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군주(한국어, 프랑스어)/고려의 군주

34대 공양왕(고려 최후의 군주)

Mintaka5 2024. 9. 7.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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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ngyang de Goryeo, 1345~1394, 재위1389~1392

 

 

출생

1345년 아버지 정원부원군 왕균(?~?)과 어머니 국대비 왕씨(?~?)사이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왕요. 고려 20대 신종(1144~1204, 재위1197~1204)의7대손이다.

 

배경

고려의 34대 군주이자 고려 최후의 군주. 창왕(1380~1389, 재위1388~1389)이 폐가입진(가짜왕을 몰아내고 진짜왕을 세운)으로 폐위되고 이성계(태조, 1335~1408, 조선재위1392~1398) 세력에 의해 34대 군주로 옹립된 인물. 우왕 창왕과는 다르게 부계모계 혈통모두 고려 왕실 혈통이자 몽고혼혈이 아닌 순수 고려인이였기에 혈통에 있어서는 충분히 그 힘이 입증되었고, 더욱이 왕요의 형 정양군 왕우(?~1397)의 딸이 이성계의 아들 이방번(무안대군, 1381~1398)과 혼인하여 사돈관계가 되면서 이성계의 열렬한 추대를 받아 옹립된다. 

그러나 옹립이후 고려를 재건하려던 정몽주 파에 힘을 실어주며 고려왕실 재건을 같이 꿈꾸지만 이성계의 5남 이방원(미래의 태종, 1367~1422, 조선재위1400~1422)이 정몽주(포은, 1338~1392)를 선죽교에서 암살하면서 지지기반을 잃게 된공양왕은 이성계 일파에 끌려다니다가 1392년 이성계 일파에 의해 폐위되고,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고 태조로서 왕위가 교체되면서 고려가 475년의 역사를 뒤로한채 멸망하게 되고 유배되어 1394년 강원도 삼척에서 세자 왕석(정성군, ?~1394)과 함께 사사된다.   

 

즉위 배경

이성계가 1388년 위화도 회군을 일으키면서 최영을 실각시키고 이성계가 사실상 실세가 되면서 우왕, 창왕등을 폐위시키고, 창왕 재위당시 1389년 고려를 유지하려던 세력이 결집하려는 낌새를 알아차리고 창왕을 폐위시키고 다른 군주로 즉위시키려 하고자 한다. 이성계는 마침 사돈이였던 정창군 왕요(공양왕)가 눈에 들면서 군주로 옹립하기에 이른다. 그렇게 1389년 왕요는 고려34대 공양왕(1345~1394, 재위1389~1392)으로 즉위하게 된다.

 

공양왕의 고려지키기

I. 거 입들 잘 다물게 시키라이?

즉위 당시 이성계 일파들이 권력을 잡고 있어서 실권은없어서 사실상 허수아비 군주나 다름없었지만, 정몽주(포은, 1338~1392)나 이색(목은, 1328~1396) 같은 반 이성계파 인사들을 중용하여 이성계세력을 견제하고 고려를 지키고자 했다. 반 이성계파들을 도당에 나가게 함으로서 이성계 일파들의 공격을 막아내는 방패 역할을 하게끔 하여 시간을 벌고자 했다.

II. 천운인가...?

공양왕은 때마침 이성계가 황해도 해주에서 사냥을 하다 낙마로 인해 부상을 입어 자리에 눕게 되면서 도당의 주축이 부재상태가 되면서 아무런 힘을 쓸 수 없었던 이성계파를 정몽주는 정도전(1342~1398)을 탄핵시켜 투옥시키면서 이성계파를 끝까지 몰아세우지만,  이성계의 5남 이방원이 정몽주를 죽이기로 결심해 조영규(?~1395)를 시켜 선죽교(원래는 선지교, 정몽주가 죽은자리에서 대나무가 솟아올라 선죽교로 이름이 바뀜)에서 철퇴로 암살되게 되면서 공양왕은 지지기반을 잃게 된다. 

 

폐위

1392년 결국 공양왕은 이성계 일파에 의해 폐위가 되고 이성계(1335~1408, 재위1392~1398)가 새로운 국가의 임금이 되면서 고려왕조 475년이 역사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 그해 강원도 원주로 유배되고 바로 강원도 간성(고성)으로 옮겨지게되  공양군으로 강등.

 

고려 마지막 군주의 최후

I.이게 아닌데

1392년 이성계가 국호를 조선으로 바꾸고 초대 국왕이되어 1394년 수도를 개경에서 한양(서울)으로 옮기기로 한 상태에서 박위(?~1398)가 점쟁이에게 이성계의 사주를 보며 다른 개성 왕씨(고려 황족)들중에 괜찮은 자가 있는지 물어보았는데(실록출처) 이는 물어보기만해도 역모에 휘말리는 큰 사건이기 때문에 도당에서 박위의 탄핵건이 올라와 파직당하는 선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왕씨들이 학살되는 시발점이 되고 만다.   

II. 공양왕의 최후

1394년 강원도 삼척으로 유배지가 바뀌면서 옮겨지고, 그곳에서 왕세자인 왕석(?~1394)과 함께 사사되며 고려 왕조가 종료된다.

사후 묘호가 없다가, 조선3대 태종(이방원, 1367~1422, 조선재위1400~1418)에 의해 공양왕으로 추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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