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급 귀족 & 관리/조선

우찬성 윤임(대윤)

Mintaka5 2024. 9. 18.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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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n Im, 1487~1545

 

 

 

출생

1487년 경기도 파주군에서 아버지 파원부원군 윤여필(1466~1555)과 순천부부인 박씨(장경왕후의 어머니, 1466~?)사이에서 태어남. 

 

배경

대윤의 영수이며, 인종의 어머니 장경왕후의 오빠. 인종이 즉위했을 때 외척으로서 권위를 누릴것처럼 보였으나, 인종이 병약해 즉위8개월만에 승하하고, 자신이 추천했던 문정왕후(1501~1565)의 아들 명종(1534~1567, 재위1545~1567)이 즉위하면서 윤원형(1509~1565)이 어린 명종을 대신해 누이 문정왕후의 수렴청정때 외척으로서 권력을 틀어잡은 뒤 윤임은 온갖 모함과 음모를 통해 대윤세력이 와해되고 윤임역시 유배길에 사사된다.

윤임은 대윤, 윤원형은 소윤으로 분류되는데, 윤임이 인종의 외척으로서 순위도 앞서고 윤원형보다 나이도 10여살더 많았기에 윤임측 대신들을 대윤이라고 불렀다.

 

중종반정

윤임은 1506년 여동생이 진성대군(중종)의 후궁으로서 종2품 숙의가 되면서부터 측근이되어 여러 벼슬을 거치다가 연산군의 폭정이 극에 달하게 되면서 1506년에 연산군을 몰아내는 중종반정에 가담을 하게 된다. 음서로서 관직에 올랐음.

  생몰년도 기타
박원종 1467~1510 훈구의 수장, 윤임의 외숙부
홍경주 ?~1521 훈구
성희안 1461~1513 사림
유순정 1459~1512 사림

중종반정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짐에 따라 연산군이 폐위되고, 중종의 왕비였던 단경왕후 신씨(1487~1557)가 아버지 신수근(1450~1506)이 폐위된 연산군의 처남이라는 이유로 왕비가 된지 1주일만에 폐위되어버리고 폐위된 단경왕후를 대신해 계비였던 자신의 누이 숙의 윤씨가 1507년 장경왕후로서 왕비가 된다. 

 

권력의 핵심 자리

윤임은 음서로 이미 관직에 오른상태였지만, 1512년 무과로 급제해서 제대로 관직에 진출하게되는 시점이 되어 여러 관직들을 오가게 된다. 

그러다가 1515년 여동생인 장경왕후(1491~1515)가 인종을 낳은지 얼마안있다가 산후병으로 승하해버린다. 왕후자리가 공석이되면서 다음 왕비가 책봉되게 되는데, 같은 윤씨로서 윤임과도 꽤 가까운 친척이였던 문정왕후 윤씨()가 새 왕비로서 자리를 차지한다. 

윤임이 세자(인종)를 보호할만한 인물로서 김안로(1481~1537)와 문정왕후 윤씨()를 추천해서 궁으로 불어들이게 되는데.. 이것이 미래의 자충수가 될줄은 본인도 몰랐을 것..

 

피곤하네..

어쨌든간에 조카가되는 세자가 잘 자라 훗날 왕위에 오르게 된다면 왕의 외척으로서 막강한 권력을 잡을 수 있을거란 계산이 윤임에게는 들어있었을 수 밖에 없었을 듯. 모든일에 앞서 세자를 우선보필하는 것이 윤임의 가장 중요한 임무였기에 필사적으로 케어와 동시에 보호를 한다.

자신이 추천하여 왕비가 된 문정왕후가 중종과 혼인하고 난 후 딸 3명만 낳다가 1534년 원자를 출산하면서 상황이 갑자기 바뀌게 된다. 당시엔 판의금부사였던 김안로(1481~1537)가 정권을 잡고있었는데, 문정왕후역시 윤임이 추천한 인물로서 같이 세자를 보호하고있었는데 원자 환(미래의 명종)를 낳고나서는 자신의 아들을 세자로 앉힐 생각을 가졌는지 세자(인종)를 점점 경계하는 상황으로 변함. 2명의 왕자모두 왕위계승의 정통성을 가지게 되면서 두 세력은 정적이 되어버리는데, 외척이 모두 같은 윤씨였고(인종-윤임, 명종-윤원형)윤임이 윤원형보다 나이가 10여년이 더 많았으므로 대윤, 윤원형이 소윤으로 불리게 되며 대립을 양상하게 된다.

이 상황에서 문정왕후는 윤임과 김안로 세력과 갈등이 점점 커지게되버리는데, 1537년 김안로가 문정왕후를 폐출하려다 실패하고 양사의 공격을 받아 유배되었다가 사사되어버린다. 소윤이였던 윤원형(1509~1565)은 이미 김안로에 의해 파직되어 유배되었던 신세였는데, 김안로가 1537년 이 사건으로 유배후 사사되면서 풀려나 복직하게 된다. 

 

조카가 왕위에 오른뒤

1544년 중종이 승하하면서 조카인 세자가 드디어 바라던데로 인종(1515~1545, 재위1544~1545)으로서 즉위하게 되면서 윤임에게도 권력의 정점에 있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알게되는 시기가 오게 됨. 그러나 인종은 병약해서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는 윤원형의 직감에, 인종의 이복동생인 경원대군 환(명종)에게 차기 국왕으로 추대하려고 하는 과정에서 윤임과 계속된 갈등을 이어나가게 된다. 

이과정에서 당시 대윤의 영수 송인수(1499~1547)가 윤원형과 윤원로(윤원형의 형, 1502~1547)을 탄핵해 다시 궁에서 쫒아내버린다. 

 

8개월만에?

그러나 병약했던 인종이 즉위한지 8개월만인 1545년 승하해버린다. 승하하기전에 자녀가 없었던 인종은 이복동생인 경원대군 환을 후계자로 지목하면서 경원대군이 1545년 명종(1534~1567, 재위1545~1567)으로 즉위하게 되는데, 즉위당시 명종의 나이가 11세에 불과했기에 너무어려 어머니 문정왕후(윤원형의 누나, 1501~1565)가 수렴청정을 하게되면서 윤원형이 외척으로서 정권을 장악하면서 큰 권력을 얻게 된다. 

그렇게 윤원형은 정권을 장악하자마자 대윤의 영수이자 정적이였던 윤임을 없애기위해 대윤측이 봉성군(1528~1547)을 옹립하려하는 역모를 꾸민다는 것을 문정왕후에게 고해바쳐 이들에게 역모죄를 씌워 모두 숙청시키기에 이른다. 

윤임과 대윤의 대신들은 이때 제거되는데 일단 윤임은 힘이 빠진상태로 있게되긴 하는데.. 이것이 끝이 아니니

 

최후

윤원형은 아예그냥 윤임을 보내버리려고 대윤이 계림군(1502~1545)을 옹립하려한다는 소문을 퍼뜨리고, 윤원형의 애첩이였던 정난정(1506~1565)이 문정왕후에게 고해바친 것. 이에 1545년 이기(1476~1552)의 탄핵으로 윤임은 유배를 명받고 유배가던길에 사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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