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신, 1427~1498
재임기간 | 군주 | |
44대 영의정 | 1495. 04 ~ 1495. 10 | 연산군1년 |
출생
1427년(세종9년) 아버지 노물재(?~1446)와 어머니 청송 심씨(소헌왕후의 여동생)사이에서 셋째아들로 태어남.
배경
외가쪽으로는 세종대왕(1397~1450, 재위1418~1450)의 처조카, 영의정 심온(1375~1419)의 외손자(노사신의 어머니가 소헌왕후의 여동생)이기도 하고, 친가쪽으로는 할머니가 여흥 민씨로서 태종(1367~1422, 재위1400~1418)의 왕후 원경왕후(1365~1420)의 여동생. 이중 사돈인 셈으로 혈통으로 치면 친가와 외가모두 왕실과 연결된 셈.
훈구파의 원로격으로 단종대에 급제해 세조, 예종, 성종, 연산군대까지 줄곧 관직생활을 하며 연산군대에 정1품 영의정에 이른다.
관리
I. 급제
1451년(문종1년)에 생원시에 합격해 성균관에 들어가서 1453년(단종1년) 식년 문과 병과로 급제해서 집현전 박사로 관직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1453년 계유정난때엔 수양대군(미래의 세조)편에 서서 사실상 세조의 사람이 된다. 수양대군이 권력을 잡은 이후 세조로 즉위할 때 신숙주, 한명회, 최항등과 함께 정난공신이 된다.
II. 세조시기
1455년 세조(1417~1468, 재위1455~1468)가 즉위하고 비로소 학문적 능력을 인정받아 고속승진을 하게 되는데, 단편적 예시로 당하관에 해당하는 정5품 좌문학에서 당상관인 정3품 동부승지에 임명되는경우.. 이후 우부승지에서 도승지로 곧이어 바로 승진한다.
2년뒤인 1465년 종1품으로 승품, 호조 판서(정2품급)로 임명되었을 때 [경국대전]편찬을 맞게되면서 편찬관으로서의 작업을 시작하게 된다.
III. 성종시기
성종(1457~1494, 재위1469~1494)대에 들어서 학문능력이 더욱 빛을 발하는데, 경연장에서도, 성종에게 자주 간언을 올려 성종즉위초기 빈약했던 통치 기반을 안정화시키기위한 작업을 행하는데 노사신 그 자체가 당파를 떠나서 자주 사림파와 협력하면서 스스로 갈등을 조율하고 대립을 미연에 방지시켜 성종의 국정운영에 있어서도 상당히 안정적인 운영을 이끌게 된다.
비상시에서도 능력을 발휘하는데, 북방 여진족의 약탈이 심해지자 여진족을 토벌하는데 앞서고 남이의 옥(1468)을 효과적으로 마무리지어 익대공신3등에 오르게 된다.
이후 1492년(성종23년) 정1품 좌의정에 오르게 된다.
IV. 연산군시기
1494년 성종이 승하하고 연산군이 즉위함에 따라 산릉간심사에 임명되어 승하한 성종의 묘호, 시호, 릉 자리를 논할 때 핵심인사로서 정하게 된다. 1495년(연산군1년)에 정1품 영의정에 오르지만 고령(68세)으로 인해 사직상소를 올리지만 연산군이 이를 윤허하지 않고, 이후 계속 상소를 올려 1496년 모든 직위에서 물러나게 된다.
이후 연산군의 어머니 폐비 윤씨(1455~1482)의 묘호, 묘소등을 정할 때도 노사신이 관여를 하고 1498년(연산군4년)실록청을 개설해 [성종실록]편찬에도 힘을 보탠다. 그러나 이 때 문제가 된 김종직(1431~1492)의 [조의제문]으로인해 무오사화(1498)가 일어남에 따라 노사신이 추국장으로서 참여하는데, 다른 훈구파들과는 다르게 사건이 확대되지않고 최대한 사림의 의견을 경청하여 살리고자 변호하는데,
뜻과는 다르게 무오사화 발발 2개월만에 71세의 고령으로 사망한다.
'고위급 귀족 & 관리 > 조선' 카테고리의 다른 글
79대 영의정 노수신 (0) | 2024.12.16 |
---|---|
118대 영의정 김자점 (0) | 2024.12.15 |
14,17대 영의정 류정현 (0) | 2024.12.14 |
28,40대 영의정 신숙주 (0) | 2024.12.07 |
좌의정 맹사성 (0) | 2024.12.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