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급 귀족 & 관리/조선

28,40대 영의정 신숙주

Mintaka5 2024. 12. 7.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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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숙주, 1417~1475

  영의정 재임기간 주군
28대 영의정 1462 ~ 1466 세조(1417~1468, 재위1455~1468)
40대 영의정 1471 ~ 1475 성종(1457~1494, 재위1469~1494)

출처-위키피디아

출생

1417년(태종17)년 조선 전라도 나주군 노안면에서 아버지 신장(1382~1433)과 어머니 나주 정씨사이에서 태어남.

 

배경

조선 전기시대 대표적 학자, 세종(1397~1450, 재위1418~1450)대에 훈민정음 창제에도 공이 있는 인물. 동갑내기인 수양대군(미래의 세조, 1417~1468, 재위1455~1468)의 최측근이 되면서부터 1순위 공신으로서 오른팔로 활동하게 된다. 계유정난, 단종폐위사건에 직접 개입한 인물로서 한명회, 권람, 윤사로등과 함께 하였다. 

성삼문(1418~1456)과는 훈민정음 창제할 때 같이 연구하던 동지로서 상당히 친한 사이였지만, 신숙주가 위의 일련의 사건에 개입하게 되면서 원수지간이 된다. 그사건은 단종복위운동인데 신숙주는 문종의 유언을 받들어 단종을 보필하기위해 사육신과도 그 뜻을 받들지만 변절자가되어 수양대군쪽으로 가담한 것이다. 이에 성삼문은 단종복위운동에 직접 개입한 사육신(성삼문, 박팽년, 이개, 하위지, 유성원, 유응부)중 한명으로 1456년(세조1년)단종복위계획이 발각됨에 따라 체포되어 고문당하면서도  신숙주를 배신자라고 꾸짖는등 기개를 잃지 않는 모습을 보이다가 성삼문은 거열형을 당한다.

그렇게 신숙주는 계유정난이후인 1453년부터 승지를 거쳐 1455년 세조가 즉위함에 따라 공신1등에 책록되면서 승진이 빨라지면서 1462년 정1품 영의정에까지 오른다. 

 

관리

윤회(1380~1436)의 문인이였고 신숙주는 윤회의 손녀딸 무송 윤씨와 혼인하게 되면서 윤회의 손녀사위가 된다. 1438년(세종20년) 사마시(생원시, 진사시)에 합격해 생원, 진사가 되고 1439년 친시문과 을과로 급제하면서 관리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1441년 집현전 부수찬이 되면서 책벌레로 소문났던 어린시절부터 지속되면서 집현전에서도 자청해 숙직을 맡으면서 희귀한 서책들을 많이 읽고 연구했다. 책에 파뭍혀 지낼정도로 책벌레라는 소문이 세종에게까지 알려지면서 한날 책을 읽다 잠든 신숙주를 세종이 발견하고는 자신의 용포를 덮어줬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깊이 감동했다고 한다.

 

훈민정음

집현전에서 만난 동지 성삼문(1418~1456), 박팽년(1417~1456), 정인지(1396~1478)등과 세종의 명을 받아 한글 개발 연구에 착수해 마침 세종의 명으로 요동에 가게 되는데, 이는 명나라 한림학 황찬(?~?)이 죄를 지어 요동에 귀양을 와있었던 것이였다. 그런 황찬을 만나 언어에 대한 지식을 얻으려고 13번이나 조선과 요동을 왔다갔다하면서 정보를 얻게 된다.  이후 1446년 9월 훈민정음해례본 편찬이 완료되어 반포됨에 따라 그 공을 인정받는다. 

또한 신숙주는 다른나라의 국어에도 능통했다(중국어, 일본어, 몽골어, 여진어, 유구어등을 구사할 수 있다고 전해진다). 괜히 집현전내에서도 뛰어났던 게 아니였던 것..

 

몽유도원도

1447년(세종29년) 서예가이기도 한 세종의3남 안평대군 이용(1418~1453)이 무릉도원의 꿈을 꾸어 화가인 안견(?~?)에게 이를 설명해 3일에 걸쳐 완성된 그림이 몽유도원도인데, 이 그림의 양쪽에 안평대군의 제서와 시1수를 포함해 신숙주를 포함한20여명의 찬문이 친필로 쓰여져있다. 

