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군주(한국어, 프랑스어)/조선의 군주

24대 헌종

Mintaka5 2024. 8. 14.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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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onjong de Joseon, 1827~1849, 재위1834~1849

 

 

출생

1827년 한성부 창경궁 경춘전에서 아버지 효명세자(1809~1830)와 어머니 신정왕후 조씨(1809~1890)사이에서 태어난 외아들이다. 본명은 이환.

 

배경

태어날 당시 아버지 효명세자는 아버지 순조(1790~1834, 재위1800~1834)를 대신해 대리청정중이였는데 1830년 갑자기 사망하게 되면서 할아버지 순조에 의해 왕세손으로 책봉된다. 그러나 4년뒤 할아버지 순조역시 승하하게 되면서 1834년 왕위에 오름과 동시에 어린나이(7세)로 인해 할머니 대왕대비인 순원왕후 김씨(1789~1857, 효명세자의 어머니)가 1840년까지 6년간 수렴청정을 하게 된다. 

물론 헌종 치세시작에도 할머니의 친정가문인 안동 김씨가 정국을 잡는 세도정치를 이어가게 되는데, 할아버지 순조가 안동 김씨를 견제하기위해 세자빈가문인 풍양 조씨를 들이게되며 헌종이 즉위하면서부터 세가 확장되면서 두 가문이 비변사에 주요 요직들에 서로 오르게 된다.

 

남응중의 옥사

1836년에 몰락한 가문 출신 남응중(1810~1836)이 은언군(1754~1801, 정조의 이복동생)의 손자를 왕으로 추대해 반역을 시도하려다 적발된 사건으로 거사 이전에 발각되면서 실패한 거사가 된 사건이다. 남응중은 능지처참당하고, 나머지 반역에 가담한 수십명은 처형된다.

 

민진용의 옥사

헌종10년인 1844년 이제는 몰락한 노론출신 민진용(?~1844)이 이원덕, 박순수와 함께 은언군(1754~1801)의 손자인 이원경(회평군, 철종의 이복형, 1827~1844)을 가담시켜 반란을 일으키지만, 서광근의 고변으로 이 옥사가 시작된다.

고변에서는 이원경을 왕으로 추대하기위한 서명등의 혐의가 거론되면서 이후 모두 체포되어 추국과정에서 모두 실토하게되며 주동자 민진용등은 능지처참, 이원경은 제주도에 유배보내져 사사된다. 이 이후 은언군의 자손들은 더욱 위축되게 된다.

 

기해박해

이미 할아버지 순조때(정확하게는 정순왕후 수렴청정 기간)부터 천주교에 대한 박해가 시작되고있었는데, 이후 헌종의 할머니 순원왕후(1789~1857)의 수렴청정 시기에도 척사윤음반포와 동시에 천주박해가 또 발생하게 된다. 

이때가 1839년으로 기해박해라고 불리는 이 사건에 외국인 주교까지 순교되는 큰 박해가 벌어진다. 카톨릭신자라면 어느정도 명성이있는 이름들이 이때 박해당한다.

  생몰년도 비고
앵베르 범 라우렌시오 주교 1796~1839 Laurent-Joseph-Marius Imbert,
né à Marignane(마리냔), France, 한국명 범세형
조선대목구장
모방 나 베드로 신부 1803~1839 Pierre Philibert Maubant,
né à Vassy(바시), France, 한국명 나백다록
샤스탕 정 야고보 신부 1803~1839 Jacques Honoré Chastan,
né à Les Alpes-de-Haute-Provence(알프드오트프로방스), France
정하상 바오로 1795~1839 정약종(1760~1801)의 아들, 교황 그레고리오16세(Gregorius PP. XVI, 1765~1846, 재위1831~1846)로부터 천주교 조선교구 설치 청원하여 브뤼기에르 주교(Barthélemy Bruguiére, 1792~1835)를 초대 조선대목구장으로 임명하는데 힘씀.

서양인 선교사와 신부, 조선의 천주교신자들로 인해 조선내에 신자수가 급격하게 증가하게 된다. 기해박해때 119명의 천주교인이 처형된다.

 

병오박해

기해박해(1839년)2년후 앵베르 주교의 순교로 조선대목구가 공석이 되는데 이전의 외국인 신부들은 파리 외방전교회 출신인데(1658년 설립, 선교단체), 이들은 선교지역 사람들에게 신학을 가르쳐서 성직자로 키우는 전통이 있었는데 이때 뽑힌 유학생으로는 다음과 같다.

  생몰년도 비고
성 김대건 1821~1846 한국인 최초 신부
최양업 토마스 1821~1861 천주교를 위해 노력하다 과로로 순직함
최방제 ?~1837 김대건, 최양업과 신학교 동기, 위열병으로 마카오에서 선종.

이후 1845년 김대건 신부가 상해 김가항 성당에서 사제 서품을 받게 됨으로서 한국 천주교 역사상 처음으로 사제가 된다. 이후 비밀리에 입국해서 활동을 하다가 신분이 탄로나 체포되어 장 바티스트 세실 장군(1787~1873)등이 김대건 신부를 구출하기위해 조선으로 항해하지만 이미 오는길에 1846년 새남터에서 순교하게되는데 이것이 병오박해이다.

 

사망

1849년 헌종은 후사를 남기지 않고 23세라는 젊은나이에 승하하게 된다. 이로서 다음 조선의 국왕은 누가되느냐가 핵심이였는데, 다시 거슬러 올라가 아버지 효명세자의 6촌인 덕완군(이원범, 철종, 1831~1863, 재위1849~1863)이 강화도에서 농부로 조용히 살고있다가 갑자기 왕위를 계승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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