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급 귀족 & 관리/조선

좌의정 맹사성

Mintaka5 2024. 12. 6.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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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사성, 1360~1438

 

 

출생

1360년(공민왕9년) 고려 양광도 온양(현 충남 아산시)에서 아버지 수문전제학 맹희도(?~?)와 어머니 흥양 조씨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남. 최영의 손녀사위이기도 하다. 

 

배경

조선전기 청백리의 상징적인 인물로 여겨지는 인물. 권근(1352~1409)의 문하생이며 1386년 문과 을과 장원급제후 춘추관검열에 임명된 이후 1392년 조선이 건국되었을 때 잠시 물러나지만 이내 복귀해 내, 외직을 겸하면서 후배들을 지도한다. 1386년(우왕12년) 관리가 되어 1438년 78세로(당시로선 매우 장수) 사망할 때 까지 52년동안 고려의 군주3명(우왕, 창왕, 공양왕)과 조선의 군주4명(태조, 정종, 태종, 세종)을 모신다.

 

관리

1386년 문과 을과에 급제하면서 관리가 되지만 1392년 이성계(1335~1408, 재위1392~1398)가 새로운 국가 조선의 임금이 되며 고려를 멸망시킴에 따라 맹사성은 관직을 버렸지만, 주변 동료들이 다시 출사해 후배들을 지도해달라는 권고로 조선 조정에 출사하게 된다. 이성계는 맹사성이 최영(1316~1388)의 손녀사위인점에도 불구하고 재능이 뛰어났던 맹사성을 연좌제로 엮지 않고 오히려 등용시킴에 따라 수원판관직을 제수한다. 

1408년(태종8년) 2품 사헌부 대사헌에 제수되는데, 조준(1346~1405)의 아들이자 경정궁주(태종의 딸, 1387~1455)의 남편 겸좌군도총제 조대림(1387~1430)을 고신하는 일이 벌어진다. 이 배경은 조대림의 집에 출입하던 목인해(?~1408)가 아직 어리고 어리석은 조대림을 이용해 공을 세우기 위해 조대림을 꾀어서 군사를 움직이게 한 다음 이숙번()에게 보고하여 반역자로 고변한 것이였다. 이 과정에서 대사헌 맹사성은 태종(1367~1422, 재위1400~1418)에게 보고도 하지않고 고신을 가하게 했다가 태종과 왕족을 능멸했다는 죄목으로 맹사성, 박안신등이 옥에 갇히고 국문을 당하고 처형명령이 떨어지는데, 당시 영의정 하륜(1348~1416)과 좌의정 성석린(1338~1423), 영삼군사 조영무(1338~1414)등이 극형을 면하게 해달라고 하면서 태종은 맹사성을 유배보내게 한다. 

이후 1409년이 되어 세자인 양녕대군(1394~1462)이 태종에게 맹사성을 용서해달라고 하면서 태종이 승낙하여 유배에서 풀려난 이후 1411년 충주 목사로 관직에 돌아오게 된다. 이후 참판, 대제학, 관찰사, 판서, 좌찬성, 좌의정에 이르기까지 줄곧 승진을 거듭한다. 좌의정은 1431년 9월(세종13년)에 되었으며 이 때 영의정에 같은날 오른 사람이 황희정승으로 잘 알려져있는 황희(1363~1452)이다.   

 

예악

세종(1397~1450, 재위1418~1450)치세 유교적 예악 정치의 기초를 세우는 역할을 하는데, 예악은 예의와 음악을 합친 말로서 유교적 삶이 추구하는 최고의 경계라고 할 만큼 중요한 것이였다. 음악의 정비는 박연(1378~1458)을 중심으로 하여 한반도에 과거부터 이어져 내려오던 고유의 전통음악을 버리고 중원의 음악을 중심으로 발전시키고자 했는데, 맹사성은 전통음악을 버리기보다 중원의음악과 조화를 이루는 차원에서 정비를 시도하게 한다. 

 

온양온천

충청도 온양 출신인 맹사성은 온천치료의 효험을 이미 잘 알고 있었기에 이미 잦은 격무로 잔병치레가 많았던 세종에게 온천치료를 소개하여 효험을 보게 되자 세종이 이 지명을 온양으로 하게끔 지명을 하사하게 한다. 우리가 알고있는 세종대왕답게 백성들을 생각하는 군주 세종은 이 온천치료의 효험을 보고난 뒤 백성들도 이 효험을 봐야하지 않겠는가 하여 온천탕을만들고 치료를 할 수 있는 기초를 만드는게 어떻겠냐고 묻자 맹사성은 즉시 찬성해 시행되게 된다.

현재 1호선 온양온천역이 여기에서 유래된 것.

 

사망 

황희(1363~1452)가 사직상소를 계속올려도 사직을 윤허하지 않는다는 밈이 유행하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오히려 맹사성이 부모의 병간호를 위해 사직상소를 여러번 내놓았지만 결코 세종은 윤허하지 않았다고 한다. 

1438년 온양에서 칩거하던 맹사성은 78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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