  생몰년도 직위, 비고   생몰년도 직위, 비고
신숙주 1417 ~ 1475 영의정 이적 1375 ~ 1450 공조참판
이개 1417 ~ 1456 사육신 최항 1409 ~ 1474 영의정
하연 1376 ~ 1453 영의정 박팽년 1417 ~ 1456 형조참판, 사육신
송처관 1410 ~ 1477 이조참의 윤자운 1416 ~ 1478 우의정
김담 1416 ~ 1464 중추원사, 천문학자 이예 1419 ~ 1480 형조판서
고득종 1388 ~ 1452 한성부판윤 이현로 ? ~ 1453 승문원교리, 계유정난 때 암살
강석덕 1395 ~ 1459 대사헌 서거정 1420 ~ 1488 좌찬성
정인지 1396 ~ 1478 영의정 성삼문 1418 ~ 1456 예조참의, 사육신
박연 1378 ~ 1458 대제학, 음악가 김수온 1410 ~ 1481 호조판서
김종서 1383 ~ 1453 좌의정, 계유정난때 암살 만우 1357 ~ ? 승려
최수 1377 ~ ? 성균관 사예      

당해에 신숙주는 집현전 부응교로서 문과 중시(문, 무과에 응시해 급제했지만 아직 관직에 나가지 못한 사람또는 급제하여 관직에 나갔어도 당화관인 관리들을 대상으로 치른 시험)에 응시해 4등으로 합격하게 되어 집현전 응교에 승진 임명되었다. 이후 세종말년에 병이 깊어졌을 때 집현전 학사들을 불러 어린 세손(미래의 단종)을 부탁한다고 말하고 승하한다. 이 때 신숙주를 포함해 성삼문, 박팽년등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수양대군

신숙주는 1451년 새로운 인연들을 만나게 되는데 다음과 같다.

  본관 생몰년도
한명회 청주 1415 ~ 1487
권람 안동 1416 ~ 1465
수양대군 이유 전주 1417 ~ 1468, 재위1455~1468

수양대군 이유(이름임)는 세종의 차남이자 문종(1414~1452, 재위1450~1452)의 동생이였는데 1452년 문종이 승하하여 문종의 아들 단종(1441~1457, 재위1452~1455)이 즉위하게 되는데,  이전부터 철저히 자신의 마음을 감추며 아래자세로 해오던 수양대군이 단종이 즉위한 뒤 본격적으로 거사를 준비하게 되는데 이 때 신숙주도 한명회와 권람의 추천으로 수양대군에게 소개되어 신숙주의 재능을 알아본 수양대군이 신숙주와 거사를 도모할 정도로 가까워진다.

I. 계유정난

1453년 수양대군 세력이 거사를 계획할 때 신숙주역시 참여해 단종을 대신 보필하던 3정승 황보인, 정, 김종서등을 제거하는데 참여해 이전에 함께하던 집현전학사들까지 포섭해 3정승을 모두 제거하는데 성공한다. 이것이 계유정난이다. 이로 인해 사실상 허수아비 군주가 된 단종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계유정난 당시 나이 불과12세..).

그렇게 계유정난 이후 완전히 수양대군의 오른팔이 되면서 단종의 양위를 주도하고, 세조를 즉위시키느네 1등공신이 된 신숙주는 사육신들로부터 척결 1순위로 지정되게 된다. 어쨌든 계유정난 성공 후 신숙주는 수충협책정난공신 1등에 책록되어 정3품 승정원 도승지에 임명되게 되면서 당상관이 된다. 

II. 사육신의 난

신숙주는 집현전에 있을 때부터 친했던 성삼문등에게 세조 3부자() 제거 거사에 동참할 것을 요청받는데 이미 세조의 측근이 된 신숙주는 이를 거절하고 이 사실을 고변하지 않았는데, 정창손(1402~1487)의 사위인 김질(1422~1478)이 이를 폭로하면서 사육신들이 단종 복위 운동을 펼치려는 것이 알려지게 된다. 근데 이를 신숙주가 고변한 것처럼 잘못 소문이 퍼지는 바람에 하늘이 원망스러울 정도로 욕을 먹는다.

이후 사육신들은 1456년 처형된다. 이후 신숙주는 단종을 노산군으로 강등시키는데 주역이 된다.

 

세조 통치 시기

세조가 1455년 즉위한 이후 1456년 북쪽변경에 여진족이, 남부해안을 약탈하던 왜구들이 점점 그 행태가 심각해지면서 강경한 퇴치를 해야한다고 세조에게 건의하면서 직접 출정하여 물리칠 수 있게끔 해달라고 세조에게 주청하여 세조가 이를 윤허해 신숙주는 오늘날의 국방부장관격에 해당하는 정2품 병조판서가 된다. 이후 우찬성, 좌찬성, 우의정, 좌의정에 이르다가 1462년 대신들 중 으뜸인 영의정에 오르게 된다. 

 

성종 통치 시기

1468년 세조가 승하하고 즉위한 예종(1450~1469, 재위1468~1469)이 1년만에 승하해버리면서 성종(1457~1494, 재위1469~1494)이 즉위하는데 신숙주는 성종 재위기에도 영의정에 임명되지만 고령과 병을 이유로 사직을 청하지만 윤허받지 못하고 [세조실록], [예종실록]편찬에 참여하게 된다. 

세조때부터 시작한 동국통감(고조선~고려말기까지의 역사서, 총56권 28책),  국조오례의(조선의 국가 의례 전반 기준서)등을 완성시킨다. 

 

사망

1475년 58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능력은 탁월했지만 단종과 사육신, 생육신들을 받드는 대신들로부터는 비난, 비판의 대상이 되어 현재까지도 평이 갈리는 인물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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