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교황/201대~현직 교황

베네딕토 14세

Mintaka5 2024. 6. 30.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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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프로스페로 로렌초 람베르티니 Prospero Lorenzo Lambertini

Benedictus PP. XIV, 1675~1758, 재위1740~1758

베네딕토14세, 출처-위키피디아

출생

1675년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마르첼로 램베르티니(Marcello Lambertini)와 루크레치아 불가리니(Lucrezia Bulgarini)사이에서 태어남.

 

과정

로마대학교, 박사학위를 거치면서 첫 공식업무 시작이 1701년인데, 첫 근무지인 교황청에서 당시 교황 인노첸시오12세(Innocentius PP. XII, 1615~1700, 재위1691~1700)밑에서 변호사로서 공직업무를 시작하는데, 인노첸시오12세 이후 교황 클레멘스11세(Clemens PP. XI, 1649~1721, 재위1700~1721), 그다음교황 인노첸시오13세(Innocentius PP. XIII, 1655~1724, 재위1721~1724), 베네딕토13세(Benedictus XIII, 1649~1730, 재위1724~1730)에 이르기까지 20년이 넘는 시간동안 4대의 교황을 모시면서 업무를 담당하게 됨...!

 

서품

1724년 여태까지의 노고를 치하하기위해 당시 교황 베네딕토13세(Benedictus XIII, 1649~1730, 재위1724~1730)에 의해 사제로 서품되는데 서품당시 나이가50에 가까웠지만, 당시 경력으로치면 사실상 대주교/추기경급이라 이후 말도안되는 스피드로 승품되게 됨(베네딕토13세가 람베르티니를 매우매우 높게 평가함).  사제가된지 2주일만에 주교, 그다음해 1725년 대주교가 된다. 그다음해 1726년 추기경이 된다...(?)

예술의 후원자로서 성당의 예배당 건축, 그림등에도 직접 신경을 쓰면서도 외교적 면모를 당시 시칠리아-샤르데냐 분쟁지역에 가서 협상을 시키는 등 외교적으로도 돋보이는 성과를 남기게 되면서 사실상 이때 이미 다른 추기경들(콘클라베 투표권을 가진 추기경들)은 사실상 강력한 교황 후보로서 인식을 하고있었다.

 

뭔 콘클라베가 6개월...

1740년 전임교황 클레멘스12세(Clemens PP. XII, 1652~1740, 재위1730~1740)의 선종으로 2월에 콘클라베가 열리는데, 당시의 분위기상으로 봤을 때 오랫동안 신학연구를 해온 학자들에게 표가 쏠리는 시기였는데, 그중 1순위가 피에트로 오토보니(Cardinal Pietro Ottoboni, 1667~1740, 바로크 음악가 피에트로 로카텔리를 후원한 추기경)였지만, 콘클라베가 열린지 열흘만에 선종하고, 그다음 거물급 후보인 톰마소 루포(Tommaso Ruffo, 1663~1753)가 등장하게 됨.

당시 오스트리아 왕위계승에따른 혼란에 맺은 동맹국가의 질서에 따라 여러 후보들을 등록하게 되지만,  아무도 선출되지 않음(2/3 과반이상을 확보해야 당선이 되는데 그렇지 못했음). 장장 6개월간의 콘클라베를 거치면서 절충후보로 람베르티니 추기경이 제안되면서 드디어 2/3과반이상을 득표하여 당선됨. 제247대 교황 베네딕토14세(Benedictus PP. XIV, 1675~1758, 재위1740~1758)로서 재위에 오르게 됨.

 

교황

즉위하면서부터, 전임교황들이 추구했던 고정적 보수방식을 버리고 진보적 행보를 보인것이 베네딕토14세의 특징인데, 종교의 정신적인 경직성을 버리고, 그러면서도 기존의 방식을 완전히 버리기보다는 합의점을 찾아가면서 진척해나가는 중도적 성향을 보이면서 많은이들의 지지를 얻음.

앞에서 언급했던 것 처럼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가가 이탈리아를 침공하게 되면서 문제가 발생하자, 즉시 교황청은 중립을 취하며 최대한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외교적 능력을 발휘하게 됨. 이 때 실비오 발렌티 곤자가 추기경(Silvio Valenti Gonzaga, 1690~1756)이 사실상 외교실무를 담당했다고 볼 수 있는데, 베네딕토14세가 매우 신뢰한 인물 중 하나.

개신교 신자들에 대해서도, 딱히 불이익을 주지 않고 관용정신으로 카톨릭, 개신교와 더불어 잘 지내게끔 하는 태도를 취하면서 안정을 시켰다.

 

재정문제

이미 교황에 오르면서부터도 막대한 부채로인해서 재정이 말도 아니였는데, 엄격하게 재정은 관리하는 차원에서 교회 스스로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교황의 군대 규모 축소, 급여삭감, 새로운 세금형태제정등 다소 극단적인 형태의 포지션을 취해서 재정상태를 복구하려고 시도했지만 너무 많은 부채로인해 사실상 효과는 미미했음.

 

유태인

베네딕토14세의 유태인정책은 가혹한 편이였는데, 신성살해라는 명분으로 인해 박해대상으로 여겨져 불이익을 받던 유태인들이였는데, 임기내내 억압적인 정책등을 펼침.

1747년에 유태인 가정의 자녀에게 부모의 동의없이 세례를 받는 것은 허하지 않는다 라는 것을 더욱 강조시키면서 카톨릭과의 확실한 거리를 두게끔 관리/감독을 지시하게 됨. 

이후 유태인문제 뿐만아니라, 교리적으로 보수적인 입장을 고수하게 되면서 발간되는 도서나 논문등의 내용을 좀 더 주의깊게 검토시키고 엄격하게 규제하는 법안을 실시하도록하는 태도를 취하게 된다.

 

선종

1758년초 통풍에 걸리면서 열병, 천식, 비뇨기질환등의 합병증이 발발하면서 더욱 건강이 좋지않게 되는데, 지금으로서도 많은 나이인 83세로서 회복되기는 어려운 질병들이였고, 마음을 쓰지 않으면서 업무를 지속하지만 결국 얼마뒤 선종하게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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