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군주(한국어, 프랑스어)/고려의 군주

29대 충목왕

Mintaka5 2024. 9. 5.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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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ungmok de Goryeo, 1337~1348, 재위1344~1348

 

 

출생

1337년 아버지 충혜왕(1315~1344, 재위1330~1332, 1339~1343)과 어머니 덕녕공주(쿠빌라이의 고손녀, ?~1375)사이에서 태어남. 본명은 왕흔.

 

배경

고려 후반부 혼란이 가속화되는 시기로, 즉위전에 원나라에서 보내다가(볼모) 아버지 충혜왕의 막장의 끝으로 폐위당하면서 6살에 고려 왕위에 오른 인물이다. 사실상 나이가 너무 어려 어머니 덕녕공주(?~1375)가 섭정을 하였으니 재위기간동안의 업적은대부분 덕녕공주의 업적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 이다. 정치도감(1347~1349, 불법토지문제 해결을 위한 기관), 진제도감(1348~1381, 백성의 진휼을 위해 설치된 임시 기관)설치등으로 고려 내정을 혁신코자 했지만 병에걸려 11세의 나이로 승하한 군주이다. 

 

즉위

폭군 충혜왕이 여러 사고들을 치면서 1343년 원나라로 끌려가면서 폐위되고 유배가게되며 유배길 도중에 1344년 승하하자마자 왕위를 계승하게 된다. 위에 언급한 것 처럼 어머니 덕녕공주가 섭정으로서 정사를 맡게 된다. 남편 충혜왕이 저질렀던 만행, 기행들을 되롤리기위해 나름대로 권문세가들에게 빼앗겼던 땅을 도로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고, 녹과전(녹봉을 대신해 나누어줬던 토지)악습을 철폐시키고 정상화시킨다. 

아버지 충혜왕이 개인 사리사욕과 취미생활에 쓰일 돈을 마련하기 위해설치한 보흥고(충혜왕ATM기)를 폐지하고 토지역시 장기간동안 부패한 토지문제등을 다시 복구하고자 하는데, 권문세족들의 폐단에 못이긴 백성들이 이들의 친위세력이 되면서 악순환이 계속되던 찰나에 쉽지 않았다.

 

황제의 명이네..

1347년 원 혜종(1320~1370, 원나라재위1333~1368, 북원재위1368~1370)이 고려의 악습과 폐단을 개혁해 새로이 하라는 명을 하면서부터, 정치도감을 설치하기 위한 비상대책위원들이 임명되게 된다. 이들은 원 혜종에게 직접적으로 명령을 받은 위원들이다. 

  생몰년도 당시 직위
왕후 1296~1349 계림군공
김영돈 1285~1348 좌정승(종1품)
안축 1282~1348 찬성사(정2품)
김광철 ?~1349 판사(종2품)

 그러나 이들은 너무 급진적으로 권문세가들을 처단하면서 하나의 큰 실수를 하게되는데, 1347년 원나라 기황후(1315~1369)의 일족 기삼만(?~1347)이 정치도감에서 장형을 선고받고 사망해버린 것. 원나라에서 조사를 나온것은물론, 책임자 처벌등으로 정치도감의 위신이 떨어지면서 쇠퇴하다가 충목왕이 1348년 승하한 이후 사실상 해체되게 된다.        

거기다 종종 발생하던 기근으로 인해 백성들의 생활이 곤궁해지지 않게끔 진제도감을 설치한다. 원래는 1109년(예종4년)에 설치된 구제도감이 그 근본이였는데, 역시 빈민구제, 질병치료등의 목적이였다.

1348년 2월 진제도감이 설치되기 전에 기아가 발생하게되면서 이들을 진휼하기 위하고자 설치를 한 것[고려사,1451]. 

 

승하

1348년 갑자기 병이 들어 재위4년만에 원래부터 병이 있었는데 거기다 전염병으로 인해 정치도감 판사 김영돈(1285~1348)의 사저에 승하하고 마는데, 당시 전세계를 휩쓸던 흑사병이 아닐까 사학자들이 추정하고 있다.

충목왕은 11세로.. 후사없이 요절했기에 이복동생인 왕저(충정왕)에게 왕위가 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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