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kjong de Goreyo, 980~1009, 재위997~1009
출생
980년 고려 개경 정전에서 아버지 고려 5대 경종(955~981, 재위975~981)과 어머니 헌애왕후 황보씨(천추태후임, 964~1029)사이에서 태어남. 본명은 왕송.
배경
고려초기 태조 왕건(877~943, 재위918~943)의 족내혼 풍습(근친결혼)으로 목종의 부계 모계 모두 같은 계열이다.. 좀 극단적인 정통성인데 이는 어느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것으로도 모자라, 조선6대 단종(세종-문종), 조선19대 숙종(효종-현종-숙종 적장자 끝판 정통성)의 정통성 보다도 더 강력한 정통성이였다. 그러나 고려 왕조 최초로 시해당한 군주로 기록이 남게되는 비운의 군주다.
즉위..는 안되겠다 응애
981년 아버지 경종(955~981, 재위975~981)이 승하함에따라 그다음 군주는 왕송(목종)이 되어야 했지만, 당시 태어난지 1년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버지의 사촌동생이자 왕송의 숙부인 성종(961~997, 재위981~997)이 계승받게 된다. 성종즉위후 왕송은 어머니 헌애왕후와 함께 궁에서 지내게 되는데 성종은 궁에 있으면서 조카 목종을 친자식처럼 기르게 되고, 10살이 되던 990년 숙부 성종으로부터 2대 개령군에 봉해지게 되면서 사실상 성종의 후계자가 된다.
재위
이후 997년에 숙부 성종이 병이 깊어져 오늘내일 할 상황이 생기는데, 성종에게는 아들이 없었고 딸만 있었기에 조카 개령군 왕송을 직접 불러서 그자리에서 왕위를 물려준다는 유언을 남기고 승하하게 된다. 그렇게 고려 7대 목종(980~1009, 재위997~1009)으로 즉위하게 된다. 그러나 즉위당시에도 17세에 불과한 나이로 인해 어머니 천추태후 황보씨(헌애왕후, 964~1029)가 섭정을 하게 되는데..
천추태후(헌애왕후)는 경종이 981년에 승하하고 외척이였던 김치양(969~1009)과 내연관계를 맺게되면서 친오빠 성종(성종과 헌애왕후는 남매지간임)이 이사실에 빡쳐 김치양을 유배보내게 되지만,천추태후는 아들 목종이 즉위하게 되면서 김치양은 천추전에 머물게 되면서 정사에 관여를 하게됨으로서 점점 상황이 복잡해진다.
왕의 남자
목종은 어머니 천추태후와 내연관계인 김치양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자기를 왕위에서 끌어내리고 새 군주가 될 거 같은 불안함에 휩싸이게 되면서 불안증세가 나타나게 됨에 따라 정치에도 관심을 끄게 되는데.. 이들은 심지어 목종 다음 계승자였던 대량원군(미래의 현종)까지 없애버리려고 했다고 한다.
목종은 불안증세로 인해 유행간(남성)을 사랑하게되며 관계를 맺게되는데(동성애), 문제는 이 유행간이 왕의 남자(?)로서 총애를 믿고 마치 자기가 왕이 된 것 마냥 대신들위에 군림하며 횡포를 부리게 된다(많이 들어본 내용인데..어디서). 이로인해 국정에 혼란이 더욱 극심해지게 된다.
이원종 형님.. 아 아니 강조
목종은 1003년 천추태후와 김치양이 대량원군까지 없애버리고 자신들이 낳은 아들을 후계자로 삼고자하는것을 시작으로, 1009년에 병석에 누워있으면서도 대량원군을 확실하게 계승자로서 삼기위해 서북면 도순검사 강조(?~1011)를 은밀하게 불러 자기를 호위하게끔 명한다(난 후계작업 할테니 나좀 지켜줘).
그러나 목종의 명을 이행하기 전에 강조는 세간에 목종이 죽었다는 소문을 듣고 생각이 바껴 군대를 이끌고 개경에 향하게 되지만, 평주(황해도 평산)에 도달했을 때 그 소문이 사실이 아니란 것에 처음엔 주저했지만 마음을 다시 잡고 개경으로 쳐들어가 목종을 퇴위시켜버리고 바로 대량원군을 8대 현종(992~1031, 재위1009~1031)으로 옹립시킨다. 바로 그이후 김치양과 그 아들을 죽이고 천추태후와 목종을 유배보내고 유배지에 가는과정에서 암살당한다. 그리고 강조는 고려의 실권을 잡게된다. 이가 강조의 난(1009)이다.
내가 그래도 인마 일은 했다
보통 목종을 암군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은데, 오히려 드라마 고려거란전쟁과는 다르게 백성을 위한 정책과더불어 고려 초기에서 중기로 넘어가는 상황에 행정적개혁을 나름 잘 했다.
시행 연도 | 내용 | |
개정전시과 실시 | 998 | 5대 경종때 마련된 관리들의 월급제도(전시과)를 개정해 관직의 차등에따라 수령액 기준규정 개정, 군인들에게도 녹봉을 주는 시작포인트. |
관료제도 개혁 | 1003 | 고려 10도 관리들에게 교서를 내려 똑똑한 놈들 뽑아올려라 하여 인재등용, 과거제도 정비 |
숭불정책 | 1006 | 승려우대 정책. 숭교사 창건 |
국방 개혁 | 998~1009 | 북방 거점 서경(평양)을 호경으로 바꿔 거란을 경계하고자 함. 서경 이북으로 많은 성을 쌓게끔 해 방어능력을 키움. |
민심 | 1001~1006 | 세금을 줄이고 백성들의 편의를 직접 보려고 함. 1006년에는 흉년으로 인해 당해 세금(쌀) 면제. |
폐위
1009년 강조의 난으로 인해 폐위당하고 양국공으로 봉해진 뒤 어머니 천추태후와 함께 유배를 가던 도중 강조가 보낸 부장이 독약을 먹게끔 하지만 목종이 거부하여 살해.
사후 강조가 민종으로 묘호를 올리지만, 현종이 목종으로 고침.
거란
요나라(거란)가 993년 1차 고려-거란전쟁에서 서희의 담판으로 물러난뒤, 1009년 목종이 폐위당하고 현종을 옹립한 강조의 난을 구실삼아 강조의 죄를 묻겠다며 요나라 성종(야율융서, 972~1031, 재위982~1031)이 소배압을 사령관으로 해서 40만 군대를 이끌고 고려로 쳐들어오게 된다.
이 내용은 고려 현종부분에서 다루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