러진다. 다음날 왜군이 퇴각함에 따라 조선군의 승리로 끝나지만 김시민은 치료에도 불구하고 1592년 11월 21일 진주성에서 전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