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군주(한국어, 프랑스어)/고려의 군주

33대 창왕

Mintaka5 2024. 9. 6.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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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g de Goryeo, 1380~1389, 재위1388~1389

 

 

출생

1380년 고려 개경에서 아버지 우왕(1365~1389, 재위1374~1388)과 어머니 근비 이씨(우왕의 1비, ?~?)사이에서 태어남. 본명은 왕창.

 

배경

1388년 위화도회군 사건 직후 아버지 우왕이 폐위되고 강화도로 추방되면서 이성계, 조민수, 이색의 추천으로 공민왕의4비인 정비 안씨(?~1428)에 의해 즉위하게 된다. 당시 나이는 8세. 신진사대부들에 의해 정국이 끌려다니면서 시달리다가, 아버지 우왕을 강화도에서 여흥(경기 여주시)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아버지와 자주 내통하여 아버지 우왕을 복위시키려는 계획에 가담한 사실이 신진사대부에 의해 걸리게 되면서 이후 폐위되어 아버지 우왕과 같이 처형당하는 비운의 군주다.

 

즉위 

이성계(1335~1408, 조선재위1392~1398)는 위화도 회군(1388)이후 사돈지간인 정창군 왕요(미래의 공양왕)를 옹립하려했지만, 조민수(1324~1391)와 이색(1328~1396), 이인임(1312~1388), 근비 이씨(창왕의 어머니, ?~?)등이 손잡고 떠오르는 권력인 이성계를 견제하려고 반대하고 우왕의 아들 왕창을 33대 창왕으로 옹립시킨다. 

그러나 창왕의 옹립 지지기반이였던 조민수와 이색은 각각 조준의 탄핵으로 인한 실각과 이성계 암살 미수 사건등으로 물러나게 되면서 지지기반을 모두 잃어버려 사실상 이성계파 세력들에게 끌려다닐 수 밖에 없었다.   

 

폐가입진론

가짜왕을 몰아내고 진짜왕을 세운다는 의미로, 창왕을 폐하고 공양왕을 옹립한 사건이기도 한이 폐가입진은 이성계 계열에서 우왕이 공민왕(1330~1374, 재위1351~1374)의 아들이 아니라 신돈(1328~1371)의 아들이기 때문에 가짜왕(창왕)을 폐하고 진짜왕(공양왕, 20대 신종의 7대손)을 세워야한다는 명분으로 시작된 것.

그러나 때마침 최영의 족당인 김저(?~1389)와 정득후(?~1389)가 우왕의 밀지를 받아 이성계를 살해하려했던 이성계 암살 미수 사건계획이 드러나면서, 이로인해 창왕은 1389년 폐위되면서 강화로 유배되고, 이 때 창왕을 옹립했던 자들은 유배, 파직을 당한다. 아래 표는 창왕을 옹립했던 자들의 목록.

  생몰년 직위 비고
이림 ?~1391 문하시 창왕의 외조부(근비 이씨의 아버지)
이귀생 ?~?   이림의 아들, 연좌제로 처벌
이색 1328~1396 판삼사 목은. 고려의 삼은 중 한명(목은, 포은, 도은)
이종학 1361~1392 동지공거 이색의 둘째 아들
이숭인 1347~1392 밀직제학 도은. 고려의 삼은 중 한명(목은, 포은, 도은)
하륜 1347~1416 영의정(조선) 이색의 문하, 이인임의 조카사
이분 ?~? 사재령 흥왕토적1등공
문달한 ?~1392 삼사우사 순평
권근 1352~1409 대사헌(조선)  

결국 이사건으로 이성계일파는 반대파를 제거하고 실권을 완전히 장악해버리는 계기가 되면서, 정창군 왕요가 34대 공양왕(1345~1394, 재위1389~1392)으로 즉위하게 된다. 

 

승하

1389년 12월 아버지 우왕은 강릉에서 참수당하고, 창왕은 강화에서 참수당하게 되면서 승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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