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사건/조선

을사사화, 정미사화

Mintaka5 2024. 10. 30.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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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사화

1545년(명종 원년)에 두 외척세력이였던 대윤 윤임(인종의 외척, 1487~1545)과 소윤 윤원형(명종의 외척, 1503~1565)의 대립으로 사림이였던 윤임의 패배로 사림 세력의 옥사가 일어나 대윤일파가 모두 숙청되면서 사실상 소윤이 정계를 휘잡게된 사건. 

 

대윤과 소윤

대윤은 윤임의 세력, 소윤은 윤원형의 세력을 뜻하는데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둘은 모두 왕실의 외척이자 파평윤씨로 같은 성씨였지만 서로 반목하는 사이가 된다.

  집안 계열 생몰년도 외척 기준 비고
윤임 파평 윤씨 대윤 1487 ~ 1545 윤임의 딸 장경왕후 윤씨가 인종의 어머니 을사사화(1545)로 유배지에서 사사
윤원형 소윤 1503 ~ 1565 윤원형의 누나인 문정왕후 윤씨가 명종의 어머니 1565년 영의정 재임중 문정왕후가 서거하면서 탄핵후 정난정과 자살

 

배경

조선 11대 임금 중종(1488~1544, 재위1506~1544)이 1544년 승하함에 따라 인종(1515~1545, 재위1544~1545)이 즉위하게 된다. 인종의 어머니는 중종의 왕비인 장경왕후 윤씨(윤임의 딸, 1491~1515)였는데 인종이 즉위한 후 윤임이 득세하면서 윤임을 필두로 한 사림이 대거 등용되지만, 즉위 8개월 만에 병으로 승하해버린다. 1545년 새로 즉위한 명종(1534~1567, 재위1545~1567)은 문정왕후(윤원형의 누나, 1501~1565)의 아들이였는데, 명종이 즉위하면서 당시 11세에 불과했던 명종을 대신해 문정왕후가 수렴청정을 하게 된다. 이때부터 윤원형을 필두로 한 소윤이 득세하게 된다. 

 

계책

I. 대윤

윤원형은 형 윤원로(1502~1547)와 함께 윤임일파를 제거하기위해 온갖 계책을 꾸미게 되는데.. 일단 조카인 경원대군(미래의 명종)을 세자 책봉을 꾀하면서 당시 세자였던 인종이 1544년 왕위에 오르게 되면서 윤임을 중심으로 사림 세력이 득세하게 된다. 

 

II. 너무 이른 승하

원래부터 몸이 좋지 않았던 인종이 재위8개월만에 승하해버림으로서 11세의 어린 경원대군이 명종(1534~1567, 재위1545~1567)으로 즉위하면서 어린 명종을 대신해 모후인 문정왕후가 수렴청정을 하게되면서 사실상 정권은 소윤이였던 윤원형에게로 넘어가버리는데, 대윤 일파는 이에 위기감을 느끼고 최대한 이들의 성장을 막기위해 윤원형의 형인 소윤의 윤원로를 유배보내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III. 을사사화

윤원형은 당시 예조참의로 있었는데, 형의 공백대신 소윤을 결집시키기 위해 측근과 첩인 정난정()까지 끼게 해서 정난정으로 하여금 문정왕후에게 대윤 일파가 역모(계림군과 봉성군을 왕위로 추대할 역모)를 꾀하고 있다고 무고하기에 이른다. 

이에 문정왕후의 지지를 얻은 윤원형 일파는 대윤 일파들에게 역모죄를 씌워 숙청을 단행하기에 이른다.

  성향 생몰년도 품계, 직위 비고
윤임 사림 1487 ~ 1545 정2품 형조판서 인종의 외할아버지, 장경왕후 윤씨의 아버지, 유배후 사사
류관 훈구 1484 ~ 1545 정1품 좌의정  충숙공
류인숙 사림 1485 ~ 1545 정2품 이조판서 유배후 사사
계림군 왕족 1502 ~ 1545 봉호 : 군 9대 성종의 형 월산대군의 손자, 윤임의 외조카 
이덕응 사림 ? ~ 1545 정7품 주서 윤임의 사위, 소윤의 꾐으로 장인어른 윤임을 고변함, 그러나 처형
이휘 ? ~ 1545 정6품 수찬
나숙 1501 ~ 1546 정3품 상계 부제학 유배 후 사사 나식의 형
나식 1498 ~ 1546 종9품 참봉 유배 후 사사 나숙의 아우
정희등 1506 ~ 1545 종9품 참봉 윤임, 류인숙의 처형 반대를 주장, 고문후 유배길에 사망
박광우 1495 ~ 1545 정5품 교리(홍문관) 고신(고문)후 유배길에 사망
곽순 1502 ~ 1545 종3품 사간(사간원) 처형
이중열 1518 ~ 1547 정5품 정랑(이조) 수찬 이휘를 변호하다가 파직, 유배후 사사
이문건 1494 ~ 1567 정5품 정랑 조카인 수찬 이휘 사망후 연루되어 23년간 유배후 사망

 

IV. 양재역벽서사건, 정미사화

1545년 윤임을 필두로 한 대윤이 몰락하고 윤원형의 소윤이 정권을 장악하고 난 2년뒤 1547년 한차례 큰 사건이 터지고 만다. 벽서의 옥(양재역벽서사건)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이 정치적 사건은 경기도 과천 양재역(현 서울특별시 강남구 양재동)에서 익명의 벽서에 '위로는 여주, 아래에는 간신 이기가 권력을 휘두르니 나라가 장차 망할 것'이라고 쓰여져 있는 것을 부제학 정언각(1498~1556)이 발견하고 명종에게 바친다.

이에 당시 실세 윤원형, 이기(1476~1552)등이 1545년 을사사화때 처벌이 미약했기때문에 이런일이 발생한 것이라고 주장하게 되면서 기존의 옥사를 더욱 확대시켜버린다. 확대되어 더욱 많은 사림이 희생되는 사화가 정미사화(1547)이다.

정미사화로 대윤일파는 완전히 숙청되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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