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정현, 1355~1426
재임기간 | 군주 | |
14대 영의정 | 1416 ~ 1418 | 태종16년 ~ 세종원년 |
17대 영의정 | 1418 ~ 1424 | 세종원년~ 세종6년 |
출생
1355년(공민왕4년)에 아버지 류진(?~?)과 어머니 청주 정씨 사이에서 태어남.
배경
여말선초 정치인. 고려 말기 음서로 관직에 진출해있다가 조선 건국(1392)이후 다시 조선의 관리로서 직무를 다하고 정1품 영의정에까지 이르고 2회에 걸친 영의정직으로 태종~세종재위기간에 걸쳐 조선 건국 이후 수성기 시기에 중직을 맡아 조선의 문화, 정치의 기틀을 닦은 인물.
관직
고려말기엔 음서로 진출한다. 고려-몽골 전쟁당시 고종(1192~1259, 재위1213~1259), 원종(1219~1274, 재위1259~1274), 충렬왕(1235~1308, 재위1274~1298, 1298~1308)등 3명의 군주를 모시고 100년간 지속되던 무신정권(1170~1270)을 종식시킨 장본인 류경(1211~1289)의 4대손이다.
음서로 진출하여 사헌규정, 안렴사, 집의, 좌대언등을 역임하다가 1392년 조선이 건국된 이후 정몽주(1338~1392)일파로 몰려 귀양 갔다가 1393년(태조1년)에 류정현의 두 아들이 감시에 합격했다하여 관직을 다시 돌려받게 되면서 조선의 관리가 되는데 발령대기상태로 있다가 1394년(태조2년)에 상주 목사로 부임하면서 관직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직무
I. 양녕대군
태종(1367~1422, 재위1400~1418)의 장남이자 왕세자인 양녕대군 이제(1394~1462, 세자1404~1418)는 1404년 왕세자에 책봉된 이후 정치에 참여해 대리청정(1412~1413)을 하는등 중요업무를 수행하지만 즉흥적인 성격에 자유로운 언행과 행실등으로 인해 여러 정치적 분란요소를 만들어 태종과 마찰이 많았는데, 점점 쌓이고 쌓이다가 결국 대신들이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었는지, 당시 영의정이였던 류정현, 좌의정 박은(1370~1422)등 여러 핵심 고위대신들이 양녕대군 폐위상소를 올려 양녕대군이 폐위되고 태종의 3남인 충녕대군 이도(미래의 세종대왕)가 새로운 왕세자로 책봉되게 된다.
II. 심온
1418년 태종의 양위로 즉위한 세종(1397~1450, 재위1418~1450)은 즉위당시 병권만은 아버지 태종이 관할하며 사실상 반쪽짜리 왕이였는데, 세종의 장인인 영의정 심온(1375~1419)역시 태종의 눈에는 외척으로서 아들의 향후 권세에 차질을 빚을 인사라 생각하여 숙청하고자 마음먹고 명나라 사은사(세종의 즉위를 알리기위한)로 갔다 돌아오는 심온을 잡아들인다.
심온 숙청당시 이를 책임지고 류정현과 좌의정 박은이 책임지고 국문을 담당하는데 사실상 이미 태종의 결심에 따라 국문은 무의미했고 이후 1419년 심온이 사사된다. 세종의 장인을 죽인 장본인임에도 불구하고 류정현은 이후 계속 영의정에 재수되며 1424년 70세가 되었을 때 받는 궤장까지 하사받게 된다.
III. 대마도
1419년(세종1년), 고려말기부터 약탈을 일삼던 왜구들이 조선이 건국된 이후에도 그 약탈의 기세가 꺾이지 않자, 세종은 류정현을 영의정 겸 영돈녕부사로 임명해 대마도를 정벌하게끔 한다. '기해동정'으로도 불리는 이 정벌은 왜구에게 있어선 사실상 비상상황이였는데, 이전까지 계속해서 두들겨 맞아주고있던 고려, 조선정부가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아예 대마도 자체를 정벌하고자 군대를 보내 대마도주의 항복을 받아내는 결과를 이룩한다.
사망
이분도 역시 세종치세때 사직상소를 건의했다가 계속해서 윤허하지 않는다는 답을 받고 은퇴한지4일만에 사망한다. 1426년. 밈으로 나올수도 있지만 영의정 황희(1363~1452, 영의정재임1431~1449)에는 못미쳐서 그런지 크게 비중이 없는 듯 하다.
'고위급 귀족 & 관리 > 조선' 카테고리의 다른 글
118대 영의정 김자점 (0) | 2024.12.15 |
---|---|
44대 영의정 노사신 (0) | 2024.12.15 |
28,40대 영의정 신숙주 (0) | 2024.12.07 |
좌의정 맹사성 (0) | 2024.12.06 |
도원수 권율 (0) | 2024.12.